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외부의 질문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 때

by 어느 번역가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한 뒤, 예상치 못한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한 AI 글쓰기 스타트업의 프로덕트 매니저가 보낸 약식 서면 인터뷰 요청이었다. 링크드인에 올린 브런치북 게시물을 보고 연락을 해온 듯했다. 과거에도 비슷한 요청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주제가 내 전문 분야이긴 해도 외부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영역에 집중되어 있어 대부분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분의 관심사는 'AI와 글쓰기', 바로 내가 지난 몇 달간 치열하게 실험하고 고민해 온 영역이었다. 나의 경험과 프로세스가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 그리고 제삼자의 시선으로 나의 작업을 다시 돌아볼 수 있다는 흥미가 생겨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질문들을 받아 들고 막상 답변을 준비하려니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놀랍게도 생각보다 글이 술술 써졌다. 단순히 글쓰기에 익숙해져서 그런 건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이 주제에 대한 나만의 일관된 구조와 언어, 철학이 내 안에 단단하게 쌓여 가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과거의 나라면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한 단락 쓰는 것도 어려워했을 테지만 이제는 달랐다. 먼저 AI에게 자유롭게 생각을 쏟아낸 뒤, 구조화와 논리화를 요청하는 나만의 작업 방식을 익혀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번 답변을 완성하는 과정은 AI와 주거니 받거니 하는 협업의 연속이었다. 먼저 내가 인터뷰 질문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의 조각들을 자유롭게 던져주면, AI는 나의 기존 글쓰기 원칙과 브런치북 기획안을 바탕으로 그 생각들을 체계적으로 엮어주었다. AI는 단순한 문장 수정을 넘어, 글의 구조와 강조점을 조정하는 재설계를 제안했고, 나는 그 제안에 다시 피드백을 주며 함께 완성도를 높여갔다.


이 과정에서 나는 문득 서늘한 질문과 다시 마주했다. "이것은 내 생각인가, AI의 생각인가?" 가끔 휴대폰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가까운 사람의 전화번호조차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는 것처럼, AI의 편리함에 익숙해져 스스로 깊이 고민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건너뛰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가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편한 것을 추구하기에 AI가 제안하는 그럴듯한 답변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의식적으로 경계하려 노력한다. 지적인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으려는 이 작은 싸움이야말로 AI와 제대로 협업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술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번 인터뷰는 단순한 문답 그 이상이었다. 외부의 질문은 내 안에 흩어져 있던 생각의 조각들을 불러 모으는 자석과 같았다. 그 질문에 답하는 과정을 통해, 나는 이미 내 안에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던 나만의 관점과 언어를 비로소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울을 통해,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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