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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깨비 Nov 14. 2018

[why?] 왜 책 읽는 남자는 섹시할까?

문과섹시라는 문화현상


tvN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이 종영했다. 이 드라마는 월화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주인공 ‘원득(도경수 역)’이는 우리가 알던 전형적인 남자 주인공과 거리가 있는 데도 말이다. 장작도 못 패고, 지게도 못 짊어진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남자’로 불린다. 그의 매력은 다른 데서 드러난다. 책을 읽으며 박식한 모습과 감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부분이다. 특히 탐욕스런 양반을 시 구절로 비판하는 장면은 ‘문과섹시’라는 말을 낳으며 이슈를 만들기도 했다. 그동안 강제키스를 일삼고, 벽치기를 시연했던 소위 ‘강한 남성성’과는 분명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뇌섹남’을 넘어 ‘책 읽는 남성성’의 대두다.      


지적인 남성성의 출현은 꽤 오래됐다. ‘뇌섹남’이란 신조어를 퍼뜨린 tvN 예능 <문제적 남자>가 방영된 지도 벌써 4년째다. 이제는 단순히 똑똑한 것이 아니라 독서라는 정적이고 고상한 취미를 가진 남성의 모습이 미디어에서 전략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김수현 역), <키스 먼저 할까요?>의 손무한(감우성 역)이나 tvN 드라마 <도깨비>의 김신(공유 역) 등 많은 남자 주인공이 책을 읽는 장면으로 지적인 매력을 연출했다. 책은 적은 사람들만이 향유하는 대표적 ‘소수 미디어’인데, 그 희귀성이 갖는 섹시함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이제 곧 방영하는 tvN 드라마 <남자친구>는 주인공 박보검을 ‘문학 청년’이란 컨셉으로 마케팅한다. tvN 공식 트위터에 책 읽는 박보검 사진을 올리는 등, 박보검의 책 읽는 이미지를 적극 활용해 드라마의 분위기를 포장한다. 내년 방영 예정인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은 본격적으로 출판사를 배경으로 책 만드는 사람 이야기를 펼친다. 주인공 이종석 역시 ‘책 읽는 남성성’의 섹시한 모습을 한껏 보여줄 예정이다. 이런 트렌드에 따라, 소셜 미디어에서도 여기저기 독서 취미를 공유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북스타그램 또는 #책스타그램 등의 해시태그가 그 증거다. 고리타분했던 독서가 분위기 있는 동네 책방과 만나며 ‘힙한’ 취미로 각광받고 있다.    

 

이런 문화적 현상에는, 첫 번째로 앞서 잠깐 언급했던 ‘희소성’이 있겠다. ‘책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책은 소수만이 즐기는 ‘소수 미디어’로 규정돼 있다. 일단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소셜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짧은 글’ 읽기와는 구별된다. 책 속에 ‘긴 글’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만 한다. 또한 금전적 여유 역시 있어야 한다. 책 가격은 보통 만 원 내지 삼만 원 사이다. 크게 비싸지 않지만, 섣불리 투자하기엔 부담되는 금액이다.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겠으나, 이 역시 시간의 문제가 더해진다. 또한 책은 읽는 이의 취향과 교육 수준을 드러낸다. 나는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이야, 라는 포지셔닝을 세련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책을 읽는 다는 건, 어느 정도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있다는 것이며 세련된 취향과 독해력이 있다는 걸 은연중에 드러낸다.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바로 내가 할 수 있다는 일말의 우월감이 들어 있고, 이것이 곧 섹시하게 연출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이는 ‘뉴트로(Newtro)’ 현상의 파생으로 볼 수 있다. 옛것(Retro)에서 새로움(New)을 느낀다는 것이다. 오래된 식당을 말하는 ‘노포’ 투어가 뉴트로 현상의 대표적인 문화현상이다. 마찬가지로 책 역시 쏟아지는 디지털 콘텐츠 속에서 옛것으로 취급받아 왔다. 이 속에서 단편적인 디지털 콘텐츠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보다 전문적이고 깊이가 있는 긴 글에 대한 욕망이 생겨났다. 바로 책이다. 이 욕망은 독립서점, 그러니까 동네책방 열풍을 낳았다. 책 읽는 공간과 순간까지도 하나의 취미화 되고 있는 셈이다. 대형 서점의 지점들은 줄어드는 반면, 동네책방은 늘어나고 있는 까닭이다. 책 읽기는 ‘힙’한 공간과 함께 어울러져 ‘힙’한 취미가 되었다. 그리고 책 읽는 사람은 이런 ‘힙’한 취미를 즐기는 섹시한 사람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는 우리 남성성의 변천사에서 하나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왜 미디어에서 책 읽기라는 취미가 유독 남자에게 부여되어 이미지화되는지 설명해준다. 사회학자 최태섭은 『한국,남자』라는 책에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남성성인 ‘강한남자’는 지극히 근대적 산물이라고 말한다. 조선시대 지배층에서 이상적인 남성성은 ‘입신양명’하는 남자였다. 그러기 위해선 책만 읽어야 했다. “그리하여 가정사를 돌보지 않는 것이 양반 사대부의 미덕”이기까지 했다. 일본강점기 때에 와서도 강한남자보다는 오히려 병약한 문인들의 모습이 이상화될 정도로 지식인 면모가 강한 남성성이 인기가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사로서의 남성성’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40년, 조선이 병참기지화 되면서 그 남성성이 바뀌었다. 군인다운 강한 남성성이 필요해졌다. 해방 이후 그 흐름은 더 강력해졌다. 무너진 조선을 대한민국으로 건국하기 위해서는 집약적 노동력과 군사력 증강이 필수였는데, 이를 위해서 ‘전사로서의 남성성’을 강조하며 남자를 중심으로 가정부터 통제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생겨난 것이 호주제와 병역법이었다. 건국 사업을 위해 남자는 더욱 강한 마초적 남성성을 띄게 됐고, 여자는 이등시민으로 남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지게 된다. 군사정권기에 산업화를 겪으며 이는 더욱 심해졌다.     


IMF를 겪으면서 가부장적인 전사로서의 남성성은 무너진다. 더 이상 남자가 ‘생계 부양자’로서 가장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됐다. 이때 억눌려 있던 여성들이 사회에 나왔다. 남자와 동등한 교육을 받고 동등한 업무를 하며,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시작했다. 2005년, 그렇게 호주제는 폐지됐다. 위기를 느낀 남자들은 ‘불쌍한 남자’ 프레임으로 대항했다. 영화 <국제시장>은 그 연장선에서 만들어진, 남성성 찾기 운동의 일환이었다. 최태섭은 이러한 사회사에 따라 여혐과 남혐 갈등이 빗발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과정 속에서 근대적인 전사로서의 남성성은 파기됐다. ‘꽃을 든 남자’라는 화장품이 나오고, 꾸미는 남자인 ‘그루밍족’이 유행하면서 더 이상 가부장적이고 마초적인 남자는 이 사회가 바라는 남성성이 아니게 됐다. 더 이상 그것이 생계부양자로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었으며, 이성에게 사랑받는 조건도 아니었다. 오히려 지적이고 감수성 넘치는 모습이 경제활동에 도움이 될뿐더러, 이성에게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왔다. 이를 드러내는 행위가 바로 책을 읽는 모습인 ‘독서’였다. 이제 이상적인 남성성은 나쁜남자와 같은 마초적 이미지라기보다, 섬세하고 지적인 책을 읽는 남자가 됐다.     


미디어 산업은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특히 대중문화의 소비를 이끄는 여성의 취향을 가장 많이 고려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변화된 이상적인 남성성인 ‘책 읽는 남자’의 모습이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는 것이다. 건국 사업이나 산업화에 필요한 강한 육체를 가진 남성보다는 서로의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해 나갈 지적이고 정서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남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를 잘 표현해주는 도구가 희소한 가치를 지니고 새롭게 ‘힙’한 물건으로 떠오른 ‘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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