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다시 보는 로맨틱코미디 (1) 부제: 대환장쇼
영화가 개봉하면서 책 제목도 영화의 (이상한) 제목을 따라갔지만, 사실 원제인 <Something Borrowed>가 더 와 닿는 내용. 평생 단짝 친구가 결혼하기 직전, 약혼자를 빼앗는(!) 뒷목잡을 만한 사건도 뉴욕의 풍경과 햄튼의 여유로움이 만나면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가 된다.
주인공 레이첼은 단짝 친구 달시와 그녀의 약혼자 덱스를 소개한 장본인. 오래전부터 덱스를 짝사랑했지만 제대로 고백 한 번 못해본 채로, 적극적으로 덱스에게 대시한 달시가 결혼 준비를 차근차근 해 가는 걸 속앓이하며 지켜봐야만 한다. 사실 레이첼이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본 건 덱스와 사고 친 하룻밤이 시작이었다. 그날 밤 따로 한 잔만 하지 않았더라면... 같이 택시만 타지 않았더라면... 역시 술이 웬수다.
하지만 역시나 소심한 주인공들답게 진심을 찾는 과정도 느릿느릿, 서로의 진심을 고백하는 것도 느릿느릿, 그리고 진정한 용기를 내는 것도 느려터졌다. 그 사이 달시는 둘 사이의 어색함이 그냥 어색한 것이라 생각하면서 두 사람 사이를 풀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햄튼에 놀러 가기도 하고,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인간 하나 바보로 만들어 버린 상황. 결론이 깨진 이유가 쌍방 과실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바보 된 인간과 느려터진 인간들의 굼벵이 러브스토리가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이 달시의 입장에서 쓰였다면, 달시의 입장에서 영화가 만들어졌으면 역대급 대환장쇼가 펼쳐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달콤한 러브스토리를 원하는 여성들을 위한 칙릿이고, 영화도 원작 내용에 충실하게 진행된다. 그래서 한없이 가볍고 속 알맹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달시는 피해자이지만 피해자 같지 않은 입장이 되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을 방해한 훼방꾼? 정도겠지.
다행히(?) 달시는 자신의 한없이 가벼운 모습을 오래전 간파한 어린 시절 친구 이든과 사랑에 빠직고, 새로운 가정을 꾸려나간다. 후속작 <Something Blue>가 만들어졌다면 아마도 그랬을 것이고, 만약 그랬다면 제목은 <프렌즈 앤 러브>가 괜찮지 않았을까? 아쉽게도 이 영화는 자가복제 느낌이 강해서 크게 성공하지 못했고, 로코보기가 길티 플레저인 나 같은 사람이 심심할 때마다 보기 좋은 영화로만 남았다.
한드를 보면서도 한 번씩 하는 상상인데, 한 번쯤은 남주와 여주가 아니라 서브여주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이야기는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듯이, 같은 이야기도 서브여주의 관점에서 진행하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로맨틱 코미디의 서브여주가 집안도 조건도 완벽한데 성격이 쿨하지 못하고 남 것이 된 남자에게 미련을 못 버린다는 이상한 설정이 싫어서 나온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자신의 진심을 거절당한 서브여주가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길. 그러면서 "나를 울리고 잘 된 너네들이 얼마나 잘 사나 보자!"며 이를 박박 가는 미련, 막상 새로운 사랑이 다가올 때 마음이 갈팡질팡하는 상황들... 은근 생각해보니까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나저나 "내꺼 하기 싫으면 말아라, 줘도 안 가진다" 같은 쿨한 성격은 서브여주에게는 장착될 수 없나 보다. 최근에 그걸 장착한 서브여주를 <질투의 화신>에서 봤는데, 서브여주라기보다는 남주 친구 같은 느낌이더라. 역시 사각관계는 좀 지저분하고 질척대야 제맛인가 보다. 안 그러면 이야기가 재미없어...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57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