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름 Nov 16. 2021

안 한 걸까, 못 한 걸까


  아영은 노량진의 여성전용독서실에서 살며 힘겨운 재수 시절을 보냈다. 결국 서울의 한 사립대학에 입학한 아영은 비싼 등록금을 벌기 위해 4년 내내 동네 보습학원에서 일하며 치사하기 짝이 없는 대우를 받는다. 우수한 학부 성적과 900이 넘는 토익 점수가 있음에도 아영은 취업의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한다. 운전 면허증을 따고 사진을 다시 찍고 눈을 낮추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고, 마침내 서른 번째 낙방한 날 아영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혹시 나는 정말 괴물이 아닐까?’ 하지만 아영은 알고 있다. 자기소개서 모범답안은 잘 쓰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 자체가 잘 쓰여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력서에도 ‘콘텐츠’가 있어야 하고, 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름 아닌 돈이 필요하다는 것도.

     

  김애란 작가의 「베타별이 자오선을 지나갈 때, 내게」라는 소설의 내용이다. 아이들에게 이 소설을 소개하고 일부를 보여줬다.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비판한 사설, 불안한 고용 환경 속 치열한 경쟁 상황을 풍자한 SNL '인턴 전쟁‘편, 그리고 능력주의 신화의 어두운 면을 폭로한 명사의 강의 영상도 덧붙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주인공 아영이 겪고 있는 취업 경쟁은 공정한 것인가?” 물론 “공정하지 않다.”는 대답을 전제한 질문이었다. 아이들은 질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사실은 문법 단원 진도를 나가던 중이었다. 부정 표현에 대해서 학습할 차례였는데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의 차이를 단순히 문법 지식의 차원에서만 언급하고 넘어가기가 아쉬웠다. 내 의지와 선택으로 거부한 것인지, 내 상황이나 능력으로 인해 뜻대로 하기 힘든 것인지를 구분하는 일은 살면서 꽤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영’은 취업을 ‘안’ 한 것인가, ‘못’ 한 것인가. 능력주의와 경쟁사회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했다. 어차피 취업 전쟁은 아이들이 머잖아 살아낼 시간의 문제이기도 하니까.

  

  아이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현실에 대한 자각보다 더 큰 상처는 이런 부조리한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가 아닐까.”

  “주인공은 ‘혹시 나는 정말 괴물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진짜 괴물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인생이 설계된 사람들과 주인공은 출발선 자체가 달랐다. 그들은 이미 결승선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나는 이런 현상의 원인이 기득권층의 독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불공정 사회에 분노하고 그 원인까지 파고드는 아이들. 아이들은 기대 이상으로 진지했다.


  “이런 불공정한 경쟁 속에서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는 선생님은 어떤 기분이신가요?”

  더없이 날카로운 질문에 뜨끔하면서도 반가운 마음. 나도 그러고 싶지 않단다, 얘야.

 

  “주어진 대로의 나 자신과 현실을 빨리 인정하고 우선 내가 달라져야 한다. … 노력해도 안 된다는 말은 그저 게으른 자의 변명처럼 들린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살아야지 지금 이 사회 구조를 바꿀만한 힘도 없으면서 공정하지 않다고 징징대봐야 변하는 건 없다.”

  이런 글도 적잖게 있었다. 불안감과 피로감이 짙게 느껴졌다. 아무렴, 세상을 바꾸기보다는 세상에 맞춰 나를 바꾸는 게 훨씬 효율적으로 보일 테지. 아이는 나에게 묻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나는 고민했다.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냉소적이긴 해도 현실의 문제를 모르는 아이들은 아니었다. 문제를 공론화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일에 쏟을 에너지와 여유가 없을 뿐.

  “그래, 그냥 순응하는 게 빨라 보이기도 해. 나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그렇지?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대안이 뭔데?’하며 묻는 건 문제제기 자체를 봉쇄하는 일이 아닐까 싶어. 현실을 직시하고 대안을 고민해야 할 필요성에 공감하는 게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해. 대안을 찾고 실천하는 과정이 험난하다고 해서 시작조차 하지 않으면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누구도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아닌 게 돼버리니까. 

  취업에서 서른 번째 낙방한 아영에게 ‘다들 힘들단다.’ 라거나 ‘더 노력해.’ 라거나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냐?’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집안 소득과 개인의 성공이 비례한다는 건 수많은 지표들이 이미 말해주고 있어. 그렇다고 취업 실패에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 전혀 없다는 건 아니야. 다만, 성공의 요인이 100% 개인적 역량 때문은 아닌 것처럼, 실패 역시 마찬가지란 거지.”

  실제로는 훨씬 두서없었다. 적어도 소설 속 ‘아영’의 상황을 두고 ‘루저의 변명’이라고 비아냥거리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너 지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앞으로 저런 일 하며 산다.”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에게 엄마가 말했다. 무더운 여름날이었고 나는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이런 말을 실제로 듣다니. 아이 엄마의 손끝은 건너편 공사장의 인부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이가 엄마의 말을 여과 없이 받아들일 생각을 하니 순간 아찔했다.

  수업 말미에 아이들에게 이 일화를 들려줬다. 자신도 그런 말을 들어 봤다며 너도나도 말을 보탰다. 그냥 예사로 들었다고, 생각해 보니 무서운 말이네요, 한다. 아이들이 타인의 삶을 단편적인 시선으로 재단하지 않으면 좋겠다. 한 개인의 삶은 그가 처한 사회적 조건과의 관계 속에서 영위될 수밖에 없다는 걸, 선택의 범위는 보유한 자원의 한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기억하면 좋겠다. ‘못’ 한 것을 ‘안’ 한 것이라 속단하고 함부로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끝없는 경쟁 속에서 타인의 고통에 점점 무감각해져 가는 사회, 경쟁에서 낙오된 자들에게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낙인을 찍는 사회에 대해 아이들이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길 바랐다. 수업 기획 의도는 꽤나 거창하고 비장했는데 이게 얼마나 전달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수업은 자주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예상치 못한 아이들의 반응에 당황할 때도 많지만, ‘일단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교단에 선다. 개중에 한 아이라도 흔들어 볼 요량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