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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깨비 Nov 21. 2018

[Why?] 왜 이수역 사건 글에 30만 명이나 몰렸나

징벌 사회에 중독된 우리


이수역 폭행 사건을 규탄하는 청원 글에 30만 명이 몰렸다. 드러난 실체는 없었지만, 일방적인 주장과 표면적인 사실만으로 이른바 ‘정의로운 사도’들이 30만이나 탄생했다. 단편적인 사실들이 거대한 진실을 가린다는 금언은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 길이 더 아득한 것은, 이제는 가짜뉴스가 사실인냥 행세하기 때문이다. 이수역 사건은 그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사실과 근거를 확인하지 않은 군중은 우르르 몰려 자신만의 옳음과 정의로 비난을 일삼았다. 그것은 또 다른 폭력이었다. 우리는 이미 어느 맘카페의 만행을 목도한 바 있으나, 거기서 배운 교훈은 없었다. 이수역 사건은 남혐과 여혐의 프레임을 떠나, 징벌 사회에 중독된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인 것이다.    


이는 우리가 sbs 예능 <백종원의 골목식당>(이하 골목식당)을 즐기는 방식이기도 하다. <골목식당>은 징벌 서사를 끌어들여 갈등 구조와 재미를 만들어낸다. 기본이 안 된 자영업자에게 백종원이라는 권위로, 컨설팅이 아닌 훈육을 강행한다. 이는 아버지가 자식을 혼내는 가부장적 모습과 겹쳐 보인다. 이따금씩 등장하는 조보아의 표정은 여기에 긴장감을 더해준다. 여성출연자가 소비되는 방식이다. <골목식당>은 출연자의 고집과 미숙함처럼 비호감인 부분을 강조하며, 시청자들이 기꺼이 백종원의 입장에 서서 징벌 서사의 쾌감을 즐기길 권한다. 이른바 메시아 콤플렉스를 자극해 인기몰이를 하는 셈이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구세주가 될 운명이라 믿고, 타인을 가르치고 구제하려 드는 욕망이 있다. 이것이 징벌 서사가 작동되는 메커니즘이며, 맘카페와 이수역 사건과 같은 불상사가 벌어지는 이유이다.   


웹툰 <비질란테>는 이를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서사다. 법망을 벗어난 가해자를 개인이 직접 벌을 준다는 내용이다. 그를 ‘비질란테’라 부른다. 군중은 그가 벌이는 피의 복수, 심지어 살인까지도 옹호하며 열광한다. 군중은 파렴치한 범죄자는 응당 벌을 받아야 한다는, ‘정의감’에 사로잡힌다. 이는 곧 독선과 편협함을 낳을 수 있지만, 이를 경계하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독자들은 이 웹툰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보기 때문에 도덕적 딜레마에 빠질 일이 없겠지만, 정작 웹툰 속 군중은 언론과 소문으로만 사건을 판단하기에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단편적인 사실이 거대한 진실인 줄 알며 기꺼이 징벌로써의 처형을 외쳐댄다. 이것이 현실로 오게 되면, 이수역의 그것과 같은 사건을 낳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차별하기 위해 태어났다』에 따르면, 우리는 타인에게 ‘제재(생크션)’를 가하는 행동, 그러니까 징벌을 주는 행위에서 쾌감을 느낀다. 규칙을 어긴 자에게 ‘정의’를 기반으로 벌을 줄 때, 정의 달성 욕구와 집단에 대한 소속 욕구가 채워지면서 도파민이 발생한다. 이는 생식 욕구를 만족시켰을 때보다, 고차원의 쾌감을 선사한다. 익명성과 몰개성화된 인터넷은 이 쾌감을 불러올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징벌 사회가 된 까닭이다. 그렇게 우리는 ‘소셜 저스티스 워리어(SJW)’가 되어, 자신의 정의를 외치면서 오히려 그 편견에 갇혀버리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타인을 징벌하면서 나의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메시아 콤플렉스의 욕망이, 또 다른 폭력과 학살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있게 고민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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