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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깨비 Mar 05. 2018

'오빠'라고 부르지 마오.

알아서 부르게 내비둬

미디어에서는 ‘오빠’라는 호칭을 크게 두 가지 시선에서 다룬다. 하나는 ‘오빠’라는 호칭에 집착하는 아저씨들을 다룬다. 드라마에서는 “아저씨가 뭐니, 오빠라고 해.” 라는 대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무한도전>에서 장미여관과 노홍철이 부른 ‘오빠라고 불러다오’나 노라조의 ‘오빠 잘할 수 있어’ 등의 노래가 있기도 하다. 하나같이 나이 많은 아저씨의 한탄과 자기 분수를 모르는 상황을 비꼬는 풍자성이 있다. 그러나 이 호칭을 주도하는 이가 여자라면 멜로가 되기도 한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저 아저씨랑 결혼할 거에요.”나 제이레빗의 ‘아저씨’라는 노래가 그렇다. 이제 곧 방영되는 <나의 아저씨> 역시 이 연장선에 있을 듯하다.   


‘오빠’라는 호칭이 참 오묘한 게, 남녀 간의 상하관계를 규정하는 동시에 친밀감을 나타내준다. 장유유서의 질서가 명확한 우리나라에서, 오빠라는 말은 남자가 여자보다 나이가 많음을 의미하며 남자를 위에 위치시킨다. ‘아저씨’라는 호칭 역시 이 점에서는 같지만, 그 친밀도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아저씨’라는 표현에는 거리감 가득한 상하관계만이 있다. 우리는 종종 별 상관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불러야 하는 남자 사람을 두고 ‘아저씨’라고 말한다. 군대에서 같은 부대가 아닌 병사를 칭하는 말이 ‘아저씨’인 것과 같은 이치다. (지금은 ‘용사님’으로 바뀌었나?) 나이 차가 나는 남녀 사이의 호칭이 결국 ‘오빠’로 귀결되는 까닭이다.


  

 

‘오빠’가 이러한 친밀감, 나아가 애인을 의미하는 호칭까지 된 것은 20세기부터라고 한다. 18세기 문헌 <화음방언자의해>에 ‘올아바(오라바)’라는 표기로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오빠’는 남동생을 포함한 모든 남자 형제를 통칭하는 말이었다. 자유연애가 시작된 20세기, 여성이 친오빠의 친구와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성적 호감을 가진 남성을 암시하는 말로 그 의미가 넓어졌다. 이광수의 <무정>, 현진건의 <적도>, 이기영의 <옵바의 비밀편지> 같은 근대 소설을 보면 그 뉘앙스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오빠’가 가진 이 두 가지 의미, 상하관계와 친밀감을 생각하면 남자들이 왜 이토록 이 호칭에 집착하는지 이해된다. 내가 너보다 우위에 서면서 너랑 특별한 관계이고 싶다는 표현이다. 남자가 누나를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남자는 결코 친밀감의 표시로 누나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 그럼 뭐라고 하냐고? 바로 ‘너’다. 이를 잘 나타내주는 노래가 바로 이승기의 ‘내 여자라니까’다. “너라고 부를게. 뭐라고 하든지. 누난 내 여자니까” 라는 가사는 남자들이 호칭을 대하는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상하관계를 무너뜨리고 친밀감은 나타내면서, 어쩌면 자신이 그 위에 자리하고자 하는 욕망을 보이는 것이다.    


요새 ‘미투’ 운동을 보면, ‘오빠’가 가진 무서운 의미들이 다가온다. 지인에게 무수히 들어오며 언젠가 터질 거라 생각했던, 배우 조민기의 성폭력 사건이 대표적이다. “야, 교수님이 뭐냐? 그냥 다정하게 ‘오빠’라고 불러.” 등 그가 학생들에게 보낸 문자는 다분히 성희롱적 성격을 가진다. 미디어에서 ‘오빠’를 강요하는 남자들의 시선이 여성 몸에 천착하는 것은 성적인 뉘앙스를 포착하는 것이다. 주변 피해사례만 들어도, 성희롱의 시작은 ‘오빠’라는 호칭을 강요하면서 시작된다. 그 호칭을 들으면 마치 사적인 행동을 취해도 무방하다는 듯이 말이다.   


결국 핵심은 호칭을 부르는 사람에게 있다. 앞선 예시 중에 ‘오빠’라는 호칭에 집착하는 인물은 미디어에서 찌질하면서도 불쾌하게 표현된다. 상대방을 이용해 자신의 젊음을 확인받고 싶은 것이든, 호칭의 친밀감을 통한 사심을 내비치는 것이든, 어쨌든 상대방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려는 것이다. 상대방의 주체성을 앗아가는 행위다. 그렇기에 이것이 성희롱적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오빠’라는 호칭의 권한은 상대방에게 넘겨주자. 상대방이 호칭을 스스로 정할 때 비로소, 그것이 남성들이 강요하는 압박이 아니게 된다. 그것에 목매다는 순간 정말 아저씨인 셈이다. 멜로는 상대방이 스스로 원해서 ‘오빠’라고 부를 때임을 기억하며, 내가 공유나 이선균이 아님을 한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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