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시험 보러 갈 거냐?
"2011년 1월 2일, 일요일"
일요일, 경북대학교 도서관에 들러서 책을 찾아본다. 논술에 관한 책을 말이다. 한동안 책을 찾아보긴 하지만, 딱히 적절한 책을 고르지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갑작스럽게 책을 구하다 보니 적절한 책을 구하기가 힘든 것이 아닐까 싶다. 한참을 뒤져보니, 그래도 하나 활용하기에 좋을 것 같은 책을 찾을 수 있었다. 책 제목은, "GMAT ESSAY는 논리가 있어야 한다."였다.
내용을 둘러보니, 다 영어로만 쓰여있고, 질문에 적절한 논술 예문이 많이 수록되어있었다. 가장 적절했던 것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모범답안을 많이 봐야 할 것 같은데, 이 책에는 따로 정리가 되어 있는 형식이 아니라, 각각의 문제에 대한 모범답안을 적어둔 것이었기 때문에, 모범답안을 많이 보는 편이 도움이 더 많이 될 것 같아서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GMAT가 어떤 시험인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오로지 난 그저 갑작스럽게 영어 논술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책을 고른 것이었다. 책을 빌려서 봐야 할 것 같은데, 난감하게도 난… 이 학교 학생이 아니다. 다행히 명수가 국가고시를 앞두고 공부를 한다고 학교에 와있었다. 명수에게는 민폐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럴 때 친구 덕을 좀 봐야 하지 않겠는가...
명수에게 연락을 해서 학생증을 빌려서 책을 빌릴 수 있었다. 책을 보고, 질문에 대한 답을 써보고… 그리고 확인하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몰아치니 하루에 3편을 연습해 볼 수 있었다. 다음날도 그렇게 했다. 시험 전까지 연습 삼아 써본 논술은 총 5편. 그리고, 반복해서 쓰다 보니, 논술의 틀을 잡는데 필요한 반복적으로 나오는 표현과 형식을 대충이나마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말이다.
"The above article concludes/asserts that ~"
"As evidence for this assertion, the article cites the fact that ~"
"~'s argument is logically flawed in number of ways."
많은 것을 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서론이라도 어느 정도 형식을 미리 만들어 놓고 있으니, 한결 수월해졌다. 어차피 본론 내용은 시험 당일날 글을 보고 생각을 해서 적어야 하는 것이니, 2/3 정도는 준비가 끝난 것이다. 본론을 이끌어 가는 형식도 어느 정도는 준비가 되었으니... 그리고 어휘도 논술에서 쓸만한 단어를 몇 가지 적어두었다. 영어 자체로 보면 쉬운 어휘이지만, 막상 내가 직접 글을 쓰려고 하면 잘 생각나지 않는 그런 단어들 몇 개만 즉석에서 적어둘 수밖에 없었다. 진작 처음부터 준비할 때 이렇게 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sound/unsound
convincing/unconvincing
causation
sufficient
distort
offset
이 정도만 따로 메모를 해두고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론을 내는 형식이 완성되지 않았고, 논술에 적절한 어휘를 따로 숙지해두지 못한 상황... 어차피 지금 다 완벽하게 준비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준비해 온 전부였다.
"2011년 1월 4일, 화요일"
1월 4일 화요일, 시험 하루 전날, 버스를 타고 분당으로 갔다. 형이 거기에 살기 때문에 분당에서 내일 시험을 보러 갈 예정인 것이다. 형이 퇴근을 하지 않은 상황이라 내가 먼저 집에 도착해있다. 시간이 조금 남아 애매한 상황이라 마지막으로 논술 연습을 하고 있다. 그러고 있으니 형이 퇴근을 하고 들어온다.
"편입 시험 본다고?" 형이 말한다.
"어.." 그냥 한번 내봤다.
"뭐하는지 이야기라도 좀 해주지. 난 니가 그거 시험 치는 줄도 몰랐네. 그저껜가 어머니한테 전화 와서 니 올라온다고 하길래 당황스러웠다."
"아.. 그냥 어쩌다가 원서 낸 거라서 그렇게 됐네."
…
"영문과 가서 뭐할라고?" 형이 묻는다.
"그냥, 일단은 즉시 활용 가능한 전력이 영어뿐이라서…"
"가서 딱히 뭐 생각은 없고?"
"일단은 그러네."
"약대 준비할 거라며."
"그렇긴 한데, 약대 원서 쓸 때 학교 이름 많이 본다고 해서…"
"그러면, 약대랑 관련이 있는 과에 내야지…"
…
"경북대도 원서접수했나?" 형이 묻는다.
"아니, 아직 안 했다."
"그럼, 올해는 그냥 안되더라도 화학과나 생명공학과 같은 관련있는과 한번 내보자. 연대랑 성대는 어차피, 거기는 돼 봤자 학비도 비싸고… 니 학비는 감당할 수 있나?"
…
"그럼, 국립대 위주로 해서 화학과 한번 다 내봐라. 부산대, 창원대, 강원대, 충북대, 충남대, 이런데 다 아직 원서접수 시작도 안 했네." 형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면서 이야기를 한다.
"그렇긴 한데, 원서비도 많이 들고, 몇 군데만 골라서 내는 게 안 낫겠나?"
"그럼, 경북 대하고 부산대 정도 한번 내보든가."
"그래야겠다."
…
"오늘은 맥주나 한잔하자."
우리는 이날 저녁 맥주를 마시고, 위닝에 이어서 닌텐도 위 게임도 했다. 닌텐도 위는 원래 없던 건데 얼마 전에 형이 구입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오래간만에… 신세 한탄도 하고 늘어진 밤을 보냈다.
'여태까지 전역한 뒤로, 다른 건 거의 해보지도 못해고 공무원 시험만 준비를 했었는데…'
지금 남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이라면, '편입영어와 공무원 영어가 비슷하다는 점' 그것 뿐이었다. 잠에 든 시각은 아마 새벽 2시가 넘어서였다.
"내일 시험 보러 갈 거가?" 형이 묻는다.
"그래도 여기까지 이거하러 왔는데 시험은 봐야 안 되겠나."
"그래 그럼, 여기서 버스 5500-1이나, M4102타고 '서울백병원, 중앙극장'에서 내려서 지하철 타고 가면 된다."
그렇게 시험 전 날 밤이 흘렀다. 시험 보기 전날의 대책 없었던 밤이었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