구름 위를 올라 산 정상에 서면

발이 닿는 그곳으로

by SseuN 쓴

내가 여행하는 방식은 조금 즉흥적이거나 무계획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다음 목적지를 정하는 어떠한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가보고 싶어 지고, 가야 하는 이유가 생기면 움직이는 편이다. 일정을 세우지 않고 여행을 하면 쉽게 떠날 수도 있고, 좋아하는 곳이면 오래 머무를 수도 있다. 그래서 여행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던 것 같다. 마음에 드면 며칠이고 몇 달이고 여행을 하여 충분히 그곳을 즐긴다는 게. 나의 여행이었다. 마치 우리의 인생들처럼.


태산을 오르게 된 것은 바로 중국인 친구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중국을 여행하는 중이었다. 숙소에서 일을 하는 친구들이 바로 근처에 '공자' 마을이라고 해서 그 후손들이 사당을 짓고 모여 살고 있는 곳이 있다고 했다. 나는 '공자'라는 인물을 잘 알지도 못한다. 그렇게 공부를 잘했던 편도 아니고, 사상에 심취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그렇게나 외울게 많았던 건, 공자의 영향이 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동양 사상에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보니, 졸업하고 20년이 지났는데도 그의 몇 가지 사상은 나의 기억에 적지만 어느 정도 남아 있으니 말이다.


숙소에 큰 가방을 두고 무작정 작은 가방 하나에 카메라 하나 챙겨 들고 역으로 나왔다. 일행은 그곳까지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 공자 마을로 향했다. 우선 공자마을을 찾아가려면 기차를 타고 가야 했는데, 내가 머무르고 있는 곳에선 아주 가까워서 다행이었다. 물론 중국처럼 큰 영토를 가진 나라에서 가까운 거리라는 건 기차를 타고 1-2시간은 걸리는 곳이다.


기차를 타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혼자서 갔다가 오는 여정이었고, 심지어 나는 중국어는 까막눈에 가깝게 할 수 있는 말이나 읽을 수 있는 단어가 많지 않았다. 물론 기본적으로 여행을 하다 보면 모든 나라는 대중교통을 누구가 이용하는 것에 불편함이 없도록 구조화가 되어 있다. 나라마다 비슷한 구조에 비슷한 방법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혹여나 다른 방향으로 가는 표를 살까 싶기도 하고, 중국어를 조금이라도 할 줄 알면 좋을 텐데 아는 단어가 별로 없으니 늘 긴장이 된다.


그나마 상하이나 베이징에 있는 역에서는 영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이 있고, 외국인 전용 창구가 있지만, 작은 도시로 갈수록 영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이 적거나 거의 없다. 하지만 이번 역에선 외국인 전용창구나 영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이 보이질 않는다. 손 짓이든 발 짓이든 방법을 찾아보자는 마음에 창구 직원에게 숙소 직원이 적어준 목적지가 적힌 쪽지를 보여줬다. 그 쪽지를 받아 든 직원은 다시 나를 쳐다보며 뭐라고 질문을 했지만 나는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 위기의 상황에 운이 좋게도 내 앞에서 먼저 표를 사고 한쪽에서 가방을 정리하고 있던 대학생의 도움을 받아 표를 살 수 있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었다.


표를 살 때 도움을 주었던 그 친구는 지역 국립대 대학생인데, 생각보다 한국 유학생이 주변에 많이 있어 한국을 좋아한다고 했다. 드라마 이야기부터 한국 친구들이 하는 한국어까지. 표를 사고도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중국 여행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중국의 문화도 대학생 때에나 젊은 시절에 중국을 여행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을 때였다. 그러한 영향 덕분이었을까? 여행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그 친구는 가 볼만한 여행지를 소개해 주었다. 그때 추천해주는 여행지로 처음 들었던 곳이 바로 '태산'이다.


표를 살 때 도움을 주었던 대학생은 산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태산을 올라 볼 것은 추천했다.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산을 좋아하지 않는 나 역시 이 산 이름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중국을 여행하기 전, 산을 오르게 되면 어떨까 하며 찾아봤는데 그때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중국엔 참 많은 산이 있구나 정도였다. 그리고 태산은 마냥 높은 산이 있구나 하고 기억한다.


사실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추천해 준다고 하니 뜻이 있을 것 같고, 중국에 와서 등산 한번 해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에 간단히 알아보긴 했다.


태산은 조선시대 <양사언>의 작품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못 오른다 하노니." (조선시대 시 구절 원문을 브런치에서 쓰기 어렵기에 읽히는 대로 썼습니다.)

에서도 나온다. 중국에 산둥지역에 있는 높은 산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중이적인 의미로 아주 크고 높은 산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아주 높은 산처럼 느껴지는 태산은 사실 1545m의 지리산보다 낮고 태백산보다 낮은 산이다. 다행히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는 곳이고, 산은 등산로가 잘 되어 있어 장비가 필요한 길은 아니었다. 누구나 쉽게 오른다고 하니 바로 산에 오를 준비를 시작했다. 산 입구까지 가는 방법과 산을 오르는 등산로의 난이도 정도 조사를 했고, 아침 일찍 오르기 위해 하루 전에 출발했다.


다음 날, 산 입구까지는 숙소 앞에서 걸어서 이동했다. 도착하니 마치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등산로 입구에 줄이 에스(S) 모양으로 줄을 서서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나도 그 뒤에 줄을 서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 한국 산악회 회원 분들이 단체로 오셔서 들어가는 모습도 보이고, 결혼을 하는 건지 약혼을 하는 건지 정장에 드레스를 입은 커플도 보였다. 그들과 함께 줄 끝에 이르니 버스를 타는 정류장이었다. 버스는 사람이 차면 바로바로 출발하는 방식으로 아침 일찍 오르는 사람이 많아 대기 없이 바로 출발했다.


산의 입구로 포장과 비포장이 적절하게 섞인 도로를 작은 학원 버스 같은 차를 타고 올랐다. 길이 좁아 맞은편에서 오는 버스가 있다면 속도를 줄이며 버스 두 대가 겨우 지나가는 낭떨어지 구불한 도로를 서로 비껴 지나가곤 했다.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산 길 위에 덜컹거리는 버스의 가운데 앉아 입구에서 나누어 준 지도를 유심히 내려다본다.


버스가 도착한 곳은 케이블카 타는 정류장이었다. 100위안을 내면 정상 부근까지 데려다주는 아주 편리한 기계다. 하지만 위에 <양사언>의 시조에서 처럼 오르고 오르면 못 오를리 없다는 생각에 걸어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여기서부터가 잘 못 된 선택이었다. 처음은 패기였고, 나중엔 객기였다. 한국에서 여행하기 전 나는 운동을 끝까지 해 본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심지어 한 번도 등산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1500M의 해발고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달랑 운동화 끈 하나 고쳐 맨 것으로 둥산의 준비는 마쳤고, 날이 좋아서 6월임에도 불구하고, 해가 심하지 않은 아주 평범한 날이었다. 기온도 그리 높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좋은 컨디션으로 시작된 등산은 심장이 약간 두근거릴 정도로 가벼웠다. 산이라는 게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한 걸음에 달라지는 풍경도 그렇고, 들숨에 폐 끝까지 들어오는 맑고 시원한 공기가 그랬다. 같이 오르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물길을 따라 오리는 물고기 같이 이리저리 올라가는 것도 즐겁다.


드디어 산 중간을 올랐다. 심장도 아까와는 다르게 아주 빨리 뛰고 있으니 조금은 진정을 시켜 놓아야, 데리고 올라갈 수 있다. 남은 계단을 보니 아찔 할 정도로 많이 많았다. 잘 만들어진 등산로라고 해봐야, 옛 노예들을 시켜 돌과 흙으로 만든 높이가 제각각인 계단이 전부였다. 그래도 계단이라도 있으니 산을 오르는 동안 두 발로 올라설 수 있다. 아마 계단이 없었다면 두 손 두 발을 다 써서 올랐을 것이다.


6시간 정도 지나서야 정상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 오른다고 나왔지만 중간에 좀 쉬기도 했고, 나에게 태산이 워낙에 높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오르면서도 계속 대뇌였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다. 포기하지 말자' 이렇게 말이다. 옛말이 틀린 거 하나 없다고, 결국 정상이다. 정상에 서면, 산 바람에 나부끼는 형형 색색의 네모난 천 조각들이 퍼덕이고 있다. 숲의 나무 소리와는 다른 빠른 템포의 소리를 만들어 내는 천 조각들이 수십 장 달린 신당은 과거 황제가 되기 위해 올랐던 왕들의 손길과, 한 시대의 영웅들의 자취까지 모두 담고 있는 듯하다.


여름 날씨라고 하기엔 조금 서늘하다 생각했었는데, 정상에 오르니 순시 간에 하얗게 피어 오른 안개 때문에 멀리 산 아래가 보이지 않는다. 원래 산 위에 올라서 산 아래를 보는 전경이 인상적이라던데, 안갯속 다른 봉우리들이 더 신비함을 더해주는 볼거리였다. 올라오는 6시간에 내려가는 4시간보다는 힘들었지만, 산 정상에서 본 봉우리들은 장관이었고,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은 반가웠다. 그 표지석을 보러 간 것은 아니지만 그게 큰 위안이 되었다.


어쩌면 오르고 또 오르는 일이 산에만 비유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하루에 또 하루가 쌓일 것이고, 한 번이 두 번이 될 것이다. 일 년씩 쌓아서 평생을 채울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삶이 채워질 것이고, 기록이 될 것이다. 어디에 남겨두지 않아도 우리 모두의 인생은 쌓여만 간다. 무작정하는 여행이었다. 시작은 어딘지 끝은 어디였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여행이었다. 하지만 지나서 돌아보면 여행은 충분히 쌓여있었다. 나 조차도 놀랄 만큼.


산에 올라가면 뭐든지 다 보이는 것이라 믿었다. 높은 봉우리에 올라서면 하늘 아래에 펼쳐진 마을과 도시가 보일 줄 알았다. 일기가 좋지 않아서 그 아래를 전혀 볼 수 없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한치를 볼 수 없을 만큼 안개가 자욱했다. 나는 인내가 없었고, 기다리는 마음이 없었다. 아마 그때부터 개인 하늘을 볼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더라면 기대했던 그 아래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면 얼마나 멀리까지 볼 수 있었을까?


여행을 많이 쌓았다고 세상을 다 아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전 세계를 여행하지 않았다. 세상 모든 사람을 만나고 오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여행을 했고, 내가 볼 수 있을 만큼 보고 왔다. 내가 만날 수 있는 수만큼의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세상을 보고, 듣고, 만났다. 그래서 지금도 글을 쓰는 중이다. 내 글을 읽고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나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의 마음을 듣기 위해서 글을 쓴다.


나는 오늘도 오르고 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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