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전자책 앱으로만 읽을 수 있는 양산형 소설에만 빠져들었다. 인터넷 게시판 별명을 쓰는 작가의, 얄팍한 캐릭터들이 벌이는 뻔한 사랑놀음에 도피했다. 읽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 라면서.
가끔은 팬픽을 읽었다. 팬픽은 모두 영어다. 미국 드라마나 영화의 캐릭터들이 주인공이 된 다른 이야기를 읽으면서, 익숙한 것에 안주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 외면했다.
책장에 꽂힌 책들엔 먼지가 쌓여간다. 털어내고, 자리를 옮기고, 책장을 사서 다시 꽂으면 그만이다. 책은 바라보기 좋은 장식품이 되었고, 내가 손을 뻗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 ‘거의’ 없는 일을 한 번씩 겪는다. 모두가 잠든 밤, 공간을 음악으로 가득 채우고, 종이로 된 책 한 장 한 장을 어루만지다 넘긴다. 활자는 예전만큼 빠르게 읽히진 않는다. 예전에 속독이라며 읽었던 것들의 훈련 효과는 점점 퇴색한다. 그만큼 한 줄 한 줄 더듬어가며 꼼꼼하게 읽는다.
책장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거나 마음을 진정하려고 심호흡을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활자가 아닌 활자에 실린 감정을 알기 시작한 나이가 되어서일까? 감수성이나 예민함, 감과는 다르다. 본능적인 게 아니라 이성적이다. 그 모든 분노와 좌절과 슬픔을 겪은 저자가 담담하게 풀어놓는 이야기를 머리와 가슴 모두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단 뜻이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타령할 연배는 아니지만, 정수리에 뿅 솟아난 새치를 거울 너머로 노려보며, 예전만큼 몸뚱이가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느끼며, 세월이 한없이 느리면서 더없이 빠르다는 걸 느낀다.
한숨 금지. 신세타령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