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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당일기

2020년 봄날, 정원의 스냅샷 (2)

정지된 세상, 갈 길을 가는 생명

by 글벗

부겐빌레아(Bougainvillea spectabilis)

Bougainvillea spectabilis_shoot.jpg

이사 왔을 때는 바싹 마른 가시덤불만 서 있어서 볼썽사나웠다. 뽑고 다른 것을 심어야지 했는데, 조경사가 보더니 죽지 않았다고 해서 봄까지 기다려주었다. 가시만 있을 때는 몰랐는데 잎이 나기 시작하니 부겐벨리아의 모습을 드러낸다. 해가 드는 곳에 있는 부겐빌레아는 연중 이파리를 떨구지 않아서 이 흉측한 가시덤불이 부겐빌레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아마 담벼락 쪽은 일조량이 부족해서 잎을 떨구고 겨울을 나는 것 같다. 새잎을 보인 지 두 달 정도 되니 하나둘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이제는 썰렁했던 담벼락에 제법 생기를 더해준다.


수국

전에 살던 집부터 7년쯤 키운 수국인데 시원치 않은 사람이 키우다 보니 크게 자라지 않았다. 수국을 들인 첫해에는 잎을 금방 떨구고 죽어버린 것 같았다. 버리기 아쉬워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화분에 문제가 있나 해서 뽑아 봤더니 땅에 뿌리를 전혀 내리지 못했는지 훅 뽑혔다. 심을 때 흙을 제대로 털어내지 않고 뿌리가 잔뜩 엉킨 채로 심어서 그런 것 같았다. 잔뿌리가 낡은 흙에 주먹 정도 크기로 엉켜있는 것을 잘 털어내고 다시 심었더니 이듬해에는 가지 잎을 듬성듬성 내고 초라한 꽃 몇 송이를 피웠다. 지난번에 살던 집에는 마당에 그늘이 거의 없어서 그 후로도 물을 좋아하는 수국을 관리하는 것을 쉽지 않았다. 여름에는 잎이 무성해져서 물을 매일 주어야 하는데, 캘리포니아 여름 햇살은 사납기까지 했고 여름에 한국을 방문하거나 며칠 여행을 다녀오면 어김없이 잎은 모두 말라서 떨어지고 운명을 다한 것처럼 보였다. 땅에다 심으면 더 잘 클 것 같은데 수국에게 마땅한 자리를 찾아주는 게 쉽지는 않아 아직 화분에서 고생하고 있다. 지난해 두 번이나 이사를 하고 죽은 듯했었는데 다시 싱싱한 잎을 내고 송골송골 꽃봉이를 내줘서 기특하다. 올 가을에는 꼭 분갈이를 해줘야지.

hydrangea and geranium.jpg

제라늄

집 건물벽으을 따라 심겨 있다. 제라늄은 관리를 잘해줘야 예쁘게 피는 화초인데, 몇 년 간 방치되어 있었는지 가지만 볼품없이 자라 있었다. 이른 봄에 잎이 나긴 했는데 곰팡이와 진드기 감염이 심해서 뽑아 버릴까 했다. 혹시 몰라 가지를 모두 잘라냈더니 2주 정도 지나고 잎이 다시 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흙에 곰팡이가 남아 있는지 새잎이 그렇게 건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우리 강아지들이 여기에 쉬야하는 걸 좋아해서 고생이 많다. 부지런한 주인이었으면 흙 싹 소독해주었을 텐데, 난 또 나중으로 미루는군. 올해는 꽃을 안 피워도 용서해주마.


장미

roses.jpg

전 집주인이 화초를 좋아했는지 손바닥만 한 마당에 장미를 군데군데 심어놓았는데 이해할 수 없는 곳에 심어놓은 장미가 많다. 큰 나무 바로 뒤, 그늘 아래, 덤불과 섞어서 등등... 집이 몇 년 간 방치된 사이 장미도 실하게 크지 못했다. 겨울에 죽은 가지를 좀 쳐놓았는데, 몇 그루는 아직 손톱만 한 잎사귀들만 다닥다닥 내고, 몇 그루는 곰팡이를 허옇게 뒤집어쓰고 있고, 이 그루에서만 꽃이 피었다. 정열의 빨간 장미일 줄이야.


크라슐라 테트라고나(Crassula Tetragona)

이 집에서 처음 본 다육 식물인데, 이파리가 침엽수를 닮았다고 해서 흔히 솔다육(Pine succulent)라고도 불린다. 집 잎구에서 뒷마당으로 이어지는 통행로 변에 쭉 심기어 있는데 겨울에는 꽃이 하나도 없어서 소나무 잔가지를 잘라서 쭉 심어놓은 것 같았다. 코로나바이러스로 계속 집에 있느라 집 앞으로 나올 일이 많지 않아 노란 꽃이 핀 것도 뒤늦게 보았다. 무관심 속에 꽃 피우느라 수고한 솔다육, 고마워!

lemon and pine succulent.jpg


레몬나무

오랫동안 가지치기도 안 하고, 따먹지도 않고, 부겐빌리아와 딱 붙어서 심어놓아서 크기에 비해 레몬도 별로 안 열리고 아쉬운 점이 많다. 봄에 한차례 시트러스 전용 비료를 주었더니 조금 나아진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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