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에 내려와 올해 첫 외박을 하고 있다. 해마다 짧게는 2주, 길게는 3달까지 머물다 가던 익숙한 곳인데, 이번에는 무려 1년 8개월 만의 방문이다.
그동안 장기 프로젝트가 없는 틈을 타, 나만의 업무 시스템을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집 책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이번 플로리다행에 마음이 크게 동하지 않았다. "그렇게 집에만 있을 거냐"는 남편의 채근에, '그래, 내려가서 처리해야 할 일도 있고, 곧 새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또 바빠질 테니…' 하는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
돌아보면 올 한 해, 집을 나서지 못할 이유는 늘 있었다. 연초에는 추워서, 봄여름에는 프로젝트 때문에 바빠서, 비수기에는 오히려 미뤄뒀던 업무 시스템을 만드느라 더 분주했기 때문이다.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는 자유가 역설적으로 '집'이라는 가장 편한 공간에 나를 더 머물게 만들었던 것 같다.
고요한 마음
도착한 첫날, 몹시 피곤했는데도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뉴저지보다 이곳 플로리다 집의 창밖 풍경이 훨씬 좋고, 휴양지 특유의 들뜬 분위기가 단지 전체에 감돌아 언제나 나 역시 덩달아 설레곤 했는데, 이번에는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고요했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 내 마음이 온통 일에 몰두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페이스 조절이 썩 능숙하지 못한 사람이다. 보통 프로젝트 하나에 3주가 걸리는데, 일단 일을 손에 쥔 상태에서는 일을 조금 하는 날은 있어도 온전히 쉬는 날은 없다. 올봄과 여름은 특히 더 그랬다. 정신없이 일했고, 그게 끝나자마자 비어있는 시간을 업무 시스템을 구상하고 브런치북을 기획하는 일로 가득 채웠다.
그러던 중 문득, 떠나온 이곳 플로리다에서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온전히 쉬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릿속이 온통 새로운 구상으로 가득 차 이 좋은 풍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기울어진 시계추
요즘 말하는 '워케이션'이 바로 이런 모습일까.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일하며 즐기는 삶. 하지만 지금 나의 시계추는 '워크' 쪽에 훨씬 더 강하게 기울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사실을 깨닫고도 '앞으로는 워라밸을 지켜야지' 같은 다짐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아, 나는 지금 일에 이토록 깊이 몰두하고 있구나'라는 나 자신에 대한 새삼스러운 발견이 있을 뿐이다.
일을 손에 쥐고 이곳에 와 있지만, 과연 온전히 즐기고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번 여행은 일과 삶의 균형점을 찾는 여정이 아니라, 일에 대한 나의 지독한 열정을 확인하는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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