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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깨비 May 28. 2018

책 읽지 않기 운동

멍 때리기

책을 읽지 않기로 했다. 출판을 배우고 출판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할 얘기는 아니지만, 그렇게 마음먹었다. 책을 아예 읽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고, 거리두기를 하겠다는 다짐이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뭐 책을 깨나 읽는 사람인 거 같은데, 한 달에 한두 권 읽으면 많이 읽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건방을 떠는 이유는, 문득 책을 읽다가 생각하기를 멈춰버린 나를 봤기 때문이다.
   
나는 이동시간에 책을 읽곤 한다. 스마트폰으로 가십거리를 보기도 하는데, 그것보다 책이 생산적이라는 생각에 보통은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 새로운 정보도 알고, 생각하지 못했던 사유도 접하게 되는 건강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책은 웹상에 떠도는 이야기보다 훨씬 정제되고 편집이 잘 돼 있어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에 보다 적합하다. 구태여 가방 안에 책 한 권을 넣어 내 어깨를 혹사시키는 까닭이다.
   
그 책을 주섬주섬 빼냈다. 그리고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이동거리를 가만히,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당산에서 합정을 지날 때 펼쳐지는 한강과 국회의사당이 어우러진 풍경을 가만히 봤다. 국회의사당에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한강엔 괴물이 살고 있을까? 제각각 사연을 지니고 있을 분주한 사람들을 보기도 했다. 엄마 소매를 붙잡고 떼쓰는 저 아이는 무엇 때문에 저리 떼를 쓰는 것일까? 시답지 않은 생각을, 그렇게 한 시간 반 동안 했다.
   
책에서 주는 정제된 지식이나 머리를 퉁 치는 기발한 사고는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생각이 아닌 내 생각만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다. 가끔은 나를 돌아보고, 때로는 당신을 떠올리고, 그러다 내일은 뭐 먹을지부터 지구가 멸망했을 때 어떻게 할까까지, 상상을 해본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끊임없이 핑퐁 치는 순간들이다. 텍스트에 매몰돼 생각하기를 멈춰버린 나를 일깨우는 순간들이다. 책을 읽으며 다른 사람 생각이 곧 내 생각인냥 착각하기 보다는, 오롯이 나한테만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을 종종 갖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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