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안 달지만, 언젠간 달겠지 싶은 은지들에게

고진감래(苦盡甘來) — 고난을 지나며 감사를 배우다

by 김작가

인생을 살다 보면, 선택할 시간도 없이 난이도가 바뀌는 순간이 있다.

우리는 그런 순간을 지나며 “감사”가 아니라 “고난”이라 부른다. 나에게도 그런 고난의 시작이 있었다. 복직 전날 알게 된 둘째의 발달 지연은 인생의 난이도가 각오도 준비도 없이 높아졌다. 나도 그렇게 감사보다는 고난이라 부르길 선택했었다. 그런데 고진감래라는 지혜를 통해 다시 감사를 잡으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고난은 결국 내 몸부터 무너뜨렸다.

자율신경계가 망가졌고, 치료를 받기 위해 침대에 누운 채 주사 바늘에 열 번이 넘게 찔렸다.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치료가 끝나고 정신은 반쯤 날아간 상태에서 침을 닦으며 나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든 그 사람 아니 의사에게 내 돈까지 바친 뒤 말했다.

“감사합니다.”

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다. 나를 이런 고난으로 몰아넣은 사람에게 할 말이 감사라니.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의 고난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 걸까.

병원에서는 늘 그렇다. 아프게 하는 사람인 의사를 우리는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한다.

왜냐하면 그 고통이 나를 망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낫게 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참고, 견디고, 내 돈까지 주면서 끝내 감사해한다.


삶도 다르지 않다는 걸 그때 침을 닦으며 조금 알게 됐다.

이 고난이 나를 함부로 망치고 있지는 않다는 믿음의 시선으로는 감사일 수도 있겠다는 관점의 변화 말이다.


지금 이 시간 덕분에 나는 느린 아이를 키우는 가정을 더 잘 이해하는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예전에는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저녁에 혼자 맥주를 마신다고 수줍게 이야기하면, 끄덕이며 그럴 수 있다고 한 잔 정도는 괜찮다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

고진감래라는 말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솔직히 아직 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이 쓴맛이 아무 의미 없이 나를 삼키고 있지는 않다는 것만큼은.

그래서 나는 오늘, 이 고난 앞에서도 조심스럽게 감사라는 말을 다시 붙잡아 본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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