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돌별, <포도알만큼의 거짓>을 읽고
어느 날 오후, 한창 수업 중일 때 교실 맨 뒷자리에서 엎드려 자는 아이가 있었다. 공부에 흥미가 없고 성적도 바닥인 데다 평소 교사들을 대하는 태도도 바르지 않은 학생이었다. 아이의 굽은 등을 바라보며 찰나의 고민이 스쳤지만, 나는 그냥 시선을 돌렸다. 깨워서 수업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의무감보다는 굳이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피로감이 앞섰다.
또 어떤 날에는 책상 서랍에 무언가를 숨겨두고 몰래 보는 아이도 있었다. 40명이 넘는 대규모 선택과목 수업 시간, 맨 뒷자리 구석에 앉은 아이의 딴짓은 앞에서도 훤히 보였으나 나는 또 모르는 척을 택했다.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자리라는 사실은 나의 묵인을 합리화하는 빈약한 근거가 되었다. 때때로 그런 아이들을 방치한 채 아무 문제 없다는 듯 수업을 이어갈 때면, 나는 그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때우려는 직업인이 된다. 교실 문을 나서며 느끼는 일말의 부끄러움은 한때 훌륭한 스승이 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던 과거의 나를 낯설게 한다.
최근에 이돌별 작가의《포도알만큼의 거짓》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현직 초등교사인 작가가 쓴 이 소설은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교사가 겪는 권태와 그 안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택하는 작은 ‘거짓’들을 다룬다. 소설 속 ‘나’는 과학 전담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가벼운 농담이나 던지며 적당한 호감을 얻는 데 만족한다. ‘내게 학생이란 그저 40분 단위로 해치워야 할 주어진 업무에 불과하다.’거나 ‘나는 그저 준비해 온 것을 읊을 뿐이다. 학생의 귀에 들어가든 말든.’이라는 대목은 서늘할 정도로 솔직하다. 엎드려 자거나 몰래 딴짓하는 아이들에게 일일이 잔소리하는 것을 ‘귀찮은 일’이라 말하는 ‘나’의 모습은, 열정은 한풀 꺾어 둔 채 기계적으로 출근하는 나의 일상과 일정 부분 닮아 있었다.
‘나’가 ‘구시대의 유물’이자 유치한 외적 보상에 불과하다고 냉소했던 ‘포도알 스티커’는 가장 다루기 힘들었던 학생인 ‘오중혁’의 의외성을 발견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교사를 싫어하고 어른들에게 반감이 있고, 자신의 반항심을 보여 주고 싶어 안달 나 있는’ 오중혁이 포도알 스티커판의 마지막 빈칸을 채우고 싶어 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당혹감을 안겨 준다. ‘나’는 그날 일기에 쓸 내용을 생각한다. ‘사람의 외관이든, 반응이든, 자신을 꾸미는 방식이든, 무엇을 보든 상대를 정확히 아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고. 상대는커녕 나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조차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이 문장을 아주 오래 되뇌었다. 수업 중 아이들의 딴짓을 묵인하던 순간의 나와 그동안 내가 써왔던 글 속의 나 사이에는 얼마큼의 간극이 있나. 글 속의 나는 아이들의 작은 변화에도 기민하게 반응하고 살뜰한 애정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훌륭한 교사이지만, 현실의 나는 월요병에 시달리고 퇴근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며 아이들의 방황을 때때로 외면하기도 한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아이들 자체일까, 아니면 ‘아이들에게 좋은 교사로 비춰지는 나’의 이미지일까.
소설 속 ‘나’는 자신이 쓴 가사처럼 살지 못해 스스로가 위선적이라 고백했던 한 가수의 인터뷰를 떠올리며, ‘스스로가 주장하는 자신의 거울상에 한 치도 어긋나지 않게 살고 싶다니, 얼마나 순진한 환상인가.’라고 말한다.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을 가리고 포장할 어느 정도의 거짓이나 환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교사로 기억되길 바라는 내 욕망의 기저에는 실제의 나보다 훨씬 근사하게 다듬어진 자화상이 자리 잡고 있다. 다들 그렇게 현실의 남루함보다는 조금 더 나은 거울상을 이정표 삼아 각자의 교실과 일상을 버텨내고 있는 것일지도.
내가 만든 거울상이 현실의 나를 한참 미화한 것이라 해도, 그 흐릿하지만 아름다운 잔상을 닮아가려 애쓰는 마음이 결국 교사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지탱하는 동력이 아닐까 싶다. 만약 그 잔상조차 없었다면, 나는 내 행동에 대해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타성에 젖은 존재가 되었을 테니까. 이상과의 괴리에서 오는 부끄러움이 역설적으로 나를 교실에 붙들어두는 투박하지만 절실한 끈일지도 모르겠다.
불타는 사명감과 늘어진 권태, 그 경계에 지금의 내가 서 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교사가 이 경계에서 고단한 줄타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소설 속 고백처럼 나는 아이들의 속깊은 사정도 하물며 나 자신도 다 알지 못하기에, 그저 거울 속 근사한 자화상을 닮으려 애쓰며 다시 일상을 이어가는 수밖에 없다. 비록 훌륭한 교사상에서 한참 먼 내 모습에 문득 부끄러워질지라도, 다시 거울 앞에 서려는 시도가 나를 계속 교사로 살아가게 할 것이다. 냉소와 권태, 애정과 연민이 교차하는 이 미지근한 온도가 내겐 가장 적정온도일지도 모른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서성이는 나를 가만히 다독이며, 다시 교실 문 앞에 선다.
소설의 말미에서 ‘나’는 ‘자신이 그다지 좋은 교사라 생각하지 않지만, 어쩌면 나도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 담담한 희망을 빌려 나도 다음 번의 나를 기약해 본다. 엎드려 있던 아이에게, 무언가를 몰래 보던 아이에게 슬쩍 다가가 물어봐야지. 어제 잠을 못 잔 건지, 혹시 말 못 할 고민이라도 있는지 말이다. 물론 사정이 어떠하든 수업 시간은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약속임을 상기시키는 분명함도 잊지 않아야겠다. 단호한 원칙 속 다정한 말 한마디가 내가 지켜내고 싶은 나의 거울상이자, 아이에게 건네는 포도알만큼의 진실이 될 수 있으리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