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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산 May 19. 2024

언어에 대한 오해-On Language

언어소통의 한계를 인지하지 못할 때 생기는 일과 그 해법

사랑을 영어로 하면?

왠지 타일러 님이 나오는 리얼클래스 함정질문 같지만 단어 하나로 얼마나 다른 생각의 차이를 할 수 있는 지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LOVE.

연인 간의 ‘사랑해’의 그 사랑을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나 역시 그랬다.

미국 공립학교에서 고2를 보내던 시절.


역사수업을 같이 듣던 치어리더를 하던 금발머리의 파란 눈의 여학생에게 생일 축하를 받았다. 

대여섯명이 모여 함께 점심을 먹던 그룹원 중 하나.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꼭 탄산음료를 먹고 큰 소리로 트림을 했다. ‘꺼억-‘ 그제서야 시원하단 듯이 웃으며 ’excuse me’ . 그 모습이 슈렉의 피오나 공주를 연상시켰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한국기준으로 유치원생 감성의 색연필로 데코레이션을 한 카드를 줬다.

With love,

W*****y.


///////


비록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을 중2때 읽었고,

부모님께서 조상제사를 폐지하게 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다른 의미의 ‘유교보이’인 나.


LOVE?!!

L.O.V.E??

나한테?

(당시엔 Jazz를 듣지 않았기 때문에 그 유명한 Nat King Cole 의 L-O-V-E가 BGM으로 깔리진 않았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도 카드를 줬다.

하나 같이 love를 동반한 문장들이 있었다.

(현실 기억에서 일부 각색)


고1 때, 미국 시트롬 <Friends 프렌즈>를 주구장창 봤으면서도 현실세계에서 경험하니 정신을 차리지 못했나보다.

풋내기의 외국생활 에피소드는 여기까지.


물론, 사랑이란 단어를 LOVE로 번역할 수 있다. 맥락이 중요하다.


LOVE는 꼭 우리가 생각하는 그 ’연인의 사랑‘ 이란 뜻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지금이야 왠지 상식이 되었을 것 같지만.)


미국에선 자기가 키우는 강아지, 좋아하는 음식, 재미있게 읽은 책부터 남이 입은 옷, 뿌린 향수, …정말 많은 대상에 ‘love’를 남발했다.


대학생이 되서야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널 사랑하는가 (Essay on love /On Love)’ 를 읽고 왜 I marshmallow you 란 말을 썼구나- 하고 공감하게 됐다.


같은 단어라고 생각했지만 온도차는 크다.


아, 참고로 난 피오나 공주와 어떤 연애 관계를 구축한 바 없다.

(언제 볼 지 모르는 아내가 절대 억측을 할 것이기에 미리 하는 첨언)


**주석기능이 없는 브런치에서 [미주/각주 대신 인용box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족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으니 관심없는 주제는 휘리릭 넘기셔되 되요.**


1. 언어의 정의에 대한 고민 


동물과 인간의 차이.

인간이 지금의 문명을 이뤄 낼 수 있던 가장 기초적인 이유.

하나만 알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여럿을 알면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 깨닫게 해주는 도구.


구체적인 실재(specific existence)를 설명하는  ‘그릇’ 혹은 ‘껍데기’

추상적인 개념 의미의 표현을 가능하게 해준 수단.

대부분의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


보이지 않는 마음을 전할 수 있게 해주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인데

찰나의 순간이 지나가도 좀 더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사랑을 키울 때 사용되다가도 사랑을 깨뜨릴 수 있게 할 수 있는 힘

아이들이 배우지 않으면 인간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는 소통의 도구.


여러가지 방식으로 설명해보려 노력했지만 한 가지 정의를 내리기 어려울 것 같다. 


동물을 좋아하는 최재천 교수님이 노암 촘스키 교수님께  ’꿀벌의 언어‘ 라는 말을 했다가 혼났다는 일화가 떠오른다.  동물들도 나름대로의 소통방법이 있지만, 인간의 언어와는 다르다. 

(애당초 언어에 대한 정의를 제대로 세우지 않고 언어학 대가에게 동물을 운운하다니. 이과 마인드의 안일함으로 보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부부 간에 그게 되려면 꽤 오랜 시간 서로를 알아가야 한다.

연애 초기부터 그게 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혹은 만나고 있다면) 주된 가능성은 두 가지 이다. 티격태격하며 함께 자란 이성 형제가 있거나, 연애경험이 많거나. 굳이 후자를 선택하거나 선호할 수도 있겠지만. 순도 높은 사랑은 경험부족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으니 참고하시길.


결혼 전에 ‘사랑의 언어’라는 책도 읽어봤다. 비언어적 애정표현 모두 포함해서 ‘사랑의 언어’ 안에 넣어 부부, 가족 간 서로 다른 ‘언어’로 사랑을 표시하는데,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서 서로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한다.


직장에서 작성한 문서, 연애 편지, 심사숙고에 퇴고를 거친 글. 가족에게 남기는 메모.

글쓴이의 머리/지성/마음 속에서 생겨난 의미를 100% 전달할 수 있는 게 있을까?




2. 언어 소통의 불완전성 

Incompleteness of language communication


비단 문자소통 뿐만 아니라, 언어소통은 기본적으로 불완전성을 수반한다.


소리로서의 언어로 하는 소통엔 동음이의어, 중의어를 혼동시킬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정의라는 한글독음만으로는 justice, definition, clean cloth(淨衣,불교용어) 중 하나를 맥락을 통해 맞춰야 한다.

또 언어의 ‘휘발성volatility’ 때문에 상대방의 기억에서 사라질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또 일시의 감정을 전달하기 때문에 심사숙고하여 입을 떠난 소리가 아니게 된 경우, 화자의 의도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불완전한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


그럼 문자소통은 구두소통의 단점을 보완했으니 완벽해졌을까?

어떤 매개체에 기록되기 때문에 휘발성에 대응하고, 심사숙고한 후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올라간다. 하지만 텍스트, 문자로서의 언어는 소리라는 부분을 배제하기 때문에, 뉘앙스, 강세, 감정에 대한 오해를 유발할 수 있다.(이런 언어 소통의 불완전성은 브런치스토리를 사용하며 발생한 최근 에피소드(링크)를 통해 체험하기도 했다가 있었지만, 말로 소리로 하는 소통에도 한계가 있는 건 마찬가지이다. )


위에 언급된 내용 외에도 언어를 사용한 이들이 살아간 문화권, 시대 배경, 문화권, 출신/신분 등 여러가지 요소에 의해, 그 시간대를 벗어난 이들에게 전달되었을 때는 또 다른 오해의 여지를 남기게 된다.



2. 언어는 의미 껍데기(the shell of meaning)


언어의 기원에 대한 해석도 세계관, 종교유무에 따라 달라질 거다. 

갑골문, 점토판을 거쳐 파피루스, 종이, 디지털기기 위의 텍스트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여러 도구를 통해 기록을 해왔다. 문자기록text record이란 방식이 발명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분명 지금의 문명을 이뤄내지 못했을 거다. 

여러 문화권에서 구전으로 전달되어온 ‘이야기’는 분명 존재하지만 여러 버전이 존재한다는 것을 통해 단순히 ‘소리’라는 매개체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완벽하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의미. meaning. 혹은 영어 단어 메세지 message .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의미가 우리 속 어딘가에서 발현되어 ‘언어’라는 옷을 입고 소리나 문자를 통해 타인에게 전달된다.


유독 한국어 버전만 없는 ‘고퀄’ Q&A사이트 Quora[쿼라]. 한 일본인이 남긴 질문에 답변을 남긴 게 인연이 되어 코로나19 시절 1년 정도 사용했다. 일본 현지는 물론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일본인 전문가들들의 답변 가운데, 한국인으로서 시선과 견해를 남겼다. (전형적인 한국인은 아니지만)
내가 습득한 네번째 외국어인 일본어. 
일본어로 철학적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던 중 깨달은 게 이거다.
언어는 껍데기이다.
뜻, 의미가 본질이다.


(이 연재브런치북을 시작하는 글로 이걸 시작했으면 좋았을껄......)


우리 머리/마음/의식/지성 속에서 생겨난 ‘의미’비물질적(non-material)인 거다.


문자

우리들이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받아보거나 보내본 적이 있을 그 포스트잇.

 ‘이거 먹고 힘내‘ 라고 의미를 전했지만, 그 격려의 메시지는 물리나 화학으로 표현가능한 것이 아니다.

글자의 경우, 종이 위에 쓰여진 잉크를 가지고 물리적으로 화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설명된 것이 ‘의미’가 아니다. 


음성

소리의 경우, 음파를 통해 고막의 진동을 거쳐 뇌로 전달되지만, 그 음파나 진동이 ’의미‘가 아니다. 도구일 뿐이다.


그건 의미라는 것이 과학(좁은 의미로서의 자연과학)의 범주 밖에 있다는 걸 뜻한다.

(물론 환원주의자는 그 의미 역시 사람의 뇌에서 일어나는 생화학적 반응으로 해석하려 하겠지만, 그건 과학자의 철학이 반영된 의견일 뿐이다.)



번역

의미라는 추상적인 것에 대해 설명해서 잘 다가오지 않는다면 번역의 관점에 설명하면 더 쉽게 이해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책이라는 사물이 존재한다.

책은 영어로 book, 중국어로 书(shu[슈]), 일본어로 本(ほん[혼])이다.

(우리말 책의 한자는 책册이란 단어는 중국어와 일본어에서 ‘책’을 뜻하는 단어로 통용되지 않는다)

책이라는 사물이 ‘의미’ 또는 ‘메시지’가 되겠고, 여러 언어라는 껍데기를 걸치고 단어가 된다.  실물로서의 책과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로서의 책은 별개이다.


글쓴이는 철학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글쓴이가 하는 이 주장이 어떤 학파의 어떤 학자의 의견과 겹치게 될지 모르나, 지금 전하고 있는 이 의견은 본인의 주관적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다. 살다보니 모국어 한국어 외에도 뇌OS에 영어, 중국어, 일본어가 탑재되어있는 사람이 체감한 내용이다.**


(*: 거창하게 들려 거부감이 들지만 지금으로선 이 단어를 대체할 단어 후보가 없어 독자님의 댓글에 기대봅니다.

**: 자꾸 언급해서 자랑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내세울만한 특이점이 이거 하나 뿐이라 종종 인용됩니다. 자랑할 거리가 없어서 저런가보다- 해주세요.)



3. 번역의 세계에서 발견한 언어에 대한 오해


오역mistranslation의 유명한 예


마블의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의 한글자막에서의 사례이다. Endgame*이란 단어의 번역 때문에 긴 영화시리즈에 대한 해석과 예고가 달라졌다. 다행히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들이 많아진 21세기. 지적과 저격이 이어져 많은 이들이 원래의 뜻을 알게 되었다.

체스용어인 endgame은 '종반전', 마지막 단계의 뜻이다. 나도 퀸즈갬빗을 보다가 체감한 단어이긴 한다. 극장 자막에선 "이젠 가망이 없어" 로 번역됐다. 

절망의 포기인지, 아니면 이제부터 마지막 판(last stage)인지 - 가 갈리는 전혀 다른 번역이 된거다. 


한국 번역문학계(?)에서 번역가들의 일부는 실제 영어를 말하고 듣는 게 불가능한 게 아닌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된 적이 있다. 사랑, 육아철학에 관한 글을 쓸 때, 마침 한글 번역본과 영어 번역본이 있는 책이 있어 대조하며 읽어볼 기회가 있었다. 


사례1> 알랭 드 보통의 책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에서


원문 "So in what ways are you mad? " 라는 문장을  아주 멋드러진 한국어로 번역했네요. 


..........."그래, 너는 어떻게 하여 광기에 사로 잡히게 되었지?".........

알랭 드 보통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번역서의 오역 

글쓴이는 우연히 유튜브에서 들었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저자의 강연(링크)을 듣고나서 마침 친구가 구여친에게 받은 책을 나에게 '기부'한 게 집에 있어서 책을 찾아봤다. 


하지만 이런 의미가 아니었다. 


저자의 강연 중 표현을 인용하면 이렇다.  

how are you crazy?


풀어서 설명하면 '너도 나도 다 미친 구석이 있는데, 넌 어떤 부분에서 미쳤있니? ' 란 뜻이었던 겁니다. 

맥락: 저자 강연 번역

" 만약 제가 세상을 다스린다면(제가 정할 수 있다면), 이른 저녁 데이트를 할 때 서로에게 해야하는 질문은 이겁니다.   
특별히 비난하는 뉘앙스가 없이 - 'How (are) you crazy?' 당신은 어떤 부분에서 미치셨나요? '   

   '전 이런 부분에서 좀 미친 것 같아요, 당신은 어떤가요?'   
   그리고 히스테리컬 하지 않고, 방어적이지 않고, 그 질문에 대해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야 하는 거죠.   그러면 우리가 얼마나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까요?   
   우린 완벽한 사람을 찾지 않습니다. 우리는 상대의 완벽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미리 경고를 받고 싶고, 그 '미친 부분'에 대해서 크리티컬하지 않은 상황에서 알고 싶은 거죠. 그래서 저렇게 알려줄 수 있는 게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농담반, 진담반) " 

*좀 더 상세한 내용은 아래 게시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s://bitl.tistory.com/63


이렇게 나의 경우, 저자의 육성으로 책 내용을 얘기하는 걸 듣다가 원서를 읽고 나서 한글로 번역된 책을 읽어보면 ‘이 말을 한 게 아닌데?’ 하는 부분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번역한 책이 많다거나 번역대상을 수상한 분이 번역한 책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책에도 아쉬운 번역은 많았다.

(아, 이게 또 번역가 저격으로 오해 받으면 안되는데..)


물론 번역이란 작업 자체가 100% 불가능하다는 걸 아는 사람으로서 너그러운 태도로 보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작가들의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어들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 다른 의미의 문장을 만들어내는 걸 보면 아쉽다. 유튜브 시대의 번역가로서 유튜브에서 작가의 팟캐스트나 강의 영상을 듣고 그 톤과 매너를 눈과 귀로 보는 게 번역의 질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거다.


글쓴이(아니 ‘글 쓰는 이’인가)가 대학을 졸업하고 현 직장에서 일하기 전에 경험한 경제활동 중에는 과외^ (아주 잠깐), 영상제작, 요식업 아르바이트, 사무보조  그리고 번역이 있다. (지금은 여가생활을 의미있게 보내기 위해 하는 ‘활동’이 번역작업을 수반해서 계속 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시대와 연관지어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기 쉬운 직업에 번역가가 포함되는 미래가 전혀 그려지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LLM트렌드로서는 ‘인간전문가’가 필요하지 않는 세상은 오지 않을거다. (LLM트렌드가 한 세대를 ‘외국어 안 배워도 되는 세대’로 잘못 키워내고, 진짜로 외국어를 이해 할 수 있는 극소수가 되고, 인공지능번역이 통용되는 세상이 오히려 더 걱정된다. 그럼 그 번역이 틀렸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진다. )


챗GPT가 버전업 할수록, 점점 ‘외국어 공부할 필요 없다’는 유튜브 썸네일이 늘어날거다. 그리고 정말 미련한 ‘소수’의 사람들만 외국어를 공부하고 습득한 미래를 상상해본다.


그 때, 언어를 독점한 Open AI는 ‘외국어를 못하는 인류‘를 지배할 기반을 갖추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좀 거창하게 단어를 독점하면 사상을 통제할 수 있다. 
- 영어로 번역된 성경이 보급화 되기 전에는 로마카톨릭의 주교들이 해석권을 가지고 있었다. 천주교는 구조상, 그 해석의 최종권위자가 교황이다. 아는 사람들만 아는 라틴어로 기록된 성경. 대중은 그들의 해석을 통해 전해들을 수 밖에 없었다. 
- 불경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인도-아리아 언어 팔리 상스크리트어로 적혀진 게 중국 티벳 한자로 적혀진 게 한국으로 보급됐다. 상스크리트어를 중국어 고문 형태로 된 것이 불경이다. 한자를 한글독음으로 적어놓은 걸 그저 한글로 읽어서 의미가 전달될 리가 없다.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글로 된 <금강경은 중국어 모르는 사람이 병음pinyin으로 표기된 중국텍스트를 읽는 것과 비슷하다.


구글, MS, Open AI, 누가 되었던 몇 십억 짜리 계약서 번역을 100% 맡기도 검수할 필요 없는 미래는 오지 않았다. 그건 번역기술 뿐만 아니라 영어가 국제공통어 lingua franca로 사용되고 있는 다문화권 사용자들의 사용행태 때문이기도 하다. 싱가폴 법인과의 계약서 안 영어 문장은 홍콩 법인의 문장과 다르고 미국 기업의 문장과도 다르다. 국제공통어가 된다는 건 그런거다. 
그리고 번역 소프트를 제공하는 업체가 '저희 번역을 사용해서 계약의 오류가 발생할 경우, 계약금 전액에 대한 피해보상을 하겠습니다' 라고 광고하는 날이 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유튜브에서 제공하는 auto-generated transcript는 여전히 1분에 4-5개씩 헛소리를 한다. 데이터가 그렇게 쌓여도 미국발음, 영국발음, 호주발음, 비영어권 영어사용자들의 발음, 다 다른데 공통점과 차이점을 수만개의 매개변수를 패러미터를 넣어도 인간처럼 유연한 리스닝과 해석이 가능한 날이 오긴 할까?

휴학기간 프리랜서 번역으로 수입을 만들었던 시절. 스마트TV앱을 번역하고 검수했다. 그 때 경험한 건, ‘초벌번역’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그냥 처음부터 하는 게 낫다. 맞는 지 틀리는 지 하나하나 읽는 게 더 시간이 든다.


앞서 말한 언어의 특성상, 한 언어를 타 언어로 100% 정확도를 주장하는 번역은 불가능하다. 


글쓴이의 성격상 ’단언컨대‘란 표현은 평생 써본 적이 없지만, 이 주장에 대해선 가능하다.

한 단어가 1대1로 대응하는 쉬운 단어들이 존재하지만, 그걸 또 풀어놓고 보면 다른 의미와 다른 층이 존재한다. 그걸 나열하는 순서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다른 언어 구조의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번역의 난이도는 더 올라간다. 그 위에 문화권, 시대, 번역가의 이해력, 독자의 문해력 등의 요소를 얹는다면?

평소에 공감하지 못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를 여기에선 조심스레 공감할 수 있다.





4. 인류 역사상 최대의 번역 프로젝트


난 입대할 때, 군복무 기간을 거쳐 ‘머리가 나빠져서 돌아오는 것’을 경계했다.

그때까지 살아오면 습득한 외국어들을 잃게 되면 안타까울 것 같았다. 

중국에서는 오래 살았으니 ’뼈에 인이 박히도록‘, 아니 내 몸속의 시냅스들 간의 네트워크, 혀의 ’근육기억muscle memory’가 남을 것 같지만, 영어와 일본어는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에 군대에 갈 때 영어와 일본어 대역본이 있는 책을 가지고 가고 싶었다. 수입이 없는 대학교 휴학생이 해외원서 주문을 할 여력은 없었다. 아버지께 부탁드리니 지인을 통해 영어-일본어 신약성경을 전해주셨다.

아버지를 통해 그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ㅇㅇ은행지점장인데 일본으로 가서 택시기사가 되어 승객들에게 전도/선교를 하고 싶은 꿈이 있는 분이란다. (…네? 뭐라고요?…)

아무튼 그렇게 무료로 얻은 일-영, 이중언어 신약성경.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대역본은 아니었다…… 다른 텍스트를 번역한 것들을 합본으로 만든 것일뿐)


[당시 이야기]

개신교에서는 마태복음, 천주교에서는 마르코의 복음서 라고 부르는 첫번째 이야기는 무슨 족보로 시작해서 읽다가 포기. 마가복음은 짧아서 읽기 쉬웠다. 누가복음 역시 족보로 시작한다. 패스. 요한복음을 읽자니 읽은 이야기 또 읽는 것 같아서 패스.
일단 읽는 게 목적이니, 좀 더 난이도가 낮은 편지들을 먼저 읽었다.역시 남에게 쓴 편지를 읽는 건 잘 읽힌다. 편지들을 읽다가 나중에 편지가 짧아지더니 나중에 장르를 알 수 없는 ’요한계시록‘이 시작됐다. 포기. 다시 앞으로 돌아가 사도행전을 읽어봤다.이건 소설 같았다. 스토리의 흐름이 명확했다. 처음이었다. 성경에 나온 이야기가 재미있게 느껴졌다. 

영어는 나에게 (읽고 싶지 않았던)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 언어이다.

한글로 읽으면 거부감이 심해서 내러티브를 따라가는 것에 방해가 되었고, 사용하는 언어가 조선시대가 배경인지 중동지역인지 알 수 없는 그 어휘와 어미가 심히 거슬렸다. 

(아직도 개역개정 알러지/알레르기가 있다. 쉬운성경이란 건 또 성인의 지능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싫고. 까탈스럽다)


그러다가 어른이 되어 블로그 프로젝트로 생명의 기원. 예수신화설의 기원. 기독교 종말론에서 도대체 뭘 말하는 건가? 이런 걸 조사하다보니 이게 또 언어 본연의 성질에 대한 오해에서 발생한 에피소드들이 많이 존재했다.


예를 들어, 구약은 히브리어로 쓰였는데 당시는 모음이 없는 자음만 있던 언어체계. 한민족의 한 많은 역사보다 더하면 더했지 부족하지 않은 이스라엘 역사상 그게 또 로마통치 시절 라틴어로 번역된 걸로 통용된 시절도 존재한다. 신약은 그리스어이긴 한데 코이네 그리스어라는 특수한 언어로 기록된 부분이 대다수이고,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던 언어 중 ‘아람어‘는 또 다른 언어.

이렇게 복잡한 언어적 구성을 가지고 있는 여러 시대에 기록된 문서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한 가지 언어 로 번역된 것이 읽혀지고 있다.


같은 구절을 영어성경과 한국어 성경, 중국어 성경, 일본어 성경으로 비교해보면 또 미묘하게 달라지는 부분도 많고, 확연히 다른 단어로 번역한 것들도 확인가능하다.


4. 단어 하나의 해석으로 갈라지는 세상



가장 많이 판매되고, 가장 많이 보급된 책이라고 하는 성경의 예를 사용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보려한다. 

성경번역본의 보급화가 서구문명의 문맹률 감소에 영어성경번역본이 크게 기여했다는 주장을 담은 다큐멘터리(logos and literacy)도 있다. 


(1) DAY 라는 히브리어 단어로 달라지는 지구의 나이에 대한 견해 

창세기의 day, 첫째 날, 둘째 날, 하는 그 ‘날’의 원어 히브리어 ‘יוֹם욤’ 이란 단어의 뜻이 네 개. 또 원문에는 관사 the 에 해당하는 ‘하’가 붙은 '하욤 היום'이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다. 여기서 기독교 안에서도 지구의 나이라는 어마어마한 세계관 차이가 발생한다. (다음 프로젝트로 자료조사 중에 알게됨)


(2) 기독교 종말론

 ‘휴거설‘이 시작된 것도 원어(παρουσία[파루시아])와 당시 문화권에에 대한 해석이 부족한 상태에서 영어만 가지고 해석한 한 목사의 주석성경이 배급되면서 그 세계관을 차용한 소설이 대박을 내면서 미국 기독교인들의 세계관에 ‘환난전 휴거’ 라는 개념을 보편화 시켰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이게 요즘은 주류가 아닌 것 같긴한데, 인터넷에서 보면 빨간 색 볼드체로 이걸 강조하는 분들의 콘텐츠도 자주 보인다)


(3) 킹제임스유일주의

성경 번역의 역사 속에서 영국의 왕 제임스의 주도하 번역된 영어성경이 있다.
당시 번역에 참여한 당대의 번역가들은 Preface서문(Translators to the reader) 에 번역의 불완전성에 대한 겸허한 의견을 명백히 표시했다. 그리고 약 400 여년이 흐른 지금. 미국에는 ’킹제임스유일주의‘라는 게 존재한다. 셰익스피어를 ’당시 영어‘로 읽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야 너무나 아름다운 문장으로 번역된 성경이겠지만, 21세기 대부분의 영어권 사람들이 읽다면 이해하지 못할 단어와 문장이 굉장히 많다.

첫번째 영어로 번역된 성경도 아니고, 오역의 에피소드도 있었던 번역본이고 개정도 거쳤지만, 킹제임스 성경만이 가장 정확한 번역이고, 다른 모든 번역본들은 틀렸다고 믿는 집단이다.

좀 더 아이러니한 건, 그런 킹제임스유일주의를 믿는 한국교회가 있다는 거다. 킹제임스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한 성경책이 있다. 문제는 그 안에서도 두 부류로 나눠지면서 서로 다른 킹제임스한글성경이 존재한다는 거다.


(4) ’고대우주비행사설‘ ’고대외계인설‘의 제카리아 시친


지인이 친척이 외계인이 인류문명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작가의 주장을 믿는다며 알려준 책이 있다. 호기심을 가지고 조사해본 적이 있다. (결과) 작가의 출신 때문에 그의 언어능력이 과대평가된 상태에서 독자들이 그의 상상력에 기반한 해석을 언어학적 근거를 가지고 한 추론이라고 오해한 거다. 작가의 'נְפִיל네필림(혹은 네피림)'이란 단어의 해석은 고대히브리어의 기초지식도 미비하다는 걸 반증했다.

 고대히브리어 학자와 천문학자들 모두 그의 가설에 근거가 없다고 설명하지만, 책은 출간되었고, 아직도 다수의 독자들은 인류의 기원을 외계인으로 믿고 있는 것 같다.

https://bitl.tistory.com/93


정말 이 세상의 시작과 끝에 대한 해석이 단어 몇 개로 갈려 있는 거다.



5. 결론


인류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 도구.

문명을 이루게 할 수 있는 기록의 기초가 된 언어.


언어는 대단한 도구 이지만, 사용자들이 그 불완전성을 인지하지 못할 때 생길 수 있는 오해의 가능성. 이걸 염두에 두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해석의 차이를 가지고 ’집단주의‘가 작동시키기 쉽다.

우리 대부분은 언어의 속성과 한계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기 때문에 쉽게 단정짓는다.  


’내가/우리가 이해하는 바가 맞다‘

’너희의 이해는 틀렸다’


그리고 상대방의 의도를 첨가한다.


‘악의적인 왜곡이다.’

’일부러 나에게 상처를 주려했다/무시했다‘


그건 가족 간에서, 학교나 직장, 소속된 여러 단체 안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오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오해를 인지하는 사람은 화해의 노력을 위해 손을 내밀 수 있다.


난 명확히 표현했는데, 상대방이 오해 할 수 있을 가능성


국제부부의 일원으로서 글쓴이만 체감하는 것이 아니라

모국어로 소통하는 두 부부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일 거다.

또 살아가는 시대가 다른 부모와 아이들 사이, 팀/부장급 인원과 신입사원부터 과장급 MZ세대에도 적용가능하다. (MZ세대의 정의상으론 저도 M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언어의 한계.

언어소통의 불완전성. 

내 표현 부족과 상대방의 이해 부족의 가능성.

이것들을 기억하면 좀 더 여유를 갖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끝까지 읽어준 독자님들께 감사의 표시로 예전에 국제결혼을 준비하던 지인 커플이 하도 싸워서 화해를 위해 만들어봤던 그림들이 떠올라 남겨본다. 국제부부가 느끼는 소통의 한계을 느끼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 



자료1: 오해와 실행능력의 역학(?)

 - 출처: 오해연구소 - 미래편지(사위에게 - 2/4) -  싸운 후, 국제 커플을 위한 조언 중



자료2: 외국어 소통에서 오해가 생기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본 그림 

오해와 그 배경에 대해 


자료3: 소통 성공률에 대한 전망 그래프 




잠깐, ‘그럼 사람이 말로 표현하고 소통하는데 전달율이 그렇게 낮을 수 밖에 없다면 어떡해야 되죠?!’

(그런 질문을 위해 새로운 코너를 만들어 봤습니다.)

[오늘의 적용]
‘사랑의 언어’의 개념을 적용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안아줘봅시다.
말로 전달되지 않은 사랑을 비언어적 소통을 통해 보완해봐요.
물론 말하지 않으면 모를 수 밖에 없는 부분은 말해줘야겠죠. 

말로 전달하면 오해가 자주 발생할 땐 글로 남겨서 상대방의 기분이 다른 상태에서 또 읽을 수 있게 하는 것도 방법인 것 같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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