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갈피로 남기는 말, 삶의 갈피로 살아갈 말

이시노리,『고마워요』

by 다인

어떤 말을 한다는 것이 “생각하기의 표현인 것만이 아니라 생각하기의 실현*”이라면, 어떤 생각을 한다는 것은 마음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의 움직임을 실현하는 것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떤 말을 한다는 것은 마음이 가고자 하는 곳에 선착하는 행위이자 마음이 바라는 움직임을 실현하는 행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인생이란 그래프 위를 걷다 갑작스레 변곡점 위에 서게 될 때. 이내 발밑 아래로 뚝 떨어지고야 말 때. 나의 말은 어떤 생각만을 표현하게 되나. 나의 생각은 어떤 마음만을 실현하려 하나. 그렇게 나의 말은 어떤 마음 안으로만 꺾여 고이게 되나. 나는 어떤 나로만 살아가게 되나.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어떤 나로만 살아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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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우리 집. 고마워요, 시계. 고마워요, 편지. 고마워요, 자전거. 고마워요, ㅇㅇ.


단 두 마디의 문장으로만 전개되는 『고마워요』의 책등을 우연히 도서관의 신간 서가에서 발견했을 때, 나의 어두운 마음은 이렇게 실현되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고마운 것과 고마운 일만을 믿고 사는 이의 선명한 간증이겠지. 아니면 지나친 낙관으로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지나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이의 화사한 환상이거나.


그 무엇도 아니었다.


당연과 평범의 영역에 있기에 일부러 다정한 눈길을 두기 어색한 장면과

(그렇기에) 고맙다고 말하는 문장 사이에는,


도무지 고마울 것도 고마울 일도 없어 보이는 장면과

(그럼에도) 고맙다고 외치는 문장 사이에는,


사건과 계절을 통과하며 하나씩 모은 조각들에게 ’보물‘이란 이름을 붙이는 이야기가 있었다. 인생이란 경로 위에서 걷고 뛰고 멈추고 오르고 내리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많은 조각을 흘리고 놓치고 잃었다 해도, 지금의 내게 남은 조각들이 특정한 쓰임과 무늬를 지니고 있지 않다 해도 괜찮은 이야기가 있었다. 닫혀 있는(줄도 몰랐을) 문이 열리고 막혀 있는(줄도 몰랐을) 굴뚝에서 연기가 나게 되는 이야기가 있었다. 철저한 준비와 빗나가는 예상 모두가 나로 수렴하고 발산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고마워요’라는 말이 삶을 삶 쪽으로 이끄는 이야기가 있었다.


나의 이야기이자 너의 이야기, 모두의 이야기이자 각자의 이야기인 삶이 있었다.


심상한 네 글자의 말이 실현해 낼 마음을 몹시 간구하고 있는 지금의 내게 다다른 책, 『고마워요』. 지나친 낙관의 말이 아닌, 어디로든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마음의 방향과 운동을 한두 발짝 앞서 지지하는 말, ‘고마워요’. 도서관에서 빌려본 다음 날 곧바로 새 책을 구입한 것은 지금의 우리를 ‘어떤 우리’로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떤 마음의 표현이자 실현이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지금의 갈피로 남기고 싶은 말. 삶의 갈피로 살아가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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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터 벤야민




(2025년 3월. 아이의 병명을 진단받은 3월의 어느 날. 그 후로 며칠의 시간이 지나 썼던 글. 그때서야 쓸 수 있게 된 글. 한 달 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이곳에도 시차를 두고서 올린다.)


- 이시노리, 『고마워요』, 초록귤 출판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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