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적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2025년 여름,
교보문고 광화문 글판에 선택받은 시인은 이재무였습니다.
나는 시끄러운 여름이 좋다
여름은 소음의 어머니
우후죽순 태어나는 소음의 천국
소음은 사물들의 모국어
백가쟁명 하는 소음의 각축장
하늘의 플러그가 땅에 꽂히면
지상은 다산의 불꽃이 번쩍인다
여름은 동사의 계절
뻗고, 자라고, 흐르고, 번지고, 솟는다
- 나는 여름이 좋다, 이재무
여름은 동사의 계절.
뻗고, 자라고, 흐르고, 번지고, 솟아 나는 젊은 날들 가운데에서 맞이한 서른 번째 여름은 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게 하는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날이 갈수록 사회 속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반가운 안부와 함께, 앞으로 '어디'에 자리 잡을지,
앞으로 '어떤' 자리를 선점할지, 어느 직업을 가질지. 그런 질문과 우려들, 관심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그저,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라고
일본어로 하루하루 毎日(まいにち)는 '마이니치'라고 할 뿐이라고 실없는 농담을 돌려 말할 뿐입니다.
정말입니다.
서울에 온 이후 단 하루도, 무엇(what)이 되고 싶다 스스로 정의한 적이 없습니다.
저의 방향성은 항상 360도 그저 하루하루 가고 싶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했을 뿐이니까요.
그런데, 사회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이제 저를 이름이 아닌 또 하나의 직급으로 부릅니다.
마치 가정 안에 어머니가 그렇고, 학교 안에 선생님이 그렇듯
명사는 역할이 되고, 책임이 되고, 지위가 되어
그 명사가 주는 부담감에 걸맞은 사람이기 위해서 나름으로 부단한 하루하루의 날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다시 나는 뻗고, 자라고, 흐르고, 번지고 싶어 졌습니다.
그리하여 근 10년 동안 고민했던 질문,
'나는 커서 무엇이 될까'
그 질문에 방향성을 찾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되지 않기로.
앞으로의 하루하루가 그 답을 줄 것입니다.
나는 ‘무엇’이라는 명사(Noun)가 되려 하지 않고,
동사(Verb)적 삶을 살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어떤 일의 결과를 위해 행하기보다, 어떤 일의 목적을 위해 행하는 사람으로 연구하고 행하고 행동하는 생활을 당분간 해 볼 생각입니다.
그 길에서 부디 나를 잃지 않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