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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달 Aug 09. 2020

HBO Max는 디즈니+보다 더 빨리 올 수 있을까?

잡설과 걱정

오늘, 아니 어제 오전에 본 기사가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어서, 글을 써야지 비울 수 있을 것 같다.


하루 종일 날 괴롭힌 문제의 기사는 2개였다. 모두 워너미디어의 구조조정 소식이었는데, 새 CEO 제이슨 킬라가 취임 4개월 만에 칼을 빼든 것이다.

https://deadline.com/2020/08/warnermedia-shakeup-bob-greenblatt-kevin-reilly-keith-cocozza-out-ann-sarnoff-casey-bloys-upped-1203007672/


가장 놀라운 건 워너미디어 D2C 부문 책임자가 바뀐 것이다. HBO Max 론칭을 이끈 밥 그린블랫(워너미디어 엔터테인먼트 & D2C 회장)과 케빈 레일리(HBO Max 최고 콘텐츠 책임자 겸 TNT, TBS, truTV 사장) 두 사람 모두 회사를 떠난다는 것이다. 워너브라더스 사장 앤 사노프가 영화뿐 아니라 TV 분야까지 총괄하고, HBO 편성사장 케이시 블로이스가 HBO Max와 케이블 채널의 콘텐츠와 편성 모두 맡는다.

이번 구조조정의 본질에 대해서 제이슨 킬라가 발표한 메모 내용이 인상적이다. 워너미디어의 향후 발전 방향을 논하는데, 읽으면서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https://deadline.com/2020/08/warnermedia-jason-kilar-new-structure-layoffs-future-hbo-max-theatrical-distribution-linear-tv-tenet-1203007840/


첫째, 좀 더 소비자 중심적(consumer-oriented)인 회사이길 원한다. 역사적으로 미디어 회사는 도매 중심(wholesale-oriented)이었다. 디즈니, 워너, 파라마운트 등 회사는 지난 100년 간 위대한 영화와 텔레비전 시리즈를 만들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넘겼다. 극장, 텔레비전 채널, DVD 소매업 등은 소비자와 직접 만났다.

둘째, D2C에 프리미엄을 얹는다. 소비자에게 직접 서비스하는 기회를 얻는 것은 우리 미래에 매우 중요하다.

​셋째, 글로벌 시장 진출이다. 우리는 현재 매출의 1/3을 미국 외 지역에서 얻는다. 우리에게 매출의 70%와 소비자의 70%를 미국 외 지역에서 확보할 기회가 있다고 본다.


워너미디어는 사활을 걸고 만든 HBO Max가 왜 디즈니+만큼 스트리밍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지 못했는지, 그 패인을 분석했을 것이다. 나라도 그러겠다. 여러 업체가 한꺼번에 달려들면서 시장은 이미 포화되었고,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소비자의 기대치는 높아졌다. 기회의 땅이 열렸으니 뭐라도 해야 했는데, HBO Max와 피콕이 론칭해서 이름을 알리는 동안 디즈니+는 과감한 행보를 보이면서 가입자를 엄청나게 많이 확보했다. 5개년 목표를 8개월 만에 달성했다지. 게다가 유럽에도 이미 진출했고, 영국에선 벌써 시장 3위 사업자가 되었다고 한다. 나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특단의 조치를 강구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HBO Max에 HBO라는 이름이 붙는 게 아까웠다. 워너가 영화와 텔레비전 시리즈를 잘 만든다는 건 다들 안다. 하지만 새 서비스를 정의하는 것은 결국 이들이 내놓는 새로운 무언가인데, 그 무언가들이 수십 년 동안 쌓은 HBO의 브랜드 가치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솔직히 케빈 레일리가 지금까지 그린라이트한 작품들은 HBO 라기보단... TNT였지. 정작 HBO는 지금도 열심히 소수의 프로젝트를 치열하게 기획, 제작해서 세상에 내놓고 있다. 반면 맥스에 가는 작품은 HBO 기획 테이블에서 킬 당할 것 같았다. 프리미엄을 붙이려면 지금 이것 가지고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면 글로벌 시장은? 콘텐츠는 자신이 있으니 (없을 수가 없다) 시장 공략을 어떻게 할지, 로컬 시장과 얼마나 타협할 것인지 궁금하다. 넷플릭스처럼 전방위적으로 크리에이터를 찾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로컬 콘텐츠를 만들까? 아니면 아마존처럼 자막/더빙/UI 우리말/우리글 제공 정도로 할 것인가. (3년 전쯤 홍보담당사도 있었는데, 지금은 없는 듯하다.) 디즈니+처럼 느릿느릿 들어올까(산발한 콘텐츠 권리 문제 때문일까?), 아니면 NBC유니버설처럼 국내업체와 손잡을까(웨이브와 전략적 제휴). 개인적인 예상+소망이라면, 한국 시장에는 넷플릭스만큼 전면적으로 달려들진 않아도 로컬 콘텐츠 수급은 분명히 생각할 것 같다.


워너미디어는 해외 스튜디오 중에서 로컬 콘텐츠를 많이 내놓는다. 워너브라더스 코리아가(들어가는 시나리오 수준은 할 말이 없지만) 얼마 전까지 해외 스튜디오로는 유일하게 한국 영화를 제작했다. (소니가 얼마 전 신혜선 주연 <결백>을 제작하며 합류) 얼마 전 BIFAN에서 본 귀여운 강아지 영화, <래시 컴 홈>은 독일 워너브라더스가 제작/배급을 맡았다. 로컬 시장에 이미 스며들었으니 넷플릭스처럼 로컬 시장 크리에이터와 손잡을 계획이라면 더 수월할 것이다. 급하게 폐쇄하긴 했지만 드라마피버로 한국 콘텐츠가 잘 된다는 것도 이미 확인했고.


그럼 HBO Max의 국내 파트너는 누가 될까? IPTV사는 넷플릭스와도 이미 제휴를 맺었으니 디즈니+나 HBO Max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넷플릭스가 가능성을 입증했으니 해외 파트너 만들기에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 언제쯤 되려나 시간만 재는 듯한 디즈니+보다 빠른 시일 내에 뭔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야 해외 사업자가 직접 서비스를 하는 건 반갑다. 다만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우리나라 서비스 업체들이 이 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우려는 된다. IPTV 사업자는 각종 콘텐츠를 모으고 골라서 서비스해주는 기업인데, 사업자와의 제휴는 마케팅 면에선 효과가 있어도 콘텐츠에 대한 권리나 소비자에 직접 어필하는 것은 작아지는 위험이 있다. 콘텐츠를 고르고 만드는 일은 다른 업체에 넘기고 “이것도 저것도 다 되는” 로쿠 같은 위치가 될 테니까. 요즘 국내 OTT업계의 위기를 진단하는 여러 기사에서 우리나라 사업의 영세성을 계속 지적하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모르고 보면 차라리 좋을 것을... 새끼손가락 먹물에 살짝 담갔다 뺀 경험이 있다고 이렇게 업계의 미래가 걱정될 줄이야. 역시 사서 고생하는 타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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