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과 다를 바 없던 날이었다. 평상시처럼 출근했는데, 잘 지내던 동료의 눈빛의 온도가 급격히 싸늘해짐을 느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대답이 싱겁다. 모두에게 그런 거라면 모르겠으나 유독 나에게만 차갑다.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나, 평소와 똑같았는데 갑자기 왜 그럴까.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혹시 오해가 있다면 풀어보고자 먼저 다가가 보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짜증을 낸다. 분명 그제와 어제가 똑같듯 오늘도 똑같았는데, 동료에게 나와 관련하여 어떠한 변화가 있는 듯싶다.지친다. 일도 많은데, 동료와 함께 해나가야 할 프로젝트도 산더미인데, 관계가 어색해지니 벌써부터 앞으로의 출퇴근길이 피곤하다.
그렇게 일과시간을 무난하게 보냈다. 냉기 서린 동료와 서먹하게 인사를 했고, 퇴근길 지하철에서 좋지 않은 감정과 함께 그날 하루를 되짚어본다. 동료라서 신경은 쓰이는데, 동시에 나 또한 기분이 은근히 상했다.
직장생활에서 인간관계는 불가분적인 요소다. 직장에서 나 혼자 하는 일이라면 크게 개의치 않겠지만 큰 프로젝트를 수행할 경우 동료와의 팀워크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런데 사소한 인간관계에서 삐그덕 소리가 나기 시작하니 신경을 안 쓸래야 안쓸 수가 없다.
직장은 공적인 공간인 만큼 서로에게 매너선을 지켜주는 일종의 '펄스널 에어리어(personal area)'가 존재한다. 직장생활을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게 매너선을 잘 지키는 걸 느낄 수 있는데, 상대에게 해야 할 말을 하되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자세로 어려운 업무 처리도 소화해 낸다.
직장생활 초반에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저 잘해주기만 하는 게 직장생활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큰 착각이었다. 오래도록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때로는 냉정함이 필요하고, 거절도 잘하는 것이 결국 일도 잘 풀렸다.
알고 보니 이 동료는 전날 옆팀의 다른 직원들과 술 한잔 했고, 거기서 팀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에 대한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것이날을 세운 이유임을 알게 된 후,몇 년간 잘 지내왔던 그를더 이상 같은 팀 동료가 아닌 흔한 직원 한 명쯤으로 생각하게 됐다.
직장은 공정하게, 어쩌면 냉정하게 '업무'가 주인 곳이다. 한 곳에서 10년을 있어본 이제야 그런 감이 생기는듯하다.
아직도 직장생활은 참 어려운 것이다. 관계도 중요하고 업무도 중요한데, 두 가지를 모두 유지할 수 있는 현명한 자세란 과연 존재할까.
최근 근처 서점에 들렀다가 '서른에 읽는 손자병법'이란 책이 눈에 들어왔다. 손자병법 하면 누구나 들어보았을 법한 가장 유명한 말인 '지피지기 백전불태'가 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명언이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내게 다가오는 상대의 본질을 간파하면, 상대방과 융통성 있게 지내거나 아니면 현명하게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일을 해내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되, 때때로 방어가 필요할 땐 선을 긋고, 공격이 필요할 땐 할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모두와 잘 지낼 필요 없다. 직장이란 게 언제나 평온한 곳일 수는 없기에, 그래야만 험난한 직장생활에서도 온전히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