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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 Mar 07. 2016

이적생의 이야기 05

내가 연세대학교에서 시험을 보다니!

"연세대학교 편입시험"



1월 5일, 드디어 그 날이 다가왔다. 어젯밤에 맥주도 마시고, 게임도 한 탓에 잠에 늦게 들긴 했지만, 그래도 시험은 쳐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에 억지로 일어나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5500-1"버스가 도착을 한다. 버스에 탑승한다. 다행히도 빈자리가 하나 있었다.


분당에서 서울까지 이 컨디션에 서서 갔다간 몸이 피곤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올 것 같았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물론 지금도 좋은 컨디션은 아니지만 말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피로가 몰려와 그냥 잠을 잔다. 초행길이면서도 무슨 배짱인지, 어느 정거장에서 내려야 하는지, 한 번도 가보지 않고 듣기만 했으면서 그냥 자버린다. 내가 생각해도 그런 배짱은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가 없다.


한참 신나게 잠을 자다가 잠시 잠에서 깬다. 꽤 많은 거리를 온 것 같다. 시간도 꽤 많이 흐른 것 같은데, '아직 내릴 때가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 무렵, 버스에서 안내 메시지가 나온다.


"이번 정류장은 서울백병원, 중앙극장 역입니다."


한창 신나게 자고 있던 상황이라, 일어나는 게 피곤하고 귀찮기도 했지만, 여기서 안 내렸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아서, 얼른 정신을 차려서 내린다. 몸은 좀 안 움직이지만 말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서울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여기가 서울이구나…'


아직 1월이라, 날씨는 꽤 쌀쌀했다. 따뜻한 버스 안에 있었더니, 바깥 날씨가 이렇게 쌀쌀했는지 몰랐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다들 바쁘게 살아가는 것 같아 보였다. 서울에서도 을지로는 처음으로 오는 것인지라 주변을 돌아보고 싶기도 했지만... 나도, 오늘은 할 일이 있는 상황이니, 얼른 갈 길을 찾는다.


지하철로 환승을 해야 하는데, 이것 참 위치가 난감했다. 지하철 2호선 을지로 입구와 을지로 3가의 딱 중간되는 위치에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오늘 내가 가야 하는 곳은 신촌이니, 신촌 방향인 을지로 입구로 가서 환승을 한다. 지하철도 정말 오랜만에 타보는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2호선은 예전에도 거의 타 본 적이 없었던 노선이라, 더욱 신기했다.


'내가 2호선을 타게 되다니…'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런 소리가 있었다. 2호선을 타야 된다는 말이었는데, 사실 서울에 있는 상위권 대학은 웬만하면 2호선에 위치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서울 대부 터해서,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 한양대 등등… 많은 대학이 2호선에 몰려있어서 그런 소리가 나왔던 것이다.


지하철 안에도 사람들이 꽤 많아 보였다. 아무래도 오늘 연세대학교로 시험을 치러 가는 사람들이 꽤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 시험일인데, 설마 나만… 시험을 보러 가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이번 역은 신촌, 신촌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신촌에 도착하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지하철에서 내려 출구를 찾는다. 어제저녁에 인터넷으로 신촌역에서 연세대학교 가는 길을 검색해봤었는데, 누군가가 친절하게 사진을 찍어서 올려두었었다, 거기서 본 것과 똑같이 생긴 길이 내 눈앞에 나타난다. 뭔가 신기했다. 버스에서 막 내렸을 때와 같이 날씨는 꽤 추웠다.


신촌역에서 연세대학교까지,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워낙 많은 탓에 꽤 오랫동안 걸었다. 사람들이 이 정도로 많으면 딱히 길을 모르더라도 사람들만 따라가 보면 시험장이 나올 것 같았다. 많은 인파 속에서 길을 따라서 가다 보니, 저기 멀리서 연세대학교 정문이 보인다. 학교 바로 앞에 있는 횡단보도는 정말 넓었음에도 불구하고 잠깐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 사람들로 가득 차 버렸다. 멀리서 보면, 마치… 성난 좀비떼들이 곧 달려들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워낙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었으니 말이다.


시험을 보러 가는 사람들을 따라서 나도 연세대학교로 들어간다. 학교는 꽤 넓었다. 오늘 내가 시험을 칠 장소는 종합관, 정문을 지나 한참을 걸어야 했다. 학교가 정말 반듯반듯하게 세워져, 마치 계획적으로 만든 신도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시험장을 안내하는 학생들이 나타난다.


"이 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그렇게, 안내하는 학생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간다. '나도 내년에는 이렇게 안내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아쉬운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오늘 내가 시험을 칠 장소는 종합관이었다. 시험장을 찾아서 들어가 본다.


좀 여유 있게 출발한 탓에, 시험 시작시간까지는 약 30분 정도 남은 듯했다. 강의실은 상당히 넓었다.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했다. 다들 시험 직전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는 느낌이었다. 마치 폭풍이 몰아치기 전의 고요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어떤 사람들은 책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시동을 거는 것인지, 시험 직전까지 열심인 사람들도 보인다. 난, 딱히 준비한 것도 준비해 온 것도 없기에, 그나마 가져온 책인 '스티븐 킹'의 '유휵하는 글쓰기'라는 책을 꺼내서 본다. 그것도 원서로 쓰인 것도 아닌 한글 번역본이다. 책을 보는 것도 잠시, 난 그저 시험장의 분위기를 보고 있다.


준비하지 않은 자의 여유인가…

괜스레 웃음이 난다.


'나 따위가 감히,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 중의 하나인 연세대학교에 시험을 치러오다니…'


'언제 내가 연세대를 감히 내 입에서 이렇게 쉽게 오르내릴 수나 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또 한편으로는, 여태 공부를 해 온 것의 마지막 종착점이라고 생각을 하니, 뭔가 시원섭섭하기도 했고… 마지막을 여기에서 장식을 한다고 생각을 하니, 썩 나쁘지는 않았다. 감독관이 들어온다.


"여러분들 가지고 온 물건은, 필기구만 남기고 나머지는 가방에 넣어서, 가방을 강의실 앞으로 빼주세요.."

"시험시간은…"


감독관의 설명이 끝나고, 시험이 시작이 된다. 시험시간은 총 2시간…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다. 지금부터는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시험문제를 받아보니, 시험 문제만 A4용지로 2페이지 분량이다. 이걸 읽고, 요약하고, 이 주장에 동의하는지, 반대하는지에 관하여 500자 내외로 논술을 하라는 것이다. A4용지에 쓰인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사람들은 이타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밥(Bob)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철로에서 놀고 있는 한 어린아이를 발견을 하는데, 때마침 기차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선로를 변경해서 아이를 살릴 기회가 있었지만, 그럴 경우 자신의 아주 비싼 차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선로를 바꾸면 열차가 밥의 아주 비싼 차를 향해 열차가 돌진하는 상황이었다 라고 여기서는 묘사하고 있었다.)"


요지는 파악했으니, 이제 내 생각만 잘 정리해서 적고 나오면 되는 것이다. 평소 연습했던 대로 서론에는 위 글의 주장을 요약을 하고, 이 글에서 어떠한 것들을 주장의 근거로 들었는지 적어나갔다. 그리고 난 그 주장에 반박하겠다는 글을 써 나갔다. 본론에서는 반박의 근거를 3가지 정도를 들었는데, 그중 하나로는,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보이지만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 즉 사람들은 상황에 종속된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상황에 종속이 되어서 불의를 보고도 모른 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이기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 그 예로는 혼자서 상황을 반전시킨 사람들의 예를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블로그를 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들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사랑의 책 나눔'이라는 나눔에 참여를 했었다. 그리고 그 나눔에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했었다. 그 덕에, 우리는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상을 받기도 하였다는 것을 적었다. 마지막으로 근거를 들었던 건,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게 남을 도울 수 있는 방법으로 유도를 해주면, 충분히 그렇게 한다는 것이었다. 네이버 '콩'의 예를 들었는데, 사용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부'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많이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위에서 서술한 내용이 내가 근거로 들었던 내용의 전부이다. 그리고, 추가로 몇 가지를 더 적었던 것 같지만, 부족한 내 영작 실력과 야속하게 흘러만 가는 시간 탓에 결론을 깔끔하게 내지 못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최소한 글은 완성을 하고 나왔으니 말이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적인 사실은 분량이 꽤 많았다는 것이다. 양도 첫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그 뒷 페이지까지도 약 5줄 정도를 썼으니, 다른 지원자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많은 양을 쓴 것은 아니지만 약간 더 많이 쓴 정도였다. 나름 본론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을 했지만, 내 초등학생스러 영어실력과 부족한 결론 때문에 1차 통과 조차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여기서 시험을 치르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시험을 치고 나니 뭔가 홀가분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쓴 글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수준이 너무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은 걱정이 들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수능시험을 치고 나서 점수가 턱없이 부족한데 서울대나 연고대를 지원하면, 지원 대학에서 고등학교로 전화가 온다는 그 말이 생각이 났다.


어쨌든 시험이 끝나고, 사람들은 빠져나간다. 엄청난 인파가 몰렸던 탓에 건물에서 빠져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그냥, 이 상황을 좀 더 여유 있게 즐겨보기로 했다. 난 그냥 구경온 사람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광경을 건물 위에서 보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꽤 많이 나갔다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건물에서 빠져나오길 시도했다.


'어차피 집에 가서 할 것도 없는데, 빨리 가서 뭐하나…'


여기까지 온 김에 천천히 학교 구경도 좀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온다. 이제 다시 여기에 올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학교 구경도 좀 하고, 사진도 찍고,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 시험을 치러 온 사람들이 다들 빠져나간 후에야 나는 여유 있게 학교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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