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상담일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인아 Feb 23. 2023

상담일지: 불신을 거두는 연습

2023-02-23

나는 상담선생님에 대해서 잘 모른다. 어쩌면 당연한 사실이다. 간단한 비유를 하자면 병원의 진료실에서 의사가 자신의 삶이나 아픈 부분을 말하지 않고 오직 환자의 몸에 대한 진단과 진찰을 하는 것과 같이 상담실은 그런 곳인 것이다. 상담실에서 주인공은 내담자이다. 그래서 상담시간에는 상담자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불어 상담자에 대해 모르는 것이 내담자의 편안한 상담 흐름과 마음의 고통의 토로에 더 도움이 되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 수도 없이 마음이 무시당하고 짓밟히고 알아차려지지 못하며 살았던 방임의 역사가 상대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뿌리깊고 버리기 어려운 불신 가득한 신념을 가진 생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변화하고 싶어 시작한 상담에서조차도, 60회기가 넘도록 단단한 라포를 쌓은 상담선생님과의 관계에서도 끊임없이 이 선생님이 나를 이해해줄지 두려워하고 망설이고 고민하며 말할까 말까 저울질한다. 그래서 더더욱 사람으로서의 선생님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힘들어한다. 오늘 몰랐으면 좋을 선생님에 대한 개인적인 정보를 아주 얼떨결에 우연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려준 당사자가 원망스럽고,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상담선생님의 개인사를 함부로 떠들고 다니는 사실이 화가 났다. 하지만 억제가 발동한 나는 그 자리에서 습관처럼 양가감정에 시달렸고 화내고 싶은 마음과 선생님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 둘 중 선생님에 대해 알고 싶는 마음에 손을 들어주고 말았다. 그래서 선생님의 개인사에 대해 떠드는 그 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시간을 후회하며 그 당시에 내지 못한 분노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다음 병원 내원시간에 주치의 선생님한테 고자질할 예정이다.


나는 이해욕구가 높은 동시에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해서 나를 깊이 이해해줄 나와 비슷한 사람을 찾고 싶어한다. 역시나 이 욕구는 나와 너무너무 달라서 나를 추호도 이해하지 못하며 나를 외롭게한 가정환경이 원인이다.(하.. 이 말도 자꾸 하기도 지겹다.) 그래서 나와는 다른 선생님의 삶을 우연히 또는 같이한 시간이 길어서 알 수 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었다. 선생님은 결혼을 했고 아이가 있고 가정이 있고 심리학자 집안이라는 것. 그렇게 알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생님 곁에 있다. 60회기 넘도록. 이제 알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사람은 이세상에 없고 나와 다른 사람에게도 충분한 이해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여전히 가끔씩 어릴적 엄마에게 당했던 어릴 적 아이의 편도체 반응이 일어날 때면 또 속을까봐 두려워서 힘들어하는 시간이 찾아오는 것 뿐이다.


심리평가 결과가 나왔다. 나에게 놀라운 결과는 없었다. 강박적 성향있고 완벽주의 적이고 가족이 힘들고 분노와 적개심이 가득하고 (블라블라...)

상담을 통해 나에 대한 통찰을 이미 많이 한 이후였기 때문이다.

다만, 마음에 걸리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있었다.

‘치료과정에서 자살사고를 행동화할 가능성에 대해서 항상 주의가 필요해 보임‘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전문가에게 확인 받으니 내가 디게 아픈게

촌철살인 당한 느낌이 드는 어쩔 수 없네.

매거진의 이전글 상담일지: 기승전 자살사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