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작성 2025.04.05)
안 본 분들에겐 스포일러일 수 있겠다.
시작은 얼굴존잘 감성 충만 삼만 사천 살 원숭이요괴할배로…
작년 말에 궈징밍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의도치 않게 고장극 3부작을 만들게 되었고, 그중 <대몽귀리>는 '생과 사'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그 말 그대로 이 드라마는 세상의 모든 악을 담은 한 요괴가 어떻게 죽는가…를 그린다. 이게 스포일러라고? 무려 2화에 "날 죽여라."가 대사로 나온다. 조원주의 죽음은 조원주-탁익신 사이의 은원을 청산하는 결과이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대몽귀리>는 자신을 증오해서 죽고 싶었던 존재가 세상을 사랑하고 지키기 위해 죽는 이야기다. 조금 과하게 해석한다면 주염/조원주가 자신의 방식으로 존재의 의의를 찾는 여정이다. 그게 죽음이라는 게 안타까울 뿐.
<대몽귀리>는 잘 만든 드라마는 아니다. 빌드업이 너무 느리다. 거대한 코끼리의 다리를 더듬는 게 1/2 지점인 15~17화라는 건 여전히 아쉽다. 그 순간에 닿기 전까진 어설픈 요괴 수사대의 활약상과 '다른 요괴들의 사랑 이야기' 때문에 이 드라마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대사로, 꿈으로, 회상으로 뿌려놓은 자잘한 단서들이 완전한 실체를 드러내고 '다른 요괴의 이야기'에 기대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이건 뭐 눈물은 흘리지 않아도 가슴을 치면서 보게 된다. 그 중심에는 조원주/주염이 있다.
원래 이것저것 보던 게 많아서 '좋아하는 캐릭터'를 꼽으라면 주저한다. 옛날 옛적 미드 <캐슬>의 주인공 캐슬, 이젠 종영한 <NCIS: 로스앤젤레스>의 딕스, <어벤저스>에서 나도 모르게 행복을 빌게 되는 스티브 로저스/캡틴 아메리카... 정도? (적고 보니 다 남자네. 의도한 건 아니다.) 중드에선 <랑야방> 종주님 말고는 딱히 애정하는 캐릭터가 없었는데 (그리고 <랑야방>은 솔직히 명작이잖아요.) 작년부터 중드를 몰아보고 신작도 챙겨보면서 주염/조원주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가 되었다. 능글맞고, 장난기 많고, 가면을 쓰고 자신의 본모습은 드러내지 않지만 선량하고 눈물 많은, 그리고 어떤 고난 앞에서도 결국은 '옳은 것'을 선택하는 캐릭터. 주염/조원주 역시 그런 결에선 지금까지 내가 사랑했던 캐릭터와 결이 비슷하다.
<대몽귀리> 최대 쟁점. 그래서 조원주는 누굴 사랑했을까? 드라마가 떠먹여준 공식 커플 문소? 죽여라-죽일 거다로 시작했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존재가 된 탁익신? 아니면 전남친처럼 지긋지긋한 이륜? <대몽귀리>를 보는 분들이 과연 누가 찐사인가를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는데, 대요괴에게 그게 중요한가 싶다. 짧은 일생을 사는 사람도 아니고, 심장에 방이 여러 개라도 제약을 받는 인간도 아니고,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감정과 다채로운 사랑을 '배우게 된' 요괴에게 "그래서 네가 사랑한 이는 누구야?"라고 묻는 게 의미가 있을까?
주염은 자신의 삶을 채운 존재들을 사랑하고 아꼈다. 너무 사랑해서 자신의 모든 걸 버리면서까지 그들이 무사하길 바라고 행복하길 바랐다. 문소는 그놈의 망할 계약서 때문에 애정을 느낄 때마다 심장이 아프지만, 만약 탁익신과 그런 계약서를 썼다면 익신을 보면서도 통증을 느꼈을 거라 확신한다. 이륜은 요괴로서 능력은 출중하지만 감정은 어린아이와 다름없었던 소년 시절을 함께 한 친구이기에 그를 향한 애정도, 독점욕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배신당했다'라고 생각했을 때 이륜은 결국 주염의 끈질긴 스토커가 된 거지.
그러니까 내 말은 조원주가 이 인간 저 요괴 다 후리고 다니는 '나쁜 놈'이란 게 아니다. 어떤 이야기에서든 '사랑'을 좁게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고 싶은 것이다. 세상을 오래 살고 수많은 존재와 만남과 이별을 경험했던 늙은 요괴의 감정은, 인간의 짧은 생과 경험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에필로그(번외편)에서 탁익신도 인정했다. 그는 겨우 서른인데 조원주는 삼만 사천 살이다. 자신이 분노와 열기를 다스리지 못하고 죽이니 마니 했을 때, 조원주는 자신을 얼마나 우습게 보았을까? (내레이션 부분이다) 요괴, 신, 또는 불멸의 존재는 우리 상상의 산물이지만 인간 존재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있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이야기에 과몰입한 것 같은데(맞긴 한데) 결국 <대몽귀리>라는 작품을 통해 나는 오래 사는 강한 존재가 느낄 기쁨과 슬픔, 아픔, 공허함 같은 걸 상상했다. 그 모든 걸 경험하고 상처받아 자기 자신을 한없이 증오했던 주염이 다시금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기뻐하고 슬퍼하며 행복을 느끼면서 진정한 죽음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 공감했다. 주염은 문소를 생각하며 입마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정신을 붙잡고, 이륜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요력을 아낌없이 내놓으며, 대업을 완성하기 위해 익신의 운광검 앞에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다. 주인공이 죽었기 때문에 새드엔딩이고, 나쁜 놈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기에 배드 엔딩이지만, 내게는 한 존재가 생과 사의 경계 앞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와 목표를 찾아가는 과정이었기에, 눈물 흘리면서도 웃을 수 있는 것 같다.
이걸 조금만 더 재미있게 만들었으면 좋았잖아 궈감독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