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빙산 Jun 18. 2024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음을

remember, it's always there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할 때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풍경


ㅇㅇ천을 따라 북쪽으로 달린다

저 멀리 ㅁㅁ산이 크게 보였다가

안 보여졌다가 결국 시야에서 사라진다


단순(무식)하게 생각하면

가까워질수록 잘 보여야할 것 같은데

적당한 거리에서 더 잘 보였다


언젠가 차로 그 근처까지 가면

더 크게 더 웅장하게 선명하게

잘 보일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저 산이 멀리 있음을 알고 있지만

가로 막아 보이지 않게 하고,

있다는 걸 잊게 하는 것들이 있다.


어떤 때는 거리

어떤 때는 높이

어떤 때는 공기 중의 불순물

어떤 때는 장해물


어떤 때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봐야 보이고

어떤 때는 맑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어떤 때는 각도와 방향을 바꿔야 한다

어떤 때는 조금 수고스럽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보인다


종종 잊게 되는

희망도

진실도

사랑도

마찬가지


'산'이 거기에 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오늘이 첫째 사야의 생일은 아닌데 오늘 케익을 먹었어요.

생일 파티를 함께 하고 싶어하셨지만 당일 참석할 수 없으셨던 할머니 할아버지와 일정을 마추기 위해서 였습니다.


전 집에서 이런 저런 정리를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아내,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놀았어요.

아내와 아이들이 돌아왔는데 어머니께서 핸드폰을 두고 가신 것을 발견하고 가져다 드리러 나갔어요.

첫째가 쪼르르 따라나왔죠.


핸드폰을 드리고 집에 돌아오려하니 옥상에 가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식사 준비하는 시간에 막내를 안고 재워보려다가 옥상까지 올라갔다 왔다고 얘기한 걸 기억하고 있었어요..


놀이터에서 바라본 앞산

“계단으로 갈까? 갈 수 있겠어?”

- 응!


이제 만4세가 된 사야는 당차게 대답합니다.


하나, 둘, 셋, 넷…


“아빠, 이제 몇 층이야?“

- 4층, 이제 바깥쪽 계단으로 갈까?


엘레베이터 계단실의 계단 말고도 외벽 쪽으로 계단이 있는 구조 입니다.

그렇게 아이와 하늘이 보이는 계단에서 걷고 또 걷고 올라갔어요.


7층까지 가본 적은 있는데, 2배가 넘는 거리를 꾸준히 올라갔어요.

5층에서 보이는 앞산

7층에서 보이는 앞산

9층을 넘으니 더 멀리 있는 산이 보입니다.


그렇게 옥상까지 다다르니 더 넓은 시야가 펼쳐 집니다.


저도 사야도 같이

‘우와-’





자전거를 탈 때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멀리 있어야 보이는 구나’

‘날씨가 맑은 날을 기다려야 보이는구나’


그런데 오늘 생각해보니

더 높이 올라가는 선택지도 있었더라구요.


어떤 일을 마주할 때,

우릴 괴롭게 하거나,

절망이 찾아오려고 할 때,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 거리 두기 zoom out

- 타이밍을 기다리가 wait out

- 각도/발상의 전환 change the perspective


그게 평면에서 달리는 자전거의 시점에서 생각할 수 있던 겁니다.

그런데 오늘 첫째 아이와 계단을 올라 처음 가본 옥상에서 깨달은 건

할 수 있는 선택지가 하나 더 있었다는 거네요.


- 높이 올라가기  rise above


이제 네 가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는 ‘기억하기’ 입니다.

달릴 수 없을 때,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올라갈 힘이 없을 때,

우리는 저 멀리 저 산이 있다는 걸 기억해낼 수 있습니다.


그건 희망하기 때문에 보이는 게 아니라,

그게 저 곳에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어떤 존재를 느끼지 못할 때

알고 기억한다는 건 큰 힘이 됩니다.

그게 사실의 힘이죠.




1x층에서 본 앞산과 그 너머 보이는 ‘먼 산’
옥상에서 보이는 산. 유년 시절엔 어느 산 기슭 산동네에 산 적도 있는데, 살다보니 오래되었지만 높은 건물에서 바라보는 날도 있네요.


마침 파란 하늘에 구름 사이로 달도 떠있네요.

갤럭시 몇에서는 달 분화구까지 찍힌다던데

전 아직 옛날 기종의 아이폰 SE2 라.. 수채화 느낌의 디지털 줌/확대가 최선이네요.

(고장도 안나고, 폰을 험하게 쓰지 않아서…오~래 씁니다…)


달도 마찬가지에요.

보름달이 되었다가

손톱달이 되었다가


희망이 절망이 되었던 때도 있겠지만

또 절망이 희망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지 않나요?

2024.06.17 저녁의 달

고된 하루를 보내신 작가님과 독자님들께 보내고 싶은 제 생각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실 모든 인간은 귀엽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