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응급실인데, 생일이 더 중요했다

금식과 일식

by 사아


“배 아파. 약 좀 사다 줘.”


전화 너머 엄마 목소리를 듣자마자 짜증부터 났다.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 숨겨둔 짜파게티를 기어코 찾아내 끓여 먹고, 온몸에 빨갛게 두드러기가 난 다음 날이었으니까. 3년 전 담낭 제거 수술 후 글루텐 알레르기가 생겨 엄마 건강 관리를 위해 그렇게 노력했는데, 현타가 심하게 왔다.


그렇다고 엄마를 탓할 수는 없었다. 뇌종양 제거 수술을 한 지 7년이 지났지만, 엄마의 섬망과 단기 기억 상실은 계속되고 있으니까.


집에 도착해서 냉장고에 있던 까스활명수로 일단 응급조치를 했다. 그런데 엄마는 점점 더 심한 복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가까운 내과에 가려고 옷을 입혔다. 집을 나서기 직전, 엄마는 극심한 복통을 느꼈는지 울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구급차를 불렀다.


홍제동 근처 병원 응급실로 갔다. 검사 결과는 “음식물이 가득 차 보인다, 소화기 쪽 문제일 것 같다”였다. 통증은 계속 일정하지 않았다. 한동안 괜찮다가도 갑자기 죽을 듯 아파하기를 반복했다. 응급실에서는 통증만 가라앉힌 채 퇴원했다. 의사는 다음 날도 통증이 이어지면 다시 와서 내과 진료를 보라고 했다.


다음 날, 엄마는 여전히 복통을 호소했다. 강아지를 유치원에 출근시키고 엄마와 동네 내과를 갔다. 진료 보던 의사가 배가 많이 딱딱하다고 했다. 변비나 소화계통 문제보다 더 큰 문제일 수 있다며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의사가 써준 소견서를 들고 엄마와 나는 신촌으로 향했다.


두 시간 뒤 복막염 의심 진단을 받았다.

응급실을 제집 드나들듯이 다녔던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입원이 길어질 거라는 걸.

문제는 여자친구 생일이라 저녁 예약이 잡혀 있었다는 거다.

회사에 있는 누나에게 전화했다. 반차 쓰고 와서 엄마를 봐 달라고. 누나는 별말 없이(한숨 쉬며) “알겠어” 했다.


엄마가 응급실인데, 여자친구 생일이 더 중요하냐고?

맞다. 더 중요했다. 정확히는 ‘내 삶’을 지키려는 쪽이 더 중요했다.


지난 7년 동안 누나와 나는 간병인으로 살았다. 포기한 것들은 너무 많아서 세지도 못한다. 큰 일들은 삶의 방향 자체를 바꿔놨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암묵적으로 합의했다. 가끔은 이기적이자고. 개인의 삶을 완전히 내려놓는 순간, 엄마까지 내려놓고 싶어질 수 있으니까.


엄마와 누나를 남겨두고 나는 다섯 시간 만에 응급실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급하게 씻고 외출 준비를 한 뒤 여자친구와 예약해 둔 식당에 앉았다.


그 사이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염증이 션트(뇌에서 배까지 연결된 관) 주변에서 발견됐다고 했다. 위험할 수 있으니 뇌 수술을 받았던 강남세브란스로 이송될 거라고.


음식이 눈앞에 놓였다.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응급실에 누워 하루 종일 금식 중인데, 나는 좋은 식당에 앉아 있으니.


하지만 예전만큼의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그냥 짜파게티 먹었다고 다그친 미안함. (복막염은 밀가루 알레르기와 큰 연관이 없어 보인다고 의사가 말했다.) 심각한 상태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 퇴원하면 맛있는 거 사줘야지 하는 다짐 정도.


그럼에도 자리를 즐기지는 못했다. 음식이 가격 값을 못해서. 돈이 아까워서.

내색은 안 했다. 여자친구가 궁금해하던 식당이었으니.


여자친구 집에서 저녁을 함께 보냈다. 1시에 잠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한 시간마다 깨서 누나와 카톡을 주고받았다. 오전 5시에 일어나 도곡동으로 왔다. 회사 출근을 해야 하는 누나와 교대하고 응급실 보호자 의자에 처박혀 있다. 허리가 아프다. 졸리다. 퇴원 시기도 모른다.


이제는 별 생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