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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Dec 07. 2023

컴칼 미술 과정 2년 차-2

이번 학기에는 "아크릴화 초급과정"과 "디자인 & 컬러" 두 과목을 수강하였다. 다음 주에 종강하지만 과제를 모두 마무리하였고 최종 과제에 대해 수강하는 학생들이 함께 피드백을 주고받는 크리틱(Critic) 시간만 남았다. 혹시 미술학교에 다니지 않고 혼자 그림을 배우는 독자를 위해 이번 학기에 배운 내용을 상세히 적어본다. 커뮤니티 칼리지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2년제 대학이며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이곳의 미술교육 커리큘럼을 한 학기에 한두 과목씩 느릿느릿 따라가고 있는데 미술을 어떻게 이해할 수 알려주는 믿음직한 전문가의 안내를 받는 기분이 든다.


아크릴은 성인 미술에서 가장 널리 활용되는 미디엄이면서도 막상 사용해 보면 색채 혼합 등이 은근히 까다로워서 잘 배우고 싶었다. 아크릴화를 가르친 유진 로드리그 교수님은 내년에 은퇴를 앞둔, 열정이 상당히 많은 분이다. 초급과정은 아크릴이라는 미디엄과 친숙해지는 기회를 갖는 두 개의 기초 과제와 세 개의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다. 전반부에는 물감 제조에 사용되는 피그먼트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 강의를 듣고 물감 색상에 대해 궁금했던 많은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어른이 되어 구입한 물감에는 어릴 때 크레파스에 쓰여있던 빨강, 파랑, 노랑, 청록 등의 이름 대신 알리자린 크림슨, 카드뮴 레드, 한자 옐로, 프탈로 블루 등 생소한 이름이 쓰여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름은 그 물감의 색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 피그먼트의 명칭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각 순수한 피그먼트에는 고유한 성질이 있어서 서로 섞어서 고운 색을 낼 수 있는 조합과 그렇지 않은 조합이 있음을 배웠다. 즉, 빨강이면서도 차가운 언더톤을 가진 알리자린 크림슨은 따뜻한 언더톤을 가진 카드뮴 옐로와 섞어도 예쁜 오렌지색을 만들 수 없고 탁한 황토색 비슷한 색이 된다. 수채화 물감으로 색을 섞을 때는 그다지 생각할 필요가 없던 부분이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첫 두 과제는 한색 계열과 온색 계열 색상을 각 하나씩만 사용하고 여기에 흰색과 검정만 더하여 채도와 명도를 표현하는 연습이었다. 이 연습에는 실내에서 창밖이 보이도록 찍은 사진을 준비하도록 했다. 나는 시카고 미술관에서 찍은 사진을 준비했고 오렌지와 코발트블루 두 색상을 선택해서 그렸다.

<Inside out, Outside in> © 글벗


나머지 세 개 프로젝트는 팝아트의 요소를 사용하여 세 개의 연작을 만드는 거였다. 팝아트는 기존 미술의 전통에 도전하여, 보통 광고, 뉴스, 만화 등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이를 반복하거나 다른 요소와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미술 양식을 말한다. 이 수업시간에는 현시대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면서, 원근법이나 입체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평면성을 강조하는 것을 팝아트의 성격으로 보았다. 연작은 하나의 주제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거나 여러 주제를 비슷한 스타일로 표현할 수 있다.

<Treasured Trash>, <Technology>, <Freedom for 1%>  © 글벗

나는 컨슈머리즘, 테크놀로지, 빈부격차라는 서로 다른 주제를 비슷한 스타일로 표현하기로 했다. 또한 벽지 느낌의 배경을 사용하여 화면 전체에서 전통적인 원근법은 피하되 이야기의 주제를 강조할 수 있도록 부분적 원근법은 적용하면서 자극적인 색채를 사용하여 팝아트의 특성을 부각하였다. 각 그림을 마칠 때마다 자신의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한 페이지 써내고 피드백을 주는 시간을 가졌다. 로드리그 교수님은 그림 못지않게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고 타인의 피드백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대응하는 자세를 중시한다.


앞으로 너네 그림 앞에서 사람들이 별 말을 다 할 거야.

뭐 이런 색을 칠했냐, 붓 자국이 지저분하다, 별 말 다 할 거야. 그러면 그냥 깨갱할래?

아니지.

먼저 크게 숨을 쉬어. 휴.

그리고 느긋하게 말해.

"흠. 재미있는 의견이군요. 잘 들었습니다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이렇게 대응할 줄 알아야 해.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연습, 피드백 주고받는 연습을 마음껏 해본 한 학기였다. 다음학기에 같은 교수님이 가르치는 아크릴 중급과정도 수강신청을 해놓았다.


디자인 & 컬러 과목은 숙제가 매우 많아서 솔직히 곤욕스러웠다. 매주 주요 과제 말고도 온라인 강의와 퀴즈가 있고, 일상에서 관찰한 디자인 요소를 사진이나 그림으로 기록하여 제출해야 하는 숙제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일상에 있는 디자인 요소를 관찰하여 기록하는 것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아래 그림에 있는 주에는 수직선, 수평선, 대각선, 들쭉날쭉한 선 찾기가 숙제였다. 매주 이런 활동을 하면서 아름다운 장면이 무엇 때문에 아름다운지 찾아보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교과과정은 균형과 대칭, 모양 등 디자인 원리와 디자인 요소를 응용하여 심상을 표현하는 연습이 주를 이루었다. 매주 흥미로운 주제였지만 그중에서도 길이나 집 마당에서 주운 자연물로 만다라를 만드는 숙제가 기억이 남는다. 아무런 금전적 가치가 없는 버려질 자연물을 주운 뒤 만다라에서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 관찰하고 만다라를 만든 뒤 허물어버리는 과정은 낯설고 감동적이었다. 비싼 물감이나 종이를 쓰지 않고, 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도록 제작하지 않는 활동도 예술임을 느꼈다. 아름다웠고, 충만했고, 다시 무()로 돌아가는 비움을 경험했다. 그밖에 스쿨버스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로 가득한 분위기를 표현하기 숙제와 오버랩핑으로 원근감 표현하기 등의 숙제도 기억에 남는다. 


아래 사진은 글자로 된 콜라쥬를 이용하여 질감을 표현하는 숙제였다. 나는 우리집 테디가 네 살 때 찍은 사진을 골라서 표현했다. 


이 수업을 들으면서 일상을 이루는 작은 부분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그래서 그림이 늘었느냐고 물으면 솔직히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그동안 사진을 그대로 옮기는 그림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했었는데 거기에서 한걸음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림 연습도 많이 해야겠지만 주위를 보는 시각을 넓히고 새로운 시각으로 볼 줄 아는 자질을 갖추는 것이 나에게는 더욱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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