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유치원을 고민하는 은지들에게

밟히지 않는 것과 밟지 않는 것

by 김작가

“걸리버 여행기에서 소인국이랑 거인국 중 어디 가고 싶어?”

나는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딸에게 물었다.

딸은 젓가락으로 밥을 뒤적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밟히지 않는 것과 밟지 않는 거지.”

그 순간, 나는 둘째의 유치원 선택 앞에 훨씬 본질적인 답을 내리게 되었다.

중요한 건 테스트를 합격해야 갈 수 있는 유치원, 원어민 선생님의 고퀄리티 커리큘럼이 아닐지 모른다.

유치원 선택의 기준이 “밟히지 않는 용기”와 “밟지 않는 배려”를 가르치는 곳이 아닐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크기와 힘을 기준으로 많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더 큰 집,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성취.

심지어 아이들에게도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압박으로 육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딸은 그 경쟁의 바깥에서, 전혀 다른 기준을 제시했다.

“밟히지 않는 용기”와 “밟지 않는 배려”

영어 유치원을 포함한 교육은 ‘앞서가기’의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아이들을 밟고 지나치는 일도 자연스럽게 용인된다.

입시 경쟁이 점점 더 낮은 연령대로 확장될수록, 아이들은 배우기도 전에 ‘밟히지 않기 위해’ 창을 들고 싸우고, 부모는 아이 대신 ‘밟히지 않게’ 헌신적인 방패가 된다.

이렇게 우리가 사는 가정과 사회는 여전히 크기와 힘의 논리를 기준으로 굴러간다.

하지만 딸의 대답은 나에게 묻는다.

정말 중요한 건 힘의 크기가 아니라 힘의 질서가 아닐까?”

흔히 힘의 질서로 2가지 방향을 가지고 양육을 한다.

고지론은 출세지향주의로, 미답지론은 인본주의를 나타내기 쉽다.

하지만 주장하고자 하는 힘의 질서의 방향은 자녀가 어디로 갈지 먼저 결정하지 말고 어떤 사람이 될지 고민하며 양육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로서, 사회인으로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누군가를 밟지 않으려는 노력은 얼마나 했는가.

그리고 밟히지 않으려는 용기는 얼마나 지켜왔는가.

이 두 가지 질문에 나는 어떻게 삶의 행동으로 아이에게 좋은 어른으로 보일 수 있을까?


딸의 짧은 대답은 결국 이렇게 묻고 있었다.

“엄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어?”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시편 122편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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