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눈물도 붉은색

시간의 유빙(流氷)

by 블루밍드림

형광등 냄새. 위병소 창문 안쪽 높이 매달린 백색 불빛이 서슬 퍼렇던 낮과 지쳐 쓰러진 밤을 선명하게 구분 지었다. 내 눈꼬리는 이따금 45도 각도로 기울어지며 '일본어 교본' 속을 유영하였다. 그럴 때면 내 머리 위로 고독의 냄새가 뚝뚝 떨어져 책장 위로 흩어졌다.


春になると, 桜が咲きます。(봄이 되면 벚꽃이 피어납니다.)

책의 첫 장은 봄날이었고, 책 속에서 벚꽃은 지천으로 피어났다.


이병, 일병,.. 계급장 작대기가 늘어갈수록 갑갑함도 커져갔다. 그런 때에는 사카모토 큐의 히트곡 '上を向いて歩こう'(위를 보며 걷자) 마지막 가사 '涙がこぼれないように, 泣きながら歩く 一人ぽっちの夜'(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울면서 걷는 나 혼자의 밤)을 나지막이 따라 부르기도 했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이즈의 무희'(伊豆の踊子)의 어떤 대목을 일본어로만 읽고 싶어 하기도 했다.


"나는 스무 살이었다."가 그랬고, "아뇨, 방금 한 사람과 헤어진 참입니다."가 그랬으며, "나는 눈물이 나오는 대로 내버려 두고 있었다."도 그랬다.


도망칠 데가 고루한 그곳뿐이었을까. 초점 없이 탐닉하던 히라가나 벚꽃 잎은 형광등보다 무거웠고, 무심코 내다본 어둠은 허기진 방황이었다. 그게 바로 내 청춘의 페이지들이었다.

복학, 졸업, 취업..


사카모토 큐도 야스나리도 점점 멀어져 갔다. 소설 속 앳된 무희 '카오루(薫)'처럼 가슴 아픈 헤어짐을 향해 손이라도 흔들어 줄 이가 내겐 없었다. 내 청춘의 페이지와 나는 기약 없이 헤어지고 있었다.


可愛い踊子 うち振る指に, こぼす涙も紅の色
귀여운 무희 흔들리는 손가락에, 흐르는 눈물도 붉은색




풋내를 풍기며 회사를 오갔다. 그러다 보면 봄이 오고 벚꽃이 피어났다. 어느 해 봄, 기어이 하카타행 페리선에 몸을 실었다. 오륙도를 끼고돌아 부산항을 떠날 때, 배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결심이 선 것처럼 보였다.


배는 대한해협의 끝자락에서 긴 밤을 지새웠다. 멀리 하카타 항 불빛이 아스라한 그 밤, 야스나리 소설은 첫 문장부터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꼬불꼬불한 산길로 접어들면서 마침내 아마기 고개에 다가왔구나 싶었을 무렵,
삼나무 밀림을 하얗게 물들이며 매서운 속도로 빗발이 산기슭으로부터 나를 뒤쫓아왔다.


고전(古典) 풍경. 그 프레임에 맞춘 '나의 첫 일본 기행'. 나는 빠르게 스무 살 야스나리를 닮아가고 있었다.


영화 '이즈의 무희' 중에서


구마모토를 지나고, 아마기 고개에 오르는 모양새로 산길을 올라, 아소산 분화구 가장자리에 멈춰 섰다.



구로카와 온천 'いご坂地獄'(이고자카지옥) / 아소산 분화구


유황 냄새가 숨을 깊이 찔렀다. 화산 연기가 필적 못할 두께로 내 앞을 막아섰다. 한참을 서서 '화산이 펑 터지면 어떻게 될까'를 고민하였다.


그날 저녁, 아소산 자락 구로카와 온천에는 물냄새가 진동하였다. 가이세키 밥상을 물리고, 콸콸~ 냇소리를 따라 여관을 나섰다.


유카타 자락을 스치는 소리는 떠나온 곳과 가야 할 곳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내 영혼의 바스락 거림이었다. "어딜 가세요?" 야경꾼들이, 화산의 연기처럼, 길을 막아섰다.


가라오케 주점이 가까운지, 어디선가 엔카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좇아 田の原川(타노하루가와) 강가에 다가섰다. 물냄새가 짙어져 갔다. 나는 그곳에서 아직 오지 않은 나를 한참 동안 기다리고 서 있었다.

.

.

.

날이 밝자 여관의 늙은 안주인은 문 밖까지 나서서 나를 배웅해 주었다. 앳된 무희가 아니라도 내게 손 흔들어 주는 이가 있으니, 겉으로 흘렀다면, 내 눈물도 붉은색이 아니었을까.


영화 '이즈의 무희' 중에서


젊은 날을 조용히 남기고 떠난대도

유황 냄새는 바람에 날리고

온천수 냄새는 짙을 터였다.

무희의 춤사위는 또

풀냄새(薫)를 풍기며

나풀나풀거릴 터였다.





세월은 삐쩍 말랐던 내 몸에 살이 오르게 했고, 그 세월은 어쩌다 나를 베수비오 화산 그늘 아래 폼페이에 데려다 놓았다.


아소의 유황 냄새는 숨을 깊이 찌르더니, 폼페이의 공기는 바짝 마른 올리브 나무 같았고, 햇살은 유적의 먼지 위로 형광등 보다도 무심하게 떨어졌다.



베수비오의 붉은 마그마는 차갑게 식었고, 나의 고독은 화산재를 뒤집어쓴 채 굳어버린 사자(死者)의 전시처럼 오래전에 화석이 되었다.


나에게는 ‘과거완료형’ 폼페이 풍경이 아이들에게는 '미래형' 서사의 첫 문장으로 치환된 듯하였다.


베수비오 화산과 폼페이 유적


아이들의 시간 속을 따라 걸었다. '아소 화산이 펑 터지면 어떻게 될까.' 젊은 방황의 치기 어린 저주가 떠올라 실없이 웃었다.


"젊을 때 한 번은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어."


'이즈의 무희' 한 장면이 뇌리를 스쳤다. 화산재도 아니면서 세월이 쌓여 굳어갔다.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안도의 고백이었다. 화산은 터지지 않았고, 삶도 대체로 그랬다. 지나간 열풍이 이따금 기억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가이드의 설명은 외면한 채, 막대기를 주워 들고 땅파기에 여념이 없는 작은아이를 보았다.


내가 유황 연기 속에 보았던 게 사라져 갈 청춘에 대한 애착이었다면, 아이가 파헤치는 화산의 유물 속엔 ‘피어날 것들’에 대한 기대가 묻혀 있을 것만 같았다.


흐르는 눈물을 내버려 두었다. 머리가 온통 맑은 물로 변했고, 물이 주르르 흐른 뒤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 듯 달콤한 쾌감이었다.


나에게

아소산과 구로카와는

야스나리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었고,

아이들에게

베수비오와 폼페이는

이제 막 시작되는 이야기였다.




작은아이는 '나루토' 만화를 보고 또 보더니, 이젠 일본어를 곧잘 한다. (아빠는 문어체로, 아이는 구어체로 말한다.) 아빠는 '이즈의 무희'를 원어로 읽고 싶어 하였고, 아이는 '君の膵臓をたべたい'(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원어로 읽으려 한다.


그 아이가 난데없이 아빠랑 같이 일본어 능력시험을 보러 가고 싶단다. 나는 답을 하지 못한다.


"이번에는 오사카 도톤보리에서 한쪽 다리 들고 사진 찍는 거 뭐 그런 것 말고, 일본 안쪽 깊숙이 한번 들어가 볼까?"


벚꽃이 피어나면, '히다후루카와'나 '오하라마치' 같은 데를 가볼까 한다. 아이는 아빠의 옛이야기를 전설처럼 들을 테고 - 나는 과거로 아이는 미래로 - 서로 엇갈리다가도 어느 아름다운 길에 이르러 우리의 발자국을 나란히 겹쳐두려 한다.


그랬더니, 우리 옆에서 누구는 "지진 나면 어떡하려고", "후지산이 폭발하면 어쩌려고." 벌써부터 걱정이 댓 발이다.



*표지: 야마구치 모모에, 미우라 토모카즈 주연의 영화 '이즈의 무희' 한 장면

이전 10화트로카데로 정원의 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