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레이 아나토미

13년차 호갱님의 자기고백

by 겨울달

벌써 13년째다. 징글징글하기도 하지. 잊을 만하면 손이 가는 마약같은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



오랜만에 <그레이 아나토미>를 달리고 나서 생각해본, 내가 그레이를 못 놓는 이유.


1. 기본적으로 재미있다. 13년 동안 이렇게 꾸준하기도 쉽지 않다.


2. 소프 오페라라는 장르에 충실하면서더 살면서 고민해볼 만한 지점들을 항상 제시해준다. 주인공들이 학생으로 시작해 자신의 전문분야를 찾고 프로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시간은 더럽게 안 갔지만. 시즌 3에 레지던트가 되고 시즌 8에 전문의 시험을 쳤으니 전문의 따는 데 8년이 걸린 셈.


3. <그레이 아나토미>를 보면서 내가 야망이 가득한 캐릭터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다만, 야망이 가득해서 다른 사람들을 해치려는 생각을 하는 캐릭터는 절대 사양. 최고가 되려고 하고, 남들보다 경쟁에서 앞서 나가려 하고,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자기 자신도 상처를 받는데, 그걸 감내하려고 애쓰거나, 꽁꽁 감춰두고 티내지 않거나. 어떤 부분은 내 성격이 겹쳐보이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내가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현실에서는 아직 만족할 만한 마음의 해답을 찾지 못해서 드라마로 만족하고 있다.


4. 그리고 다들 예쁘고 멋있고... 그건 대리만족.


5. 예전에는 크리스티나를 좋아하다가 그녀가 떠난 후(ㅠㅠ) 에이프릴이 최애가 됐다. 특히 에이프릴과 그녀의 전 시어머니(!) 캐서린의 묘한 다이내믹이 마음에 든다. 남편들과 달리 평범한 집 딸로 태어난 그들은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고,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래서 에이프릴은 캐서린을 존경하면서도 무서워하고, 캐서린은 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에이프릴이 미우면서도 아등바등하는 그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 듯하다. 잭슨은 절대 이해 못할 두 여자의 유대.


6. <그레이 아나토미>는 보기 드물게 여성의 유대가 굉장히 강한 드라마이고, 그건 지금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메러디스에겐 10년간 크리스티나가 있었고, 그 기간 동안엔 렉시도 있었다. 그 이후에는 매기와 아멜리아가 있었다. 친구가 채워주는 정신적인 유대는, 어떤 남자도 충족해주지 못한다. 그래서 아무리 연애중이라도, 친구에게 위기가 닥치면 함께 해결해야 한다. 데릭과 메러디스가 한 침대에 있어도 크리스티나가 침대로 올라가면, 데릭은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지금 봐도 웃음 터지는 그 장면 ㅋ


7. 캘리와 애리조나가 온갖 위기를 헤쳐나갔지만 결국 그렇게 된 게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이성이든 동성이든 부부는 부부고, 그들 사이에 일어난 일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다. 애리조나는 이제 새 사람을 만날 것 같은데, 글쎄 이번 러브라인은 좀 별로...


8. 이번 시즌 하반기에는 에이프릴과 잭슨이 둘만 출장가는 에피가 있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다. 과연 이혼했지만 서로에게 한참 미련이 남은 부부는 출장길에 어떻게 될 것인가. 케빈 맥키드가 연출한다고 해서 더 기대중.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