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10-11월 신작 중국 드라마 결말까지 감상
(최초작성 2025.11.17)
방영 직후 리액션을 하기도 전에 후루룩 끝나버려서 통으로 감상문을 쓰… 암튼 그러하다.
판타지 액션, 로맨스 | 성의, 이일동, 곽준진, 장지요, 상화삼 등 | 36부작 | 아이치이
어릴 적부터 요괴를 죽이고 악을 처단하는 일기맹의 최종 병기로 키워진 왕권부귀는, 어느 날 왕권산장에 첩자로 숨어든 거미 요괴 청동을 만나게 된다. 청동의 등장은 부귀가 갖고 있던 요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점점 바꾸고, 부귀는 청동을 통해 더 넓은 바깥세상에 대해 알게 된다. 부귀는 자유를 갈망하기 시작하고, 세상이 하나 되길 꿈꾸던 부귀의 마음에 불이 붙는다. 수많은 시련과 고통 끝에, 부귀는 청동과 함께 왕권산장을 떠나 자신만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데... - 아이치이 <천지검심> 시놉시스
아이치이의 대작 <호요소홍랑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한 드라마. <회수죽정>의 주인공 왕권홍업과 동방회죽 부부의 아들, 왕권부귀가 아버지와 일기맹, 타인이 정해준 길을 가기보단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다. <연화루> 성의가 어릴 때부터 인간 병기로 키워졌으나 끝내 자신의 의지로 운명을 다시 쓰려 한 왕권부귀를, <서권일몽> 이일동이 부귀에게 다른 삶의 가능성에 눈을 뜨게 한 거미요괴 청동을 연기했다. <화융> 곽준진이 검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부귀의 사촌 권여목, <일념관산> 상화삼이 후반부 큰 활약을 한 사막 여우 요괴 범운비 역을 맡았다.
여기서 가장 먼저 드는 의문. <천지검심>을 보기 위해서 <회수죽정>을 반드시 봐야 할까? 시간이 없다면 생략해도 상관없지만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 보는 걸 추천한다. <천지검심>에서 생략된 배경 정보가 <회수죽정>에 있는 데다가, 부모 세대가 겪은 비극을 봐야만 부귀에게 애정을 가지고 그의 여정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뀌기 전 제목인 <호요소홍랑 왕권편>에서 알 수 있듯 이건 왕권부귀의 이야기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경계 밖 흑여우 세력으로부터 인간계를 지키고 끝내는 흑여우를 없애는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그와 왕권가를 시기하거나, 예언을 맹신하며 정해진 운명을 완수하라고 떠밀 때도, 부귀는 고결함을 잃지 않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앞으로 나아간다. 주인공의 성장과 마지막 순간에 집중하는 영웅 서사로 본다면, <천지검심>은 꽤 괜찮은 드라마다. 적어도 이 주제의식만큼은 꾸준히 밀고 나간다.
드라마는 1화부터 12화까지 이야기를 차근차근 쌓아 올린다. 부귀, 청동, 여목 등 주요 캐릭터와 관계, 배경을 자연스럽게 소개한다. 부귀의 닫힌 세계는 청동을 만나 열리기 시작하고, 홍업과 부귀의 복잡한 관계 속 갈등은 점차 표면화된다. 또한 부귀와 왕권가의 힘을 두려워하고 시기하는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그 틈을 흑여우가 어떻게 파고드는지도 세심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12화에 나오는 이 드라마의 하이라이트, 만검천심 장면—비처럼 쏟아지는 칼을 맞아가며 청동을 지키려 한 부귀가 요괴의 힘에 맞서 어머니의 힘인 순질양염을 완전히 각성하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순간—은 정말 압도적이다. ‘이 장면을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구나’ 싶을 만큼. 이때는 배우의 연기도, CG도 모두 제 역할을 완벽히 해낸다.
문제는 이때부터 드라마가 조금씩 흔들린다는 것이다. 17화에 부귀가 오랫동안 쌓아왔던 '검맥'을 빼앗기고 서서역으로 유배되고, 청동과도 떨어져 지내면서 분량이 크게 줄어든다. 이후 사건 전개를 위해 새 캐릭터를 소개하고 새로운 사건을 만들고, 그 와중에 청동의 성장도 다뤄야 하다 보니 부귀의 분량과 비중이 이전보다 많이 축소된다. <회수죽정>도 특별 출연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왕권홍업과 동방회죽의 이야기가 아닌 적은 없었다. 하지만 <천지검심>의 이 부분에선 부귀가 서사적으로 한걸음 물러나 있고 부귀가 중심인 관계들은 진전이 없어서인지 "드라마 주인공이 맞나...?"라는 생각마저 든다.
<천지검심>의 가장 답답한 구간도 이때 시작된다. 청동이 목숨 걸고 지켜낸 동생 청징이 흑여우의 유혹에 넘어가 누나에게 집착하며, 청동과 부귀의 관계를 끊어놓으려고 온갖 일을 벌이는 부분이다. 흑여우의 농간에 휘말린 것을 몰랐다 해도, 청징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청동은 끝까지 청징을 믿고 그의 거짓말과 기만에 계속 속아 넘어간다.
청징이 스스로를 해치면서까지 청동에게 집착하고, 자신을 버리지 말라며 끝없이 붙잡아두는 장면이 반복되다 보니 보는 쪽도 점점 짜증이 쌓인다. ‘도대체 왜 이렇게 오래 끄는 거야? 우리 바쁘다고. 청동이랑 부귀 빨리 만나야 한다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한 외국 팬이 드라마 제목을 'Sword And Beloved'가 아니라 'Siscom And Beloved'라고 부른 게 농담 같지 않을 정도다.
청징 스토리가 마무리되고, 서서역에 감도는 사악한 기운을 상대하던 부귀가 서서역을 떠나면서 이야기는 결말로 향한다. 흑여우가 막강한 힘으로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불신과 절망에 빠뜨리는 존재인 만큼, 이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선 한계를 뛰어넘는 선택이 필요하다. 수많은 사람이 대의를 위해 희생된다. 부귀가 흑여우에게 천지일검을 휘두를, 바로 그 최후의 순간을 위해서다.
그런데 나는 이 부분이 아쉽고 조금 서운했다. 이 작품이 결국 부귀의 이야기라 최후의 순간에 부귀만 남을 걸 예상하긴 했지만, 그 과정까지 온전히 부귀 혼자 싸우는 그림이 되진 않길 바랐다. 그러나 흑여우와 대면하는 순간까지 부귀는 외로웠고,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존재들은 하나둘 떠나갔다. 그들이 끝까지 부귀 곁을 지켜주길 바랐던 만큼, 이 선택이 더 아쉽게 느껴졌다. 아무리 고독한 영웅 서사라고 해도, 마지막까지 캐릭터를 극한으로 몰아갈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성의와 이일동은 이미 <영웅지>에서 한차례 호흡을 맞췄지만, 여러 사정으로 <천지검심>이 먼저 공개됐다. 처음엔 두 사람이 잘 맞을지 반신반의했지만, 정작 드라마를 보고 나니 ‘역시 연기는 케미를 이긴다’는 말이 실감 났다. 제작사 정책상 성우 더빙을 사용했음에도, 두 배우의 표정과 액션은 캐릭터와 잘 맞았고 부귀와 청동이 서로에게 느낀 연민과 애틋함을 충분히 전달했다. 성의와 이일동 모두 왕성하게 활동 중이라 차기작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다만 성의의 작품들은 로맨스가 메인이 아니라서, 당분간은 <천지검심>으로 아쉬움을 달래야겠다.
이 드라마에서 개인적으로 얻은 건 곽준진이라는 배우를 알게 된 것이다. 권여목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훌륭하게 살려냈다. 코미디 연기도 잘 했는데, 특히 점성가로 변장해 서호국에 잠입했을 때는 등장할 때마다 웃음을 터뜨렸다. 사막 여우 범운비 역의 상화삼 역시 중반부에 등장했음에도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줬다. 그는 고장극에서 늘 귀티 나지만 어둡고 강한 역할을 맡았는데, 이렇게 해맑고 순진한 여우 요괴 연기도 잘 소화하는구나 싶었다. 부귀, 여목, 운비 셋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들은 ‘바보 삼총사’의 만담을 보는 듯한 즐거움이 있었다. 배우들도 분명 재미있게 촬영했을 것 같다.
<천지검심>을 끝까지 보고 나니, 5월부터 따라온 드라마의 결말을 드디어 마무리한 느낌이다. 결말로 갈수록 집중력이 조금 떨어져 아쉬움도 컸지만, 전체적으로는 재미있게 보았다. 원작이 애니메이션으로는 큰 사랑을 받았지만, 실사 드라마로 제작하기엔 구조적 한계가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캐릭터의 여정’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부귀는 끝까지 부귀다웠고, 그 점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부모인 홍업과 회죽의 이야기가 부귀를 통해 하나의 흐름으로 완성된 느낌도 들어 마음이 놓였다.
<천지검심>의 한국 방영권은 채널차이나가 확보했다. 방영 일자는 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