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몽골 갤러리 손님을 모시게 됐다. 갤러리 분께 어떤 공간을 좋아하시는지 여쭤보니 예쁜 카페를 좋아한다고 하셨다. 그 말에 광주에서 가장 감성적인 거리인 동명동이 바로 떠올랐다. 20-30대가 많이 찾고 골목 사이로 작은 플라워숍과 베이커리, 로스터리 카페들이 이어지는 곳. 오후 햇살이 부드럽게 골목길을 감싸고 있었고, 회사에서 잠시나마 여유로운 오후를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였다.
핫플레이스를 잘 아는 언니에게 추천을 부탁했더니 세 곳 정도를 알려주었고, 그중 ‘티소하(TISOHA)’가 눈에 띄었다. 네이버 소개에도 ‘수제 디저트와 함께하는 녹차의 진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손님께서도 “아까 커피를 마셔서 녹차가 더 좋겠다”고 하셔서 우리는 곧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티소하는 요즘 흔히 말하는 ‘감성 카페’ 같은 분위기였다. 유리문을 열자마자 한눈에 보이는 공간 말차 특유의 은은한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내부는 블랙과 우드톤이 차분하게 뒤섞여 있었고, 낮은 볼륨의 잔잔한 음악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통창 너머로 들어오는 자연광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커튼 틈 사이로 스며든 햇빛이 테이블 위에 부드러운 그림자를 드리웠고,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 식물들은 실내에 잔잔한 리듬을 더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보니 마음속에 얇게 깔려 있던 긴장감이 조금씩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테이블 간격이 넓어 원래도 조용한 공간이지만, 이날은 특히 더 프라이빗했다. 카페 전체가 마치 우리 둘만을 위해 열려 있는 작은 서재처럼 느껴졌다.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까지, 이 공간은 우리만 쓰는 방 같았다. 따뜻한 말차를 한 모금 마시자 쌉싸름하고 깔끔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치즈케이크를 포크로 떠먹는 순간 부드럽게 녹아내리며 달콤함이 천천히 스며들었다. 그 잠깐의 순간에도 마음이 느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곳은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잠시라도 ‘정화되는 느낌’을 주는 휴식처 같았다.
티소하는 특히 말차로 유명하다. 메뉴판에는 말차 라떼, 말차 아포가토, 불루 말차 에이드, 우지 말차 라떼 등 다양한 말차 메뉴가 가득했다. 우리가 주문한 바스크 치즈케이크(프랑스산 자연 치즈 100%, 밀가루 0%)는 복잡한 머릿속을 달콤하게 채워주는 맛이었다. 작은 다관과 함께 차려진 플레이팅은 조용하지만 정성스럽고,
‘대접받는 느낌’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주어 오늘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말차 한 잔을 들었을 때 묵직한 초록빛이 눈에 들어왔고, 첫 모금을 입에 머금자 담백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부드럽게 번졌다. 잠시 일본의 조용한 찻집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교토 우지산 프리미엄 말차라는 원산지 설명도 그 느낌을 더했다. 평일 오후, 디저트와 함께 이런 여유를 누리고 있으니 괜스레 삶이 잘 풀리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분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말차가 점점 줄어드는 걸 보면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 속도조차 더 천천히 흐르길 바랐다. KTX 시간이 정해져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점차 커졌다.
처음 만났지만, 고요한 공간 덕분인지 마음이 쉽게 열렸다. 따뜻한 말차향이 공기를 채우고 있었고, 그 향 안에서 나는 최근 회사에서 지친 마음과 미래에 대한 고민들을 자연스럽게 꺼내 놓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 사람과의 관계, 나 스스로의 방향성 같은 이야기들. 원래라면 쉽게 꺼내지 못할 이야기들이었지만 이 공간에서는 마치 조용한 서재에서 비밀 노트를 펼치는 것처럼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회사를 계속 다닐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자, 그분은 창밖을 바라보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지금보다 먼 시선으로 보셔야 해요. 10년 뒤의 내가 여기서 행복할까, 그걸 먼저 생각해야 하죠.” 그 말은 치즈케이크처럼 부드럽게 마음에 스며들었다. 그는 공공기관 연구원으로 일했지만 몇 년 뒤 자신의 성장이 멈춰 있다고 느껴 과감히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속에서 작은 확신이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현재만 보면 좋아 보일 수 있어요. 안정적이고 편하니까요. 그런데 미래에서 현재를 바라보면 답이 금방 보여요.”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지금까지 ‘현재’라는 좁은 관점 안에서만 고민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논문에 대한 고민도 털어놓았다. 논문은 어렵고, 해야 할 일도 많아 시작조차 부담스럽다고. 그러자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시간은 생각보다 많아요. 우리가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거지, 사실은 충분해요. 하나만 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꾸준히 하시면 돼요.”
“학사도 지금 하면 쉬워요. 이미 시야가 넓어져 있으니까요.” 그 말에 가슴 한쪽이 가볍게 풀리는 느낌이었다. 대화를 할수록, 나는 나 스스로를 너무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결핍 속에서만 판단해오던 나였지만, 이 조용한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음의 시야가 갑자기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티소하의 고요함과 말차 향, 그리고 여유로운 평일 오후의 빛이 우리의 대화를 더 깊고 부드럽게 만들었다.
티소하는 그런 곳이었다. 말 한마디 없이도 마음이 풀리고, 낯선 사람과도 미래를 이야기하게 되는 공간. 내 안의 소란이 천천히 가라앉고, 서로의 진심이 잔잔히 번지는 곳.
항상 부족함 속에서 나를 바라보던 나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결핍이 아닌 여유’에 시선을 두게 되었다. 마치 내 마음 한편에도 조용한 초록빛이 켜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