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달 Nov 27. 2016

필라델피아 Philadelphia

그때도, 지금도

최근 몇 년간 소수자의 인권을 다룬 작품이 많이 나오고, 지금도 끊임없이 제작되고 있다. 이젠 금기시되는 주제도 아니며, 할리우드에서는 꺼릴 만한 배역도 작품도 아니다. 그러니 20년도 더 된 이 작품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이젠 시기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본 이 영화는,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보다 영화에 대해, 사회에 대해 조금은 더 알고 지금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주인공 앤드류 베켓(앤디, 톰 행크스 분)은 유능한 기업 변호사다. 또한 에이즈 환자이며, 동성애자다. 필라델피아의 저명한 로펌에서 일하는 앤디는 자신의 성적 지향과 투병 사실을 회사의 파트너에게 숨긴다. 이미 몇 번의 경험으로 이들이 동성애자에 대한 강한 편견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그가 지키고 싶었던 사생활의 영역은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중요 소송의 서류를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무능력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해고당한다. 앤드류는 자신과 법정에서 상대 변호사로 만났던 조 밀러(덴젤 워싱턴 분)와 함께 자신을 해고한 로범의 속임수와 부당함에 대해 긴 싸움을 시작한다. 


이 영화는 93년도 작품이다. 80년대 초 발견된 이후, '후천성 면역 결핍증'이 '동성애자들에 대한 하늘의 벌'로 여겨지고,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 죽음"이 먼저 내려지던 시절. 치료에 대한 지원도 보험도 없이 그저 죽기만을 바라야 했던 사람들이 넘쳐나던 시절. 그래서 이 영화는, 어쩔 수 없이 '동성애'라는 단어를 꺼내야 하기 전까지, 상당 부분을 '에이즈'와 그로 인한 '부당 해고'에 초점을 맞춘다. 재판의 본질도, 영화의 본질도 '동성애'와 앤드류의 선택이 아니라, 그 선택에 대해 차별하는 로펌과 사회를 상대로 정의를 찾는 것이다.


<필라델피아>는 '에이즈'라는 질병에 대한 논의를 전국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공을 세운 작품이긴 하지만, 실제 에이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는 것, 앤드류와 그의 파트너 미겔의 애정 관계가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 등으로 당시 LGBTQ 커뮤니티의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나면 소재는 논란에 가까울지 몰라도, 접근 방식은 보수적이라는 점은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동성애자와 에이즈에 대한 편견으로 똘똘 뭉쳐 있던 조의 점진적인 변화는 이 영화를 보는 우리들의 점진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필라델피아> 톰 행크스, 덴젤 워싱턴 / 이미지출처=TriStar Pictures/IMDB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1993년 작품이다. 그 전에는 동성애와 에이즈라는 것에 대해서 그 어느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톱스타를 기용해 메이저 스튜디오가 제작한 영화다. 이슈도 이슈이지만 흥행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위험을 걸지 않으면서, 가장 중요한 이슈를 던진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이후 제작되고 방영된, 동성애 인권 영화와 에이즈 영화는 좋던 싫던 <필라델피아>에 어느 정도 빚을 지고 있다. 그 접근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고, 사회의 편견을 일부 수용한 작품이라도, 논의를 하는 촉발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가볍게 볼 수만은 없다.


물론 지금은 "동성애나 에이즈라는 질병을 잘 다룬 영화를 추천해 주세요"라는 대답에는 <필라델피아>보다는 <노멀 하트>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등을 추천할 것이며, 수많은 LGBTQ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들은 이런 특징들이 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제 너무나 많이 만들어져서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소재들. 하지만 요즘처럼 어느 나라이든 사회가 20년 전으로 후퇴할 것처럼 미쳐 돌아가는 상황에서, 인류의 사상적 '진보'를 보이는 곳은 영화판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돈"과 "꿈"이 함께 돌아가는 공장에서는 오늘도 멀리 보이는 목적지를 가리키며 어서 달리자고 말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필라델피아>가 큰 반향을 일으키는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니까. 그러니 현실에 발을 붙이고 저 먼 곳을 꿈꾸는 나 같은 사람들은, 발과 머리가 느끼는 서로 다른 세계에 대한 인지부조화에 시달릴 수밖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