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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당일기

2020년 봄날, 정원의 스냅샷 (1)

정지된 세상, 갈 길을 가는 생명

by 글벗

작년 늦가을, 이집으로 이사를 왔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사계절이 모호하지만 싱그러운 한철을 뒤로 하고 쉴 준비를 하는 식물을 보면 계절을 속일 수는 없는 듯, 마당은 쓸쓸해 보였다.


식물이 쉬고 싶은 시간에는 내버려두는 게 상책이기도 하고, 집은 온수도 잘 안 나올 정도로 고칠 것 투성이어서 이곳저곳 고치느라 마당에 눈길을 줄 틈도 없었다.

마당은 겨울에 해당하는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식물도 달력을 보나?

경칩(올해는 3월 5일이었다)을 며칠 앞두고 마른 가지에 움이 트기 시작했다.

올 봄 내내 비가 내려 땅을 흠뻑 적셔주었다.


4월 말, 이제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는 어느 날 마당의 스냅샷이다.


플러메리아

4년 전, 그때 4학년이었던 딸이 학교 화초 판매 행사를 도와주고 못생긴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왔다. 여름에는 하와이에서 볼 수 있는 예쁜 꽃을 피운다고 해서 한번 심어봤다. 첫해에는 그냥 나뭇가지였고, 다음해에는 이파리를 보였지만 꽃은 피우지 않았다. 그래도 좀 자라는 것 같더니 이듬해 아주 고운 꽃을 피웠다. 한여름이 되어야 꽃봉우리가 앉고 가을까지 쭉 꽃을 피운다. 이집에 와서는 마당에 그늘이 넓게 드리는 편이라서 고생이 많았다. 가지 몇 개가 무르기도 해서 살아날까 걱정했는데 양지로 옮겨주었더니 드디어 뾰족한 새순을 틔웠다.






이름 모르는 나무

unknown tree_3.jpg

이사올 때 이 나무의 노란 단풍이 참 좋았다. 곧 잎을 모조리 떨구고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났다. 가지에 새순이 나올 무렵 가지치기를 한 뒤 한동안 죽은 듯 보여 걱정했다. 며칠 연속 비가 오고 나니 이제 언제 아팠냐는 듯 다시 무성한 잎을 내놓는다. 이 나무의 이름을 알면 나무가 좋아하는 비료를 더 챙겨줄 텐데 이름을 모르겠다.


페퍼민트

겨울에는 땅에 민트의 흔적만 있었는데 매일 조금씩 꾸준히 퍼지고 있다. 민트는 별달리 손가지 않는다. 그냥 놔둬도 잡초처럼 잘 자란다. 대신 자주 수확을 해줘야 계속 예쁘게 자란다. 덕분에 요즘 민트티를 자주 마시고, 가끔 디저트에 장식삼아 올려서 풍미를 즐기기도 한다.










난디나(Nandina Domestica)

그루터기만 남아 있어서 뽑아낼까 했었는데 비가 며칠 온 뒤 자라기 시작했다. 이제 막 잎을 내기 시작했고 아직 상태가 좋지 않다. 게다가 이름 모르는 나무 뿌리 바로 옆에 있어서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기도 어려운 곳에 자리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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