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30점짜리 보고서가 가르쳐준 것

by 어느 번역가

최근 나는 생성형 AI를 파트너로 삼아 야심 찬 딥 리서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AI와 여러 번의 브레인스토밍을 거쳐 꽤 근사한 설계도를 그렸다고 자부했다. AI 역시 "구조화된 분석과 통찰을 담은 보고서를 바로 생성해 드릴 수 있습니다"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20년 전 '구글 신'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내가 바라던 결과물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처음 받은 보고서 초안은 30점짜리 낙제작이었다. 논리의 뼈대는 엉성했고 문장은 공허했다. AI는 그저 뻔한 이야기들을 그럴듯한 표현으로 포장해 내놓았을 뿐이었다.


그 실망 앞에서 번역가로서 늘 마주하던 근본적인 질문과 다시 마주해야 했다. "클라이언트가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내가 제공할 수 있는 고유한 가치는 무엇인가?"



모두가 묻고 있는 질문


이 질문은 나만의 것이 아닐 거다. AI로 인해 전문성이 더 이상 희소가치가 아닌 시대에 우리 모두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AI 기술로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가치는 무엇인가?"


나는 그 30점짜리 보고서의 실패 속에서 답의 실마리를 찾았다. AI는 도구일 뿐, 방향을 설정하고 구조를 설계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었다. AI와의 협업에서 진짜 차이를 만드는 것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정교한 질문과 체계적인 사고였다.


좋은 프롬프트는 좋은 사고에서 나온다. AI를 잘 쓴다는 것은 좋은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이끌어낼 자신만의 시스템을 가진 능력이다.



아이디어에서 실행으로


오랫동안 나는 아이디어는 많지만 막상 시작하기 어려운 상황에 갇혀 있었다. 내 의지로 기획해 끝까지 완성한 '나만의 프로젝트'는 손에 꼽혔다. 하지만 AI를 '사고의 파트너'로 삼기 시작하면서 막연한 계획은 구체적인 단계로 나뉘고 그 단계들이 하나씩 채워지며 점점 더 큰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브런치 매거진에 흩어져 있던 글들을 이제 하나로 엮으려 한다. 따로따로 흩어진 이야기로는 보여줄 수 없었던 흐름과 맥락을 한 권의 브런치북 안에서 담아내고 싶다.



이 책이 담고 있는 것


이 브런치북은 AI 앞에서 길을 잃었던 한 번역가가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좌충우돌 성장 기록이자, 같은 시대를 사는 전문가들의 질문과 불안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자 한다.


이 안에는 우리 모두의 '이름 없는 불안'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해, 그 속에서 발견한 가능성과 직접 부딪히며 얻어낸 구체적인 방법과 도구,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길어 올린 개인적 통찰까지 담아낸다.


이 기록들이 모여, AI를 막연히 두려워하는 대신 가장 유능한 파트너로 삼아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서는 우리에게 작은 용기를 건네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