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명차골

‘26 신작 중국 드라마 (뒤늦은) 감상

by 겨울달

옥명차골 (玉茗茶骨, Glory)

고장극, 로맨스 |후명호, 구리나자, 진약헌, 주혁흠, 강남, 조소의 등 | 36부작 | 티빙, 웨이브


젊은 장원 육강래는 현령으로 부임해 기이한 사건들을 해결하지만, 옛 살인 사건에 휘말려 죽을 위기에 처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차왕 영씨의 후계자 영선보의 도움으로 살아난 그는 기억을 모두 잃게 되는데... - 웨이브/티빙 <옥명차골> 소개글


차 업계를 주름잡는 '차왕 영씨' 가문의 후계자와 사고로 기억을 잃고 영씨 가문에 들어오게 된 유능한 관리의 밀당, 그리고 가업을 둘러싼 경쟁과 암투를 그린 로맨스 고장극이다. 능력 있는 여주인공과 연하남의 살벌한 연애, 가문 내 권력 다툼, 무엇보다 성별 고정관념을 뒤집은 설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대몽귀리>, <입청운>의 후명호가 귀여운 연하 계략남 '육강래' 역을, <부산해>의 구리나자가 가문을 이끌어갈 '영선보' 역을 맡았다. 여기에 진약헌, 조혁흠, 강남, 조소의 등이 출연했으며, <청천입몽>의 장지미 감독이 연출을 담당했다.


후명호, '녹차남' 육강래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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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캐릭터와 타입캐스팅이 판치는 중국드라마 고장우상극 판에서 후명호의 필모그래피는 독특하다. 배우로서 입지를 다진 후에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흥미로운 배역을 영리하게 고르는 낌이다. <대몽귀리>와 <입청운>이 그랬다. (개인적으로 완주하지 못한 <소요>도 포함하고 싶다). 이번 <옥명차골> 역시 후명호 때문에 시작했다. 이 정도 연차의 배우가 능수능란하게 표현하는 '녹차남(계략 남캐를 뜻하는 중드식 표현)'은 일단 '찍먹'이라도 해봐야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드라마 자체는 무난했지만, '육강래'라는 캐릭터만큼은 확실히 인상 깊었다. 육강래는 본래 실력과 자존심을 겸비한 현령이었으나, 하루아침에 기억을 잃고 영씨 가문의 노비로 전락한다. 하지만 비상한 두뇌와 임기응변으로 순식간에 영선보의 심복이 되고, 곧바로 '배필' 후보 1순위로 급부상한다. 기억을 되찾은 후 공적인 임무 때문에 가문과 대립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영선보의 하나뿐인 '키링남'이 되기 위해 온갖 계략을 짜고 몸을 사리지 않으며 감정에 호소한다. 부와 권력을 모두 쥐어 아쉬울 것 없는 도도한 큰 아가씨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려는 연하남의 노력이 눈물겨울 정도다.



여자들의 후계 경쟁, 남자들의 가택 암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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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명차골>은 단순한 연애물이라기보다 택투물이나 권모극의 성격이 짙다. 가주 자리를 놓고 벌이는 자매들의 암투가 극의 중심축이다. 영씨 가문의 할머니는 맏손녀 영선보를 어릴 때부터 혹독하게 훈련시키며 '후계자 자리'를 미끼로 손녀들을 경쟁시킨다. 할머니의 목표는 손녀들이 '전통을 이어갈 완벽한 영씨 가문의 여식'이 되는 것이다. 이는 가업 승계는 물론, 명문가와의 통혼을 통해 '혈통이 보장된' 후손을 낳아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여기에서 이 드라마의 백미인 '데릴사위 선발전'이 등장한다. 초반부는 영선보의 '첫 번째' 남편이 되기 위해 강남 명문가 청년들이 벌이는 꼴불견 같은 경쟁과 질투가 가득하다. 영씨 가문의 알짜배기 사업에 편승하려는 남자들은 서로 시기하고 헐뜯으며 심지어 생명까지 위협한다. 이 살벌한 후원 싸움 속에서 누구도 영선보의 마음을 얻지 못하자, 그들은 다른 자매들과 손잡고 영선보를 흔들려 한다. 하지만 영리한 영선보는 모든 수를 꿰뚫고 적절하게 대처하며 위기를 넘긴다. 육강래와 영선보가 마치 마음을 읽은 듯 찰떡궁합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시청자에게 짜릿함을 선사한다.



해결사 영선보의 그림자에 가려진 남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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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데릴사위 선발전에 너무 많은 힘을 쏟은 탓일까. 두 주인공이 얽히게 된 결정적 계기인 '위부인 살인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중반부부터는 동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갈등의 무대가 영씨 저택을 벗어나 부패 관료와의 대립으로 확장되면서 이전 파트의 쫄깃한 매력이 반감된다. 다섯째 소저 영균이 집안 내 갈등을 이어가려 하지만 영선보의 존재감에는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모든 사건을 영선보 혼자 해결하다 보니 육강래의 역할이 축소된 점도 아쉽다. 그저 영선보를 걱정하고 돕거나, 그녀의 마음이 떠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수준에 머문다. 스토리 라인이 한쪽으로 지나치게 쏠리면서 극의 재미가 덜해졌고, 이 구간만큼은 이른바 '동태눈'으로 관람하게 되었다.


후반부에 삽입된 '육강래 출생의 비밀' 파트는 사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족에 가까웠다. 어차피 영씨 가문의 데릴사위가 되기로 결심한 육강래에게 공명(功名)을 위협하는 핏줄 따위는 이미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금 긴 에필로그라 생각하고 넘기기엔 나쁘지 않았다.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확실하면서 맛깔나게 매웠을 뿐만 아니라, 후명호는 물론 장뢰, 조준 등 '설씨 집안' 사람들을 연기한 배우들의 퍼포먼스가 훌륭했기 때문이다.



관계 역전극이 주는 신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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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하자면 <옥명차골>은 '가부장제'의 틀을 여성 중심으로 치환한 흥미로운 시도와 후명호라는 배우의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각본이나 연출이 전체적으로 고르지 못하고 캐릭터 활용 면에서 아쉬운 지점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극의 흥미를 크게 떨어뜨릴 정도는 아니다. 완벽한 서사보다는 캐릭터 간의 묘한 텐션과 전형성을 탈피한 관계 역전극을 즐기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옥명차골>은 티빙, 웨이브 등에서 시청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