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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 Mar 06. 2016

이적생의 이야기 03

내친김에 연세대학교도 내보는 거다.

"2010년 12월 29일 수요일"



오늘은 연세대학교 편입학 원서접수 마지막 날이다. 접수를 하기 전에 이번에도 동보 형님과 영일 형님에게 전화를 드렸으나, 전화를 받으시지 않으셨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혼자 모니터만 바라보며 고민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동보 형님이다.


"그래 강현아. 무슨 일이고? 아까는 내가 바빠가꼬."

"형님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연세대학교 편입시험 원서접수 마지막 날인데, 이걸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됩니다."

"그래, 이번에도 원서는 한번 내보지 뭐, 날짜가 언제라고?"

"1월 5일입니다. 올라가서 연세대랑 성균관대 둘 다 치고 내려오면 되긴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원서는 한번 써봐라. 한번 해보는 게 좋지 않겠나?"

"네, 그런데 좀 걸리는 게, 연세대는 시험 유형이 성균관대랑 전혀 달라서 그게 좀 문젭니다."

"그래? 어떻게 다른공?"

"성균관대는 그냥 편입영어, 객관식 50문제인데, 연세대는 영어 논술이라서 제가 해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런데 영어 논술이란 게 자기주장을 그냥 영어로 쓰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은데?"

"네, 그렇기는 한데, 제가 한글로도 논술을 써본 적이 없어서…"

"그래도 강현이 글 쓴 거 보니까, 할 수 있을 것 같던데…"

"그게 결정적으로 걸리는 게, 이번에 성균관대랑 연세대 영문학과 시험에 집중을 하게 되면, 그 시간에 화학을 공부하면 경북대학교 화학과는 될 것 같은데, 어쩌면 셋 다 망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래도, 어차피 성균관대 한번 내본 김에 연세대까지 내보지 뭐, 원서는 한번 내보자."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가서 원서를 접수한다. 원서접수를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푸근해지기도 한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남은 기간 동안에 시험을 준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오늘이 12월 29일, 연세대학교는 시험이 1월 5일, 성균관대는 7일이니, 연세대까지는 시간이 딱 1주일, 성균관대까지는 9일 남았다.

우선, 객관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논술은 어림도 못 낼 것 같아서, 우선은 성균관대 시험에 집중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연세대는 딱 이틀에서 3일만 준비하자는 마음을 먹었다.


"2011년 1월 1일 토요일"



금요일까지는 우선 편입영어를 공부했다. 토요일이다. 주말이 찾아왔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쉴 틈이 없다. 사실 이 때는, 연말, 새해 첫날... 이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오로지 생각이 났던 것은, 다가오고 있는 편입시험과 내가 이제부터는 28살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지금부터는 연세대학교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시험 전까지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은 3일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시험은 서울에서 봐야 하는데, 시험 전날은 서울까지 가는데 체력과 시간을 많이 쓰기에 거의 공부는 하지 못한다고 생각을 해야 했기 때문에, 시험 직전의 하루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논술을 준비할 책을 구입하려 교보문고에 들렀다. 사실 논술에 대한 막연한 자신감은 있었다. 달달달 외워서 푸는 편입영어보다는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나오면 되는 논술이 오히려 나한테는 조금 더 유리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처음에는 그냥 시험장에 가서 내 마음대로 글을 쓰고 나올 생각이었다.


사실, 글이라는 게 억지로 쓰려고 하면 오히려 더 잘 나오지 않는 것이어서, 난 자연스럽게 글이 나올 때 연필을 잡거나, 노트북 앞에 앉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표현은 좀 지저분하지만, 마치 배가 아플 때, 자연스럽게 화장실로 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준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만이라도 준비를 해가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을 들었다. 우선 기본적으로 논술은 형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기에, 최소한 형식이라도 준비를 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에 일가견이 있는 연세대를 다니는 동생, 홍윤이라는 녀석에게 짤막하게 온라인으로 논술 특강을 받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페이스북을 켜놓은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는데, 노트북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가 내게 채팅을 걸어오는 것이다. 확인을 해본다. 지금은 지구 반대편에 가있는 찬양이다.


찬양이는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 지금은 미국으로 유학을 가 있는 상황인데, 우연히도 내게 채팅을 걸어온 것이었다. 그렇게 찬양 이를 통해서도 논술에 관한 정보를 많이 듣게 되었다. 그리고 찬양이가 알려준 것들만 지켜준다면 논술은 크게 어렵지 않은 것이라고 내게 희망을 주는 멘트도 마지막으로 날려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랑 동갑내기 친구인, 현재는 초등학교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영래에게 영어 논술을 써야 하는데 어떤 교재를 쓰는 게 좋겠냐고 도움을 청했더니, 자기보다는 종원이 형이 최근에 일본에 가서 GRE 시험을 치고 왔다고 하며, 종원이 형에게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개념이 없게도 종원이 형에게 문자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랬더니, 종원이 형은 친히 내게 전화를 주신다.


"앗! 형님 죄송합니다. 제가 개념 없게도 문자로 말씀을 드렸네요."

"아… 아이다. 그냥 내가 문자로 이야기하려니까 너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전화한 거다. 그래 이번에 연세대에 시험 보러 간다고?"

"네, 개념 없게도 연세대에 원서 한번 내봤습니다."

"개념 없기는, 그래 준비는 많이 했나?"

"아직 전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교재부터 알아보려 하는데…"

"음… 그게 시험이 어떤 시험이지? 시험 시간이나 그런 건 모르고?"

"시험 시간은 아마 2시간쯤 될 것 같습니다."

"2시간이라고? 그럼, 엄청나게 어려운 시험인데, 평균적으로 한 시간에 400 단어 분량을 제출한단 말이야… 그런데, 2시간이면 거의 800-900 단어를 써야 된다는 말인데… 그럼, 우선은 니가 나올만한 주제를 몇 개 정해서 글을 한번 써보고, 시간이랑 분량을 체크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우선은 쓸 내용이 없더라도 내용을 많이 적는 게 중요하거든… 나도 이번에 논술 때문에 논술 교정 의뢰했었는데, 그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채점을 해야 되는데, 내용이 없으면 채점을 할 수 가 없대. 그래서 기본적으로 글을 많이 쓰는 게 중요하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교재는 어떤 걸 보는 게 좋겠습니까?"

"음… TOEFL Writing 교재 보면 그나마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근데 그거 시험 날짜가 언제라 그랬지?"

"이제 3일 정도밖에 안 남았습니다."

"3일이라고? 그럼 너무 빠듯한데. 그러면 일단 교재를 보고, 많이 할 시간은 없으니까, 일단 하루에 한편 정도씩만 글을 쓰는 걸 연습해봐라, 하루에 한편씩 하면 3편 정도 쓸 수 있을 거니까, 그 정도만 잘 준비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네."

"네, 알겠습니다. 저 때문에 괜히 전화까지 주시고 감사합니다."

"아이다. 준비 많이 해서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다. 힘내라!"


어쨌든 그리하여, 내가 토플에 관한 책을 구하러 교보문고로 오게 된 것이다. 토플에 관한 책을 이것저것 살펴보는데 내가 필요로 하는 분량은 책 한 권 중에서 몇 페이지밖에 되지 않는데, 책 한 권을 통째로 사는 건 너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책에 있는 질문만 몇 개 적어가서 혼자서 우선 연습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나 정도만 딱 연습을 해보았다.


오늘을 포함해서 시험일까지 4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도,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하루 정도는 쉬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급해도 돌아가라.'


쉴 건 쉬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오늘은 그냥 교보문고에서 책만 좀 둘러보고 저녁에는 친구들을 좀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친구들을 조금 만난다. 하지만 내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기에 여유를 부릴 정도는 안된다. 간단히 저녁이나 같이 먹고 하는 정도였다. 그래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일까...


토니 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와 알고 지낸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자주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친하게 지내는 형이었다. 토니 형은 외국에서 생활을 오래 한 탓에, 스페인어를 가장 잘하고, 그다음이 영어, 그다음이 우리나라 말 순으로 언어에 능숙했다. 예전에 토익을 공부할 때도 몇 가지 조언을 들었었는데, 꽤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표적으로 기억나는 일화는 내가 토니 형에게 물었다.


"영어 원서를 많이 읽었는데도 아직 영어 읽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고민입니다."

"그래? 많이 읽었다고? 그럼 한 천권쯤 읽었나?"

"아니... 그건 아니고."

"많이 읽었다고 하려면 그 정도는 읽고 많이 읽었다고 해야지..."


이러한 내용으로 내게 정신적인 충격을 한번 주었던 적이 있는 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그 형이 얼마 전에 통역장교로 입대를 하게 되어서, 최근에는 자주 보지를 못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제부터는 훈련이 끝나고 주말에는 휴가를 나와서 통화가 된다고 했다. 오랜만에 토니 형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형님, 저 이번에 개념 없게도 연세대랑 성균관대 편입 원서 썼습니다."

"그래? 에이… 너 정도면 연세대는 당연히 써야지."

...


그리고 새해의 첫날은 그렇게 흘렀다. 나는 28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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