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미디어와 혼란의 시기, ‘믿음’의 실체를 묻다
2천여 년 전에도, 아니 그보다 더 오래전에도, 또는 그보다 가까운 시기까지, “종교”가 나타났다. 우리의 삶에 미친 영향이 엄청나다는 건 쓸데없는 설명일지도 모른다. 빠르고 광범위한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의 힘이 막강한 21세기, 종교는 그 어느때보다 강력한 것 같으면서도 힘이 없어 보인다. 한때는 의심 없이 따랐던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고,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혼란을 느낀다. 넷플릭스 신작 <메시아>는 이런 질문에서 시작한다.
ISIS의 고통을 받는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 남자와 함께 온 듯한 모래폭풍으로 ISIS가 결국 물러난다. 남자는 수천 난민들을 이끌고 이스라엘 국경을 넘으려 하고, 이스라엘 정부는 남자를 체포하고 난민을 버려두며 전 세계의 비난을 받는다. 어떻게 해서 감옥에서 유유히 탈출한 그는 예루살렘 성전산에서 총에 맞은 소년을 구하고 사라진다. 며칠 후, 텍사스 작은 마을 댈리에 허리케인과 함께 그가 나타난다. 다양한 종교 지식과 그만의 관점,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내뿜는 그는 진짜 사람들의 말대로 구세주일까? CIA 중동 지역 담당 요원(으로 보이는) 에바 겔러가 남자의 미스터리를 밝히기 위해 그를 집요하게 쫓는다.
기대한 것보다 주제와 접근 방법은 논쟁을 불러올 만하다. 신의 아들을 자처한 ‘알마시히’는 모든 일에 확답을 주지 않고, 그저 ‘신’이 이끄는 대로 따를 뿐이다. 자신조차 메시아라 말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앉아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에게서 신을 발견하거나, 그를 따르거나, 배척하고 제거하려는 건 그를 본 사람들의 선택이다. 그가 가는 길엔 전쟁에 맞먹는 폭동이 일어나고, 사회는 혼란스럽다. 그게 과연 “구세주”를 참칭 하는 자가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절대적 존재를 핑계 대고 싶었기 때문일까?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지만 특출난 캐릭터가 있다. 알마시히 역의 메디 데비. 튀니지계 벨기에 배우로 연극 쪽에서 주로 활동했고 영어권 작품으로는 <모스트 원티드 맨>이나 TV시리즈 <타이런트> 등이 있다. 굉장히 단단하고, 별 말 없이도 모두을 압도 한다. 이 시리즈의 (아마도) 유일한 네임드 배우인 미셸 모나한도 엄청난 연기를 보여준다. 일에 미쳐있고, 가정에 소홀한데 남편이 죽어 후회는 막급이고, 수사 대상에 집착하며 선을 넘을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행동하는 CIA 요원. 이야기 중 두 사람에게 기대는 부분이 많고, 그래서인지 스무스하게 흘러가는 편이다.
다른 캐릭터가 그만큼 매력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토머 시슬리가 연기한 이스라엘 정보요원은 나름의 사정은 있지만 대체적으로 나쁜 놈이다. 알마시히의 “선택”을 받았다 확신하는 아게로 목사는 기대한 만큼 캐릭터가 확 살지는 못한다. 특히 알마시히가 선택한 듯한 두 소년 소녀가 있다. 알마시히를 무조건 따랐던 소년 지브릴과 알마시히에 점차 믿음을 가진 소녀 리베카. 이들이 뭔가 큰일을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뭔가 굉장히 크게 부풀렸다가 싱겁게 바람을 뺀 느낌이었다. 시리아, 이스라엘, 미국에 걸쳐 다양한 종교와 구세주,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각각의 스토리가 매력적인 부분도 있지만 모아놓고 보니 특별한 포인트 없는 그림 같다.
알마시히가 정말 기적을 행하는 인물인지, 아니면 그럴듯한 사기꾼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막판에 대형 떡밥을 투척하면서 시즌을 마무리했지만 이 정도로 끝내도 양호한 것 같다. 비평 점수는 엇갈리지만 시청자 점수는 나쁘지 않으니, 리뉴를 기대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