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절망적이지만, 이상하게 될 것 같은 기운이 든다.
"2010년 12월 28일 화요일"
이미 일은 저질러졌다. 편입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이 무턱대고 일은 저질렀으니… 최소한 기출문제집이라도 구해서 책을 봐야 할 것 같다. 어차피, 학교 도서관에는 오래된 편입 책 밖에 없을 터이니, 시내에 있는 교보문고에 가서 한 권 사 오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간다.
최근에는 그렇다. 뭔가 일이 잘 풀릴 때는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번에도, 혹시?'
집을 나선다. 바깥에는 눈발이 조금씩 날리고 있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해, 교보문고로 들어간다. 그리고 어떤 책이 나와있는지 살펴본다. 예전 같았으면, 책 한 권 사는데 이런 고민 저런 고민을 했을 텐데, 당장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런 걱정할 여유도 없다.
'연세대학교 편입시험은 영어 논술이랬지…'
영어 논술에 관한 책도 조금 살펴보지만 어떤 책을 사야 할지 정확히 잘 모르겠다. 우선은, 성균관대 시험인 편입영어에 관한 책만 우선 사기로 했다. 이것저것 살펴본다. '김영…'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름이다.
편입시험에 익숙하지 않은 나도, 한 번쯤은 들어본 것 같다. 책도 딱 한 권밖에 남지 않았다.
다른 학원에서 나온 책도 하나 있고 더 깔끔해 보이지만, 어차피 양도 많고 다 풀어보기는 힘들 것 같아서, 김영책으로 구입을 하고 나왔다.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온다. 갑작스럽게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대구에는 원래 눈이 거의 오지 않았었는데, 올해는 좀 이상하다.'
도로는 마비되고, 버스는 오지 않는다.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버스 정류장에 붙어있는 전광판에는 눈이 온 탓에, 다음 버스가 전부… "20분 후 도착 예정, 40분 후 도착 예정…"이라고 되어있다. 평소에는 저런 시간을 보기 힘든데…
역시 눈이 오니 한 번에, 마비가 되어 버린다.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멀쩡했는데 말이다.
'빨리 가서 공부해야 하는데…'
버스를 거의 30분 정도 기다린 것 같다. 이제는 초조함도 사라진다. 바쁜 와중에 잠깐 쉬어가라고 이런 시간을 주는 것으로 생각을 했다.
'어차피 늦은 거…'
그래도 버스는 온다. 버스에 타고 창 밖 풍경을 본다. 사실 대구에 살면서도 버스를 탄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아니, 사실 탈 일이 거의 없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주로 내가 가는 곳은 경북대학교 도서관과 집, 이 두 곳밖에 없었는데, 집에서 경북대학교까지는 버스로 가나 걸어서 가나 도착하는 시간은 거의 비슷한 관계로 매번 걸어서 다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타는 버스는 내게 일탈이었다. 별 것 아닌 것이긴 하지만, 내게는 새로운 일이다.
"이번 정류장은 경북대학교 북문입니다."
내릴 때가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도, 여전히 눈은 내리고 있다. 경북대학교 도서관으로 들어가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지하 1층 열람실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다. 마음을 가다듬고, 방금 사온 편입시험 작년 기출문제를 풀어본다. 가나다 순으로 배치가 되어 있었기에 첫 장은 가톨릭대학교 문제다. 의외로 쉽지가 않다. 가톨릭대학교라… 대구에 사는 나에게는 흔히 듣지 못하는 이름의 학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꽤 어렵다.
문제를 다 풀고 채점을 해보니 40문제 중 22문제 밖에 맞추지 못했다. 여태, 나름 영어를 공부해왔다고 생각을 했는데, 편입영어 쉽지가 않다. 성균관대 시험 전까지 약 1주일… 갑자기 희망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이후로도, 가나다 순으로 문제를 풀었다.
시험을 치기 전까지 경북대학교 도서관에서 문제를 풀어보았는데, 처음에 생각보다는 중간중간 난관에 많이 부딪힌 탓에 많은 기출문제를 풀어보지는 못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문제가 훨씬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많은 기출문제를 풀어보지는 못했지만, 시험 전까지 약 5일간에 걸쳐서 풀어본 기출문제의 시험 결과를 나열해보자면 이러하다.
가톨릭대학교 22/40
강남대학교 32/40
경원대학교 25/35
경희대학교 인문계 33/60
경희대학교 자연계 39/60
고려대학교 41/70
계명대학교 47/50
국민대학교 21/40
성균관대학교 오전 30/50
상황은 별로 좋지가 않았다. 아니, 사실 애초에 편입영어를 공부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계명대학교 편입시험 문제를 풀었을 때는 다른 학교에 비해서 문제의 수준이 상당히 낮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다른 서울권에 있는 대학교의 시험은 정말, 내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문제들이 대부분이었다. 내 수준은 딱 지방대 수준인 느낌이었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런 것들은 있었다. 시험을 치기 전에 연습문제에서 성적이 좋게 나오면, 정작 본시험에서는 성적이 좋지 않은 그런 경우 말이다. 반면에, 연습문제에서 죽을 쑤게 되면, 오히려 본시험에서의 결과는 훨씬 좋게 나왔다. 내가 쳐 본 최근의 시험 결과를 살펴보면 우연인지, 다들 그렇게 나왔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분명히 작년 모의고사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는 죽을 쑤고 있는 상황인데, 아니 어떻게 보면 거의 가망이 없는 수준인데... 막연한 걱정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틀릴 문제라면, 준비할 수 있는 지금 틀리는 게 차라리 나으니...'
시험장에서만 그 문제를 안 틀리면 되는 것이다. 내가 가질 수 있는 희망이라면 바로 그것 뿐이었다. 사실, 순수하게 편입영어를 공부한 기간은 약 5일이었다. 그 기간 동안 작년 기출문제를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총 9개의 기출문제밖에 풀지 못한 것에는, 이미 풀었던 문제에 대한 복습을 비교적 철저하게 하는 내 공부 방식에 있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문제를 푸는 것에는 크게 생각을 두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한번 풀었던 문제 중 틀린 문제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평소에 하고 있다. 심지어는 맞았던 문제도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이 기출문제를 풀면서도 맞은 문제조차 하나하나 확인을 하고 넘어갔기에 시간에 비해서 많은 기출문제를 풀어보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천천히, 나는 준비하고 있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 지도 모른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