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재단 레지던시 프로그램 '작가의 방' 참여 작가 인터뷰
더웨이브컴퍼니가 운영하는 코워킹스페이스 '파도살롱'은 올해 강원문화재단 레지던시 프로그램 '작가의 방'의 창작 공간으로 선정돼 작가 4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들은 한 달 동안 파도살롱에서 강원도, 강릉에서 영감을 얻은 작업을 진행하게 됩니다. 6월에는 미디어·퍼포먼스 작업을 하는 차지량 작가와 1인 출판사 '왓어북'을 운영하는 안유정 작가가 파도살롱에 머물고 있습니다. 강릉 생활에 한창 적응 중인 두 작가를 파도살롱에서 만나봤습니다.
※차지량 작가 소개 (차지량 공식 웹사이트 소개글 발췌)
"나는 미디어를 활용한 참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시스템과 개인에 초점을 맞춘 주제별 현장을 개설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프로젝트 현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시스템의 가능성을 스스로 제안하고 상상한다. 2010년, 온라인 커뮤니티 세대 독립 클럽을 운영하며, 사람들과 <Midnight Parade>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2011년, 노동하는 개인과 기업문화의 관계를 겨냥한 ‘일시적 기업’을 만들어 사람들을 고용했고 업무를 수행했다. 2012년, 주거공간이 필요한 사람들과 살 곳을 찾아 철새처럼 이동하며 새로 완공되어 비어있는 집에서 <New Home>을 모색했다. 2013년, <정전 100주년 기념 사랑과 평화 페스티벌>과 <CJ.r>을 통해 내부 비평적 작품을 이어갔다. 2014년 시작된 ‘한국 난민’ 시리즈는 국민을 난민으로 몰입하여 시스템의 균형이 어긋난 상황들을 공유하는 프로젝트였다. 2015년, <멈출 수 있는 미래의 환영>은 미래에서 온 난민과 현재의 정치인이 한강 위에서 삶에 대한 협상을 시도했다. 2016년부터 해외 이주를 경험한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조직하고 <BATS>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2018년 <BGM(Background Memory)>을 통해 지난 시간을 소리와 빛의 기억으로 정리했다. 2019년 태어나고 자란 도시에서 떠나는 여정(2012.12.20-2019.12.20)을 담은 <떠나려는 사람만이 모든 것을 본다>를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전시와 공연, 스크리닝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발표되었다."
―강릉엔 어떻게 오게 됐나.
=올 상반기 여러 해외 일정이 계획돼 있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취소되거나 정지됐다. 올해 계획을 조정하고, 계획들을 실행할 동력 자체를 점검할 수 있는 방식을 찾던 중에 '작가의 방'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고유한 맛과 멋, 색이 있는 곳에 머물고 싶었고, 그래서 강릉을 선택했다.
―작가로서가 아니라 차지량이란 한 사람으로서 강릉에 올 때 어떤 것을 기대했나.
=뻔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정보의 양이 적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서울은 거리에만 나가도 엄청난 양의 시각적 정보를 접하게 된다. 강릉에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 점에서는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또 한적한 도시 분위기와 바다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매일 바다를 보려고 한다. 머물고 있는 숙소에서 차로 10분 정도면 바다에 갈 수 있다. 강릉에 처음 도착해서 숙소에 가기 전 바다를 보러 갔을 때 느꼈던 상쾌함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매일 목격하는 바다는 - 뭐랄까, 계속 다른 단편들을 보여준다.
―강릉에서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나.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내린다. 오전에는 메일을 확인하고 마무리해야 하는 '사회적 활동'을 한다. 그러고 나서 책과 노트북과 촬영 장비를 챙겨 나온다. 맛집을 기준으로 돌아다니면서 쉬기도 하고, 기록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제 호흡에 맞춰 지내고 있다. 구조적으로는 서울에서의 일상과 다를 게 없다.
―파도살롱에 대한 인상은.
=지역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관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또 강릉을 지속적으로 활성화하고자 하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다른 지역에서도 가로막혀 있고 굳어져 있는 것을 풀어보려는 방식들에서 젊고 새로운 에너지가 발생하고 있다. 에너지의 온도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현재는 파도살롱 같은 커뮤니티들이 에너지를 문화적 상생의 방향으로 끌고 가는 안정된 언어를 찾았다고 본다. 판을 엎는 공격적인 방식이 아니라. 이런 커뮤니티들이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실험을 해나가기 위해 어떤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시스템에 상상력을 제안하는 개인"에 초점을 맞춘 작업을 진행해왔다. <일시적 기업(2011)>이나 <뉴 홈(2012)>, <한국 난민 판매(2014-)>는 사회·정치적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개인들의 이야기였다면, 가장 최근작인 <떠나려는 사람만이 모든 것을 본다(2012-2019)>는 '시간', '공간'과 같은 추상적인 시스템을 흔들어놓는 작업이란 인상을 받았다.
='떠나려는 사람만이 모든 것을 본다'는 2018년 베를린의 레지던시 스튜디오가 있던 건물 지붕에 누워 있다가 떠올린 문장이다. 2012년부터 한국이란 국가 시스템 밖으로 탈출하려는 시도를 했고, 그런 떠남의 경험이 누적된 상태를 되돌아보면서 ‘떠나려는 사람만이 모든 것을 본다’는 생각을 했다. <떠나는 사람만이 모든 것을 본다>는 2012년 12월 20일부터 2019년 12월 20일까지 7년 동안 다양한 시간과 장소에 머무르며 감각한 일상 기록을 휴대폰으로 모은 것이다. 무엇인가가 시스템을 떠나려고 할 때 운동성이 발생하는데, 이를 시간과 공간을 다층적으로 인지하는 감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앞서 언급한 예전 작업들이 무엇인가를 예술의 방식으로 도달하도록 하기 위한 표현이었다면, <떠나려는...>은 그런 연출적 방식이 아니길 바랐다.
―작업 방식도 조금 달라진 것 같다.
=그동안 참여자와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진행하는 작업을 해왔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욕망에 치여 지치기도 했다. 무엇보다 참여자에게 어떤 역할에 대한 강박을 주지 않기로 했다. 작업 방식의 전략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예술 작품 안에서의 역할적 강박이 수용되기조차 어려운 시대, 어떤 이차적 역할을 생산할 수 없는 시대, '나'가 감각하는 것에 다른 것들이 개입하지 않기를 바라는 시대, 낭비할 수 없는 시대다. 작품 현장에서의 역할 소화가 아니라 작품을 경험하고 그것과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의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상상적 커뮤니티를 묶어낼 수 있으리라 본다.
―음악을 직접 만들어 작품의 주요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BGM(Background Memory)(2018)>는 'Background Music(BGM, 배경음악)'과의 의도적 언어유희가 아닐까 생각했다. 작업에서 음악은 어떤 요소 혹은 의미인가.
=누군가를 만나 대화할 때 적절한 호흡을 만들 수 있는 음악을 고르는 걸 좋아한다. 혼자 어떤 공간에 있을 때도 공간에 적절한 호흡을 부여하고 싶어서 각각의 장소마다 음악을 만들었다. <BGM>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친구와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경험들에 관한 트랙이다. <BGM>의 음악은 특정 코드가 반복되고 여기에 미묘하게 변주된 멜로디가 더해지는, 상당히 단순한 것들이었다. 관객은 별다른 메시지가 없는 영상을 보면서 그 안에 무언가를 투영하곤 하는데, 음악을 통해 관객이 작품을 다양한 여정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떠나려는 사람만이 모든 것을 본다'고 했다. 강릉을 떠날 사람으로서 강릉의 어떤 것을 볼 지 기대된다. 최근 유튜브 채널에 강릉 바다를 담은 <검정 파도(Black wave)>란 작업을 올리기도 했다.
=계속 자연적인 진동(wave)과 인공적 진동을 주제로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휴대폰으로 산과 바다를 많이 기록하려고 한다. 파도, 땅, 산 모두 어떤 자연적 진동에 의해 만들어진 굴곡들이다. 이 진동을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구상 중이다. <검정 파도>는 현장에서 포착한 이미지에 노출값 조정 같은 기계적 변형을 가했을 때 만들어지는 차이에 관한 일종의 스케치 실험이다. 변형된 파도 이미지에서 사람들이 저마다 어떤 형상을 발견하는 것도 흥미롭다.
강릉에 머무는 한 달 동안은 정리를 안 하고 싶다. 한 달은 내가 느낀 것들을 정리하기엔 너무 짧다. 그저 새로운 것들에 자주 부딪히고 감각화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