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재단 레지던시 프로그램 '작가의 방' 참여 작가 인터뷰
더웨이브컴퍼니가 운영하는 코워킹스페이스 '파도살롱'은 올해 강원문화재단 레지던시 프로그램 '작가의 방'의 창작 공간으로 선정돼 작가 4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들은 한 달 동안 파도살롱에서 강원도, 강릉에서 영감을 얻은 작업을 진행하게 됩니다. 6월에는 미디어·퍼포먼스 작업을 하는 차지량 작가와 1인 출판사 '왓어북'을 운영하는 안유정 작가가 파도살롱에 머물고 있습니다. 강릉에 온 지 일주일을 갓 넘긴 두 작가를 파도살롱에서 만나봤습니다.
※안유정 작가 소개
'회사 없는 삶'을 살고 싶어서 퇴사하고 1인 출판사 '왓어북'을 세웠다. 책을 만드는 편집자이자 직접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왓어북의 첫 책 『다녀왔습니다 뉴욕 독립서점』(2018)을 직접 썼고, 『스탠드업 나우 뉴욕』(2018), 『매일 아침 또박또박 손글씨』(2019), 『이렇게 된 이상 마트로 간다』(2019), 『엄마도 꿈이 엄마는 아니었어』(2020)을 펴냈다.
―강릉 오기 전부터 바닷가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겨온 것 같다.
=서핑을 하려고 2015년부터 해마다 한 두 번은 양양에 갔다. 사실 서핑보다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바다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았다(웃음).
제주도를 좋아해서 가끔 제주도에 즉흥적으로 가곤 한다. 마감은 다음 주인데 일이 잘 안 풀리고 머리가 복잡하면 다음 날 아침 비행기 티켓을 끊어서 제주도로 가서 '1일 1바다'를 한다. 바닷가 카페에서 일하다 보면 신기하게 마감에 맞춰 일을 끝내더라.
―브런치에 연재한 '1인출판노트' 글들을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퇴사하기로 한 이유를 정리한 대목에서 '진정한 리모트 워커 정신'을 느꼈달까(웃음). 지금 강릉에서 제대로 리모트 워크를 하고 있는데, 어떤가.
=과장을 조금 보태면 '내가 있을 곳이 여기야' 싶을 만큼 좋다(웃음). 제주도에서는 카페에서 혼자 일하곤 했는데, 여기 파도살롱은 나에게 필요한 업무 환경이 잘 갖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방해받지 않고 혼자 일하는 걸 선호하지만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라, 누군가와 정기적으로 소통할 수 없는 데서 고립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일하는 분위기 속에서 좀 더 '으쌰으쌰'하게 된다.
― '작가의 방' 프로그램은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낯선 곳에 머무는 것을 좋아한다. 지인이 이 프로그램을 소개해줬는데, 처음에는 좀 망설였다. 8월에 출간할 책이 있어서 환경을 바꾸기보다는 작업실에서 집중해 일하는 게 맞지 않나 싶었다. 그러다 작업실에 틀어박혀 일하는 것 보다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집중력을 얻어서 일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이란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기약 없이 늘어지는 게 아니라 한정된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충실히 쓰려고 노력하게 된다.
―싫어하는 회사에 의존하지 않는 대안적 삶을 위한 선택으로 1인 출판사를 세웠다. 강릉에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속 가능한 삶을 살기 위해 창업을 하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많다.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소신껏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무엇을 싫어하고 견딜 수 없는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 싫어하는 것, 견딜 수 없는 것을 피할 수만 있어도 남 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침에 회사 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는 생활이 싫었다. 또 회사에서 동료들과 같이 일하며 좋은 에너지를 얻기도 했지만 '모두와 잘 지내야 한다'는 압박을 느껴서 힘들었다. 그래서 더 고생스럽고 돈도 많이 못 벌더라도 직원 없이 혼자 일하기로 했다. 그게 내게 지속가능한 방식이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하게 되는데, 나와 손발이 잘 맞는 사람들을 선택해서 일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지금까지 '뉴욕 독립서점' , '스탠드업 코미디', '퇴사하고 군산에서 마트를 연 청년', '경단녀 위기를 글쓰기로 극복한 엄마 작가' '손글씨 교본' 같이 대세에서 약간 빗겨나 있는 소재들을 다뤄왔다. 왓어북은 어떤 색깔의 출판사인가.
=의도적으로 마이너한 소재를 다루려던 건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웃음). 첫 책인 『다녀왔습니다 독립서점』도 퇴사 직후 뉴욕에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어떻게 하면 회사 안 다니고 혼자 먹고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쓰게 됐다. 임대료 비싼 뉴욕에서 독립서점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어떻게 하면 내 식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화두로 내 생각, 내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마이너한 색을 입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손글씨는 대세 아닌가?(웃음) 이 손글씨 교본 책이 의외로 잘 팔려서 곧 3쇄를 찍는다.
주변에서 사업을 하려면 특정 분야를 정해서 전문성을 쌓아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하는데,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다 보니 분야가 안 좁혀진다. 지금은 600쪽이 넘는 거시경제학 교재를 준비하고 있다. 저자는 10년 전 영어 토론 스터디에서 만난 분인데, 오랫동안 경제학을 가르쳐왔다. 자기 일을 열정적이고 철저하게 하는 분이라 같이 책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제안했다. 유명하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보다는 평범한 삶을 살지만 자기 일에 굉장히 프로페셔널한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이들이 가진 실용적인 지식, 삶의 방식들을 다루는 책을 계속 만들 것 같다.
―강릉에서는 어떤 작업을 할 계획인가.
=양양의 서핑 스팟처럼 사람들이 풍류를 즐기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했지만 매력이 있는, 그런 장소들을 찾아 글을 쓰려고 한다. 많은 제보 부탁드린다(웃음). 또 파도살롱에서 리모트 워커로 일한 경험을 브런치에 연재해볼 생각이다. 파도살롱에서 즐겁게 일하고 있어서 더 많은 사람이 이곳을 경험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