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pective
명사.
1. 관점, 시각
2. 문제 해결을 위한 사고에서의) 균형감
3. 투시, 원근법
Oxford Advanced Learner's English–Korean Dictionary
단어를 외우면 그 뜻을 아니까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매우 드문 일이다. 단어 습득은 외워서 한 번에 완료되는 사건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¹). 단어를 외우는 것은 그 단어의 ‘명함’ 한 장을 받아 든 것 정도로, 이해의 시작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의 명함을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처럼.
게다가 우리말 단어와 의미의 모든 측면에서 정확히 일치하는 외국어 단어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하나의 단어가 오늘날의 쓰임에 이르기까지 한 문화권에서 오랜 시간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거치며 다면적인 의미와 함축성을 갖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의미가 완전히 같은 단어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란성 쌍둥이가 서로 떨어져 수십 년을 살아도 모습이 똑같은 경우만큼이나 드문 일일 것이다. 따라서 복잡한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는, 사전적 뜻을 익히고 나서 실제 말이나 글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여러 맥락에서 반복적으로 접한 뒤에야 비로소 의미가 선명해지고 손에 익는다.
Perspective라는 단어도 몇 차례 친숙한 경험을 하고서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단어가 되었다. 첫 번째 의미인 ‘관점, 시각’은 From my perspective처럼 흔히 쓰는 표현 덕분에 익숙했고, 내 의견을 보다 객관적으로 말하고 싶을 때 종종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번째 의미는 대략적으로 이해만 하고 적절히 사용하지는 못한 채 늘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던 중 이 단어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 일이 있다. 한 미국 친구와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 같은데, 십여 년이 지나 구체적인 내용은 잊었지만 친구가 결론처럼 했던 말은 선명히 기억한다.
“Young children don’t have the perspective to understand what it means.”
아, 무엇을 이해하려면 ‘퍼스펙티브’가 있어야 하는구나.
위에 적은 두 번째 의미가 그때 깊이 와 닿았다.
예를 들어, 탁자보다 키가 작은 아이는 발꿈치를 들어 탁자 위를 흘끔 본다 해도 그 모습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 탁자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아야 비로소 훤히 보일 것이다. ‘퍼스펙티브’를 갖는다는 것은 관련 지식을 갖추거나, 나이가 들거나, 경험을 축적하는 과정일 수 있다. 그렇게 무엇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감각을 일컫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단어의 라틴어 어원 역시 “통과하다(through)”라는 뜻의 per와 “보다(see)”라는 뜻의 specere가 합쳐져, 사물의 모습을 꿰뚫어 본다는 의미를 갖는다.
Perspective의 세 번째 의미인 ‘투시’ 혹은 ‘원근법’은 그림을 배우며 내 생각의 큰 화두가 되었다. 투시법은 삼차원 세계의 사물이나 풍경을 이차원의 화폭에 옮기며 멀고 가까움을 표현하기 위해, 눈에 비친 그대로 그리는 기법이다. 간단히 말하면 관찰자와 가까울수록 크게, 소실점(Vanishing Point: 실제로는 평행한 직선이 멀리 연장될 때 하나로 모여 보이는 점)에 가까울수록 작게 그리는 것이다. 원통형 물통을 옆에서 보면 길쭉한 직사각형, 위에서 보면 동그라미로 그리는 것처럼. 설명은 단순하지만 막상 정확히 그리려면 꽤 까다롭다.
예를 들어, 계단을 2점 투시로 그리려면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친다.
1. 종이의 왼쪽, 오른쪽 끝에 각각 소실점(VP1, VP2)을 찍는다.
2. 땅에 닿는 앞 모서리(수직선) 하나를 세로로 그린 뒤, 그 위점을 기준으로 좌·우 소실점으로 선을 그려 사다리꼴 박스를 만든다.
3. 앞 모서리(수직선)에 계단 첫 단의 높이를 표시한다. 그 높이 점에서 좌·우 소실점으로 선을 그어 첫 단의 윗면을 만든다.
4. 첫 단 윗면의 끝점에서 아래로 수직선을 내려 계단의 앞면을 만든다.
5. 방금 만든 ‘앞면의 윗부분’에서 다시 소실점 두 곳으로 선을 그어 두 번째 단의 윗판을 만든다. 끝점에서 또 수직선을 내려 앞면을 만든다.
6. 이 단계를 반복해 계단을 완성한다.
7. 원근감을 고려해 멀어질수록 단의 깊이는 얕아지고, 가까운 계단은 폭과 깊이가 크게, 뒤쪽은 점점 작고 낮게 보이도록 조절한다.
8. 가이드 박스와 불필요한 보조선을 지운다.
투시 드로잉을 배우기 전에는 단순히 ‘보이는 대로’ 그리면 되는데 왜 이렇게 복잡한 기법이 필요한지 의문이었다. 그 이유는 직접 그려보고 나서야 알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실제 보이는 대로 사물을 그리는 것이 매우 어렵다. 우리의 고정된 관점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보이는 대로 그렸다고 생각했지만, 완성된 그림을 보면 어딘가 일그러지고 어색했다.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정확하다’고 믿었던 내 눈이 사실은 정확하지 않았다는 것을. 퍼스펙티브 드로잉을 배운 뒤 야외 스케치를 하거나 사진을 그림으로 옮길 때 수평선을 찾고, 소실점을 찾고, 나의 눈높이를 찾는 연습을 거듭하자 그림의 비뚤어진 구석이 줄어들고 조금씩 반듯한 모습을 찾아갔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아마도 내 생각을 잠시 조용히 하고, 원리가 되는 수평선을 찾고, 내가 지향하는 소실점을 찾고, 지금의 나를 규정하는 시점을 확립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본다 해도 세상의 모든 모습을 볼 수는 없다. 높은 건물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옥상만 보여 반듯한 네모로 보이고, 땅에서 올려다보면 사다리꼴로, 측면에서 보면 넘어뜨린 사다리꼴에 가깝게 보인다.
세상의 모습을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만 보고, 아는 것이다.
¹) McKeown, M. G. (2019). Effective Vocabulary Instruction Fosters Knowing Words, Using Words, and Understanding How Words Work. Language, Speech, and Hearing Services in Schools, 50(4), 466–4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