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쓰는 내 감정과 생각은 어떨까
나의 브런치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바닥을 기어 다니는 우울함과 외로움으로 가득한 글을 쓰면서 시작되었다. 그 이후로 쓴 모든 글들은 나의 우울함과 상담에서 토해냈던 서러움과 울분을 잔여의 해소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그런 역할을 해주는 글쓰기가 참 고마웠고 토해낼 때마다 술술 써지는 글들이 마법 같았고, 마치 전문 작가가 된 듯 글쓰기와 참 가깝게 살았다. 부정적 정서를 기록하고 상담에서 말하기 위해 일기도 열심히 썼었다.
그런 내가 2월에 <더글로리 시즌1>을 보고 몸무게가 4kg이 빠지고 먹지 않고 자기만 하다, 어느 날 새벽에 심각하고 강렬한 자살충동을 느낀 이후로 심리치료로만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하여 졸업이 다가온 시점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기로 결심했다. 예상했던 대로 나는 중등도 이상의 우울 에피소드를 진단받았고, 약은 소량으로는 효과가 없어 매주 증량되었고, 지금은 매일 8알의 알약을 자기 전에 삼키며 지내고 있다. 처음에는 약을 먹고 싶지 않았다. 나의 촉촉한 감성과 우울기질을 약의 기운이 앗아가는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진짜 나를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약을 먹지 않았을 때,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르는 자살충동과 잔잔하게 깔려있는 자살에 대한 동경과 자해실천이 무서워 억지로 억지로 먹고는 했다.
그러다 약을 의지로 열심히 먹고 싶은 계기가 생겼다. 아주 간단하지만 강렬한 이유. 내가 갖고 싶던 직업을 가졌고 좋은 직장을 만났고, 직능 발휘가 재미있었고, 내 모든 걸 내주고 싶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살아있는 게 내켜진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구나 싶어 약을 먹다 보면 또 어떤 날이 올까 싶기도 하고, 애인을 보는 날을 기다리기 위해 살아있기 위해 노력하고 싶었다. 그래서 약을 열심히 챙겨 먹고 있다.
약을 열심히 먹고 우울한 생각의 차단과 신체의 활력을 되찾고 나니 우울함 토로의 장이었던 브런치를 찾는 일이 드물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쓰고 싶은 문장과 단어를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우울한 생각을 하지 않는 순간이 없이 시간을 지내본 기억이 아득했던 나에게 약으로 인위적으로 차단된 생각들 이외에 행복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되지 않았다. 삶을 어떤 것들로 가득 채울지, 의욕적으로 무언가를 할지 그려나가고 몸을 움직이는 건 약으로 되지 않았다. 그렇게 글도 쓰지 않고, 중립에 서있는 '무의미하지 않지만 무의미해 보이는 아무것도 없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마음만은 이렇게 다시 글쓰기를 쓰기 시작하고 싶다고 되새김지 한지 어언 한 달이 넘었다. 그 다짐을 한지 한 달이 넘은 지금 다시 브런치를 열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약효가 잘 발휘되어 건강한 심리 수치를 유지하고 있는 여전한 환자이다.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꿈을 눌러주는 리보트릴을 뚫고 학교에서 길을 잃는 꿈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꾸며,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내가 하는 말을 무시하고 당황시키며 꿈속에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외로운 꿈을 꾸며 현실이었는지 꿈이었는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생생함 속에 잠에서 깬다. 그 시간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은 자고 있을 새벽 한가운데 이곤 하다. 원장님은 SSRI의 약효 발휘가 잘 되고 있으며 치료가 되어가고 있다고 표현하지만, 소아 때부터 수십 년을 우울증으로 살았던 나로서 항우울제의 약효는 그저 단발성에 그치는 '약발'로 표현하고 싶은 존재일 뿐이다.
마음먹은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다시 브런치 창을 켜 한숨도 쉬지 않고 써내려 온 글이 가득 차니 뿌듯하다. 앞으로 예전처럼 하늘을 찌를 만큼 원망스럽고 아프고 슬프고, 외롭지 않더라도 써지는 대로 글을 쓰러 종종 켜보려 한다. 브런치는 내가 글을 쓰지 않아도 글을 읽으러와 하트를 눌러주는 한분 한분께 감사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곳이면서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쓰는 글을 읽으러 잠시 들르러 오는 쉼터 같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