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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슈가 Jun 23. 2020

이외수 소설 '칼'을 기억하며..

나도 장사는 처음이었다.

오래전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 읽었던 이외수의  <칼>이라는 소설은  오랫동안 남아 있는 기억중 하나이다.

줄거리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소설 속 주인공이 약하고 비굴하게 묘사되었으며 그런 자신을 외부의 강압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칼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런 이유로 주인공은 신검을 만들기 시작한다. 신검을 만드는 과정에 정신집중과 해탈의 과정 등이 줄거리였던 것 같다. 그 칼은 다른 사람을 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만든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신검은 피를 보아야 완성되는 것인데 피를 보기 위해 신검으로 그 누구도 해하지 못한다. 결국은 자신의 죽음으로 이어졌던 내용이었던 것 같다. (한번 더 나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러한 신검을 만들어가는 동안 나약했던 주인공의 변화이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이미 자신을 지킬 신검을 마음에 품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장사’라는 것은 나이 마흔 중반을 앞두고 두려운 도전이었다. 낯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겁났으니까.

흔히 ‘속으로 칼을 간다’라는 표현을 한다. 내가 ‘칼을 간다는 것’은 세상 밖으로 나온 내가 세상에서 버티고 나를 지키기 위해 단단해지려는 노력을 ‘칼’을 만드는 의미로 생각했다. 이러한 소설 속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마음속으로 ‘신검’을 만들 듯이 스스로 프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새로운 시작은 두렵고도 설레는 일이겠지만 매일 다른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은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많은 일이었다. 물론 지금은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이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다. 장사 초보일 때는 좀 강해 보이는 손님. 흔히 센 언니의 이미지를 한 손님은 겁나기도 했다.  적응이 안되고 주눅이 들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마음속 신검을 생각하면서 나 자신에게 주문을 걸기도 했다. 직장생활과 가장 큰 다른 점이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다. 음식점이나 카페의 손님들은 거의 백 프로 구매 손님이 맞지만 옷가게에 들어오는 손님은 확률이 반반이다. 사느냐 안 사느냐..  

사십 대에 새로 시작한 일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생소했으며 힘들었다. 20대 사회초년생이 아니기에 자존심이 상해서 어디 가서 하소연을 늘어놓지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큰아이가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인데 어른인 엄마가 장사하면서 적응을 못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가족들, 특히 아이들에게는 차마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처음 하는 일이었고 여전히 장사에 있어서는 초보였는데 그 누구에게도 내가 힘든 부분을 보여주며 투정 부리기가 어려웠다. 손님을 상대하는 일뿐 아니라 서울 동대문 시장을 밤새 돌아다니는 일과 그것이 끝이 아니라 다시 집에 돌아와서 잠을 못 자고 바로 일해야 하는 것은 고문 아닌 고문일 때도 많았다. 하지만 역시 아이들에게 '힘들다'는 하소연보다는 작은 아이 등교를 못 챙겨주는 것에 미안함이 더 컸다. 그저 어른이라는 이유로..

큰아이가 스무 살이 되었고 네 살 터울의 작은 아이가 16살. 중학교 3학년을 맞았고 중요한 시기인 여고생이 되어갔지만 엄마인 나는 일에 지쳐서 작은아이는 거의 스스로 모든 것을 알아서 하는 여학생이 되었다.

큰 딸이 스무 살 성인을 처음 맞은 것과 내가 마흔세 살에 처음으로 장사를 시작하는 것은 나에게도 마찬가지로 '처음'인 일이었다. 지친 나 자신을 스스로 달래기도 하면서 보냈던 장사 초보시절에 생각났던 것이 30년 전쯤 읽었던 이외수의 소설 '칼'이었던 것이다.


photo by sugar  가게 앞 수변공원의 오후


손님이 나와 안 맞으면 그냥 물 흐르듯이 흐르도록 기다리면 되고 시비를 걸면 그냥 웃어버리자. 포커페이스를 지켜라. 등등. 하지만 진정한 프로는 그런 마음가짐도 가질 필요가 없이 저절로 아우라가 나올 것이다. 오히려 손님들이 나의 아우라에 리드당하게 되는 상상. 그 얼마나 멋진 일일까? 그런 꿈을 가지면서 손님들을 대해갔다. 별의별 사람이 다 있는 것은 이미 두 가지 직업을 가지면서 겪어왔던 일이다. 특히 물건을 팔아야 하는 장사는 손님과의 흥정이 필요하며 살까 말까 망설이는 고객의 마음을 사는 쪽으로 돌려야 하는 고도의 신경전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욕심이 앞서면 과장하게 되고 거짓말도 하게 되고 때론 손님에게 비굴해지기도 하는 것인데 내가 정말 싫은 것이 그것이었다. 옷가게 주인과 손님은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손님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라는 말은 아님을 잘 알 것이다. 기본적인 예의는 주인뿐 아니라 손님 역시 지켜야 하는 것이다. 손님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값을 치르고 사가면 되고, 주인은 손님들이 원하고 갖고 싶은 물건들을 구비해놓고 팔면 된다. 그런데 어째서 그토록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을 가지고 있었는지 지금은 그때의 그런 긴장은 없다. 아마 그때는 나도 두 아이 대학공부도 시켜야 하기에 잘하고 싶고 가게 준비하면서 투자한 돈도 있었기에 부담감이 컸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보다는 많이 젊기도 했던 시절이었고.. 욕심이 많을 때는 더욱더 힘든 것이 장사일 것 같다. 어쨌든 욕심을 버려야 내 것이 되는 것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대학을 다 마친 두 딸도 이미 직장인이 되어서 자신의 몫을 하며 살고 있다. 두 딸아이가 사회인이 되었지만 용케도 집에 와서 우리 부부에게 직장에서의 힘든 일이나 억울하거나 화나는 일을 말하지 않는다. 아마도 늘 바쁜 엄마에게 기댈 의지가 못 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최근에 큰 딸이 힘든 일이 있어서 우리에게 한 번 털어놓기는 했지만 어떻게 견디는지 또 묵묵히 말없이 다니고 있다. 벌써 4년 차는 되었나 보다. 작은딸은 며칠 전에 딱 한마디 문자가 왔다. '엄마. 나 정말 남 밑에서 일 못하겠어' 하지만 이렇게 또 한 번 지나가고 다져지면서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싶다. 정답은 늘 본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옛날에 내가 그랬듯이 우리 딸들도 소설 속 주인공의 배경과는 다르지만 마음속으로 신검을 갈듯이 자신을 지켜가며 야물어지고 단단해질 것이라고 믿어진다. 이 만큼 살아온 나도 여전히 힘들었는데 사회초년생들은 더 하겠지.

내 딸들도 마음속에 하나씩 검을 품고 살기를 바라며, 결코 남을 헤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신검임을 기억해두었으면 한다.


-달달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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