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신작 중국 드라마 짧은 감상
강호야우십년등 (江湖夜雨十年灯 , Generation to Generation)
고장극, 로맨스, 무협 | 주익연, 포상은, 여가성, 범정의, 만붕, 이윤예 등 | 37부작 | WETV
결단력 있고 교활한 양면 소주 모청연과 소탈하고 통찰력 있는 여협객 채소. 두 사람은 극단적인 이끌림 속에서 달콤하면서도 고통스러운 사랑을 쌓아간다. 음모가 얽힌 강호 속에서 두 사람은 함께 무림의 가면을 벗겨낸다, 사랑과 증오가 얽히고 반전이 끊이지 않지만 지혜로 싸워가면서 따뜻하고 의로운 인물들을 그려낸다. - WETV <강호야우십년등> 소개글
동명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로맨스 무협 드라마다. 정파의 여협객과 마교 후계자가 사랑에 빠져 오랜 갈등의 원인을 찾고, 당면한 위협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다. <당아비분향니>의 주익연이 이교(마교) 소주 모청안 역을, <사조영웅전 2024>의 포상은이 낙영곡 출신 협객 채소 역을 맡았다. 정파인 '북진육파'와 사파인 '이교'의 대립을 다루는 만큼 등장인물이 매우 많다. 그중에서도 전설적인 여협객이자 채소의 고모인 '채평수' 역의 만붕, 모청안의 아버지와 숙부인 '모정명/모정양' 역의 이윤예가 특별출연하여 존재감을 뽐낸다.
낙영곡 채씨 가문 여자들은 "마녀가 된다"는 저주를 피하고자 타 문파에서 일정 기간 수련해야 하는 전통이 있다. 여주인공 채소는 미뤄왔던 '유학'을 위해 천하제일 문파 청궐종으로 향한다. 이동 중 이교의 습격으로 전멸한 상가보의 후계자 '상녕'을 구하게 되고, 청궐종이 있는 만수천산애에서 그와 인연을 이어간다. 하지만 상녕의 정체는 이교를 이끄는 모씨 집안의 후계자 모청안이었다. 섭씨 세력에 패해 상가보에 의탁했던 그는 상씨 가문이 멸문당하자 배후를 조사하기 위해 청궐종에 잠입한 것이다. 채소는 그의 신분을 알게 된 후에도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지만, 정사(正邪)의 극한 대립 속에서 그를 선택하기를 매번 주저한다.
장편 웹소설을 40부작 드라마로 옮길 때의 관건은 텍스트의 정보를 영상으로 구현하며 시청자의 시선을 얼마나 붙잡느냐에 있다. <강호야우십년등>은 초반에 이 지점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1~4화는 인물 스케치와 배경 정보를 설명조로 전달하는 데 치중한다. 그러다 보니 상녕의 모호한 태도나 낯선 배경 지식이 시청자의 흥미를 자극하기보다 피로감을 준다. 하지만 탈주의 고비인 6화에 들어서 두 사람이 청궐종을 벗어나고 진짜 남주 '모청안'이 본색을 드러내며 드라마는 활기를 띤다. 초반부에 집중이 어렵다면 모청안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점까지는 지켜보길 권한다.
작품의 단점은 명확하다. 두 세대에 걸친 원한을 다루다 보니 사건이 복잡한데, 대본이 이를 효과적으로 풀어내지 못했다. 과거의 은원과 현재의 갈등 사이에서 실마리만 던지다가, 결국 후반부에 이르러 대사로 모든 상황을 설명해 버리는 '입전개'로 마무리된다.
연출 역시 아쉽다. 려호길길 감독은 <묵우운간>에서 보여준 특유의 시그니처 연출을 고수하지만, 무협물에서 가장 중요한 액션 시퀀스는 조잡하기 짝이 없다. 서사에 집중해야 할 대목에서 튀는 영상미가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고, 난해한 미술과 의상은 종종 시청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전반적인 프로덕션 퀄리티가 고르지 않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은 '모청안'과 '채소'라는 캐릭터에 있다.
모청안은 근래 보기 드문 '정서 불안정형 집착 계략 남주'다. 채소를 향한 애정과 집착이 파격적이라 여주인공의 맘고생이 심하다. 그는 채소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복수를 위해 그녀를 적을 꾀어내는 미끼로 활용하거나 정파를 속이는 도구로 쓰기도 한다. "사랑하는데 이용한다"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이용한다"는 뻔뻔하고도 광기 어린 태도가 압권이다. 현실이라면 절대 만나선 안 될 타입이지만, 주익연의 열연 덕분에 이 위험한 캐릭터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채소는 이런 모청안의 집착을 그저 견디기만 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극의 흐름을 되짚어 보면, 채소가 거부했다면 모청안은 차라리 온건한 방식을 택하거나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채소는 그가 '상녕'일 때나 '모청안'일 때나 한결같이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심지어 중독된 그를 돌보기 위해 문파의 금기를 어기고 이교의 본거지까지 거침없이 잠입할 정도로 그녀의 사랑은 능동적이다. 모청안이 자신과 북진육파 사이에서 잔인한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에서도 그를 원망하기보다, 타인을 믿고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넣지 말라는 진심 어린 충고를 건넨다. 결국 모청안을 변화시킨 건 그의 광기 어린 집착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품어준 채소의 단단하고도 따뜻한 신념이었다.
결국 모청안이 이 충고를 받아들여 최악의 수를 피함으로써, 최후의 적을 물리치고 강호의 갈등을 해소하며 사랑까지 얻는다. 이전 세대가 극한의 선택으로 파국을 맞았다면, 현 세대는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음으로써 행복을 찾은 것이다. 서사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이 주제 의식만큼은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드라마 자체는 엉망진창이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기묘하게 남는 여운은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는 것 같다.
서사보다는 캐릭터의 매력과 감정선에 집중하는 시청자라면 <강호야우십년등>은 시도해 볼 만한 작품이다. 방대한 스토리에 매몰되지 않고 두 주인공의 관계성에만 집중한다면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완성도 높은 정통 무협물을 기대한다면 아쉬운 선택이 될 수 있다.
<강호야우십년등>은 현재 위티비에서 시청 가능하다. 한국 방영권은 채널차이나가 확보했다. 방영일은 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