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카데로 정원의 새들

by 블루밍드림

런던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을 미끄러져 나간 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온통 검은 도버해협의 파도를 타고 출렁거렸다. 별을 헤려 해도, 쏴아~ 바닷물에 밤이 씻기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버스는 다시, TBM 터널굴착기라도 된 듯이, 깊고 깊은 유럽 대륙의 밤에 커다란 구멍을 뚫으며 끝없는 시간 속을 달려 나갔다.


등받이를 과도하게 눕히지 말아 달라는 부탁에도 들은 척도 않는 재수 없는 앞자리 커플을 저주하다가 제풀에 지쳐나갔다. 뜬눈으로 밤과 싸우는 내 곁의 그녀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엄마를 잃고, 세상을 잃고, 결혼을 하고 - 지난 일 년 인생 역정(歷程)이, 낯선 밤 한가운데서, 얽히고설켜버렸다. 숨이 턱 막혀왔다. 축축한 반지하 B&B 숙소에서 생각 없이 곯아떨어졌던 지난밤이 차라리 나았으리라.


파리로 향하는 밤 - 그 긴 밤은 심드렁하여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관절 마디마디가 아플 즈음에야 멀리 파리의 기척을 보았다. 런던을 떠나온 지 장장 9시간 만이었다. 파리 베르시 세느 버스터미널은, 여름이 시작되는 날인데도, 무척 축축하였다. 그래도, 파리는 파리여야만 했다. 내 가슴 간질간질 설레어야만 했다.




세상 밖으로 튕겨져 나온 몰골을 하고선 파리를 누볐다. 개선문 → 샹젤리제 → 콩코르드 → 오르세 → 루브르 → 퐁뇌프 → 노트르담.. 천천히 그러나 아주 분명하게, 나와 그녀는 파리의 풍경이 되었다. 우리 가슴에다 그 풍경을 그렸다. 태양이 빛나지 않으니 - 우리가 반짝였다.


추리한 옷차림 위로 오후가 지쳐 내려앉을 때, 마. 침. 내. 트로카데로 정원에 도착하였다. 저 멀리 우중충한 하늘 위로 뭉툭한 바늘처럼 솟은 철골 뭉탱이의 실루엣을 보았다. 가까이 더 가까이 - 다가섰다.


바닷물에 씻긴 석양빛 문 앞에는
횃불을 든 위엄의 여인이 서 있으리라


그 순간, 광시증처럼, 긴 항해 끝에 마. 침. 내. 뉴욕 항 자유의 여신상을 마주한 그 옛날 아일랜드 이민자 청년을 떠올렸다.


"안개를 뚫고 청동 여인의 경외로운 실루엣을 보았을 때, 숨이 멎고 말았다. 누구는 갑판에 무릎을 꿇어 기도를 하고, 누구는 소리 내어 울었다. 내 주머니엔 동전 몇 닢.. 어찌 두렵지 않겠냐만, 여인이 든 횃불이 내 자유를 비출거라 믿었다."


누구는 흉물이라지만,

내 앞의 그것은 - 철골로 짠 거대한 고백이었다.

이유도 모른 채,

나는 차마 발을 떼지 못하는 순례자였다.


멀어지다 돌아보고,

다시 다가서고,

멀어지다 또 돌아보고,


오후가 지쳐 석양빛 문 앞에 섰을 때,

에펠탑은 - 횃불처럼 - 환하게 불을 밝혔다.


손으로 밀어보고, 발로 밟아보고,

B컷 사진들 속에는

우리 청춘의 애달픈 '자유'가 박제되었다.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 점점 더 촘촘히 비가 내렸다. 트로카데로 전망대의 아프리카 청년들은 공쳤다는 자책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열쇠고리며, 금빛 에펠탑 모형이며, 널브러져 있던 조잡한 기념품들을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도시의 소음이 낮게 깔리자, 우리와 에펠탑, 그 허무한 사이(間)를 새들이 낮게 날았다. 그 하찮은 새들은 날마다 - 에펠탑 주위를 날며 트로카데로 정원을 지배하였다.


우리는 마. 침. 내. 에펠탑을 떠나고 있었다.


훨훨 날아오르지 못한 청춘의 미련들이, 우리 등 뒤로, 비에 젖어 죽어가고 있었다.


그때, 비둘기 두 마리 후루루 날아 우리 곁에 내려앉았다.


고백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나의 시간이었을까, 우리의 시간이었을까, 아니면 그 순간을 함께 견디던 그 사람이었을까.




그로부터 여러 해가 흘렀다. 다시 찾는 파리 - 트로카데로 정원의 새들을 다시 만나고, 그 너머 에펠탑을 다시 바라본대도, 그날의 감정들이 과연 되살아나긴 할까.



소매치기를 물리치고,

새치기를 야단치며,

에펠탑 높은 곳에 올라

마. 침. 내.

둘이 아닌 넷이서

같은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젊었던 날 멋모르고 나섰던 배낭여행길에 둘이서 밀고 밟고 올려다보던 그 모든 순간이 철골 사이사이마다 이끼처럼 끼어있었다.


한때

아무 이유 없이

무언가를 사랑할 수 있었던

우리의 시간


주머니 사정을 살피던 고단함이 사라지고, 촌스러운 사진 포즈가 사라지고, 파리의 지평선을 굽어보는 든든한 시선들이 그 자리에 남았다.


에펠탑에서 내려다보는 트로카데로 정원


에펠탑에서 - 트로카데로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오래전 설렘이 그날의 미련스러운 비처럼 작은 새들을 씻어 내리고, 그 하찮은 새들은 우리를 비웃으며 총총 걷기도 하고 우리 주위를 빙빙 돌기도 하였다.






요즘 트로카데로의 명물은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며 한국인 관광객의 사진을 찍어주고 열쇠고리를 파는 인싸 세네갈 청년 파코(Paco)씨인가 보다.


그 옛날 오락가락 빗줄기에 말없이 노점을 거둬들이던 아프리카 청년을 떠올리면, 변한 게 어디 나뿐일까만 싶다.



*에펠의 철골은 뉴욕 항을 바라보는 자유의 여신상 몸속에도 서 있다. 어느 날, 뉴욕 바다 위, 나를 닮은 두 살배기 아이가 자유의 여신상을 보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박수를 쳤다. 어느 옛날 에펠탑을 사모하던 청년의 순수함이 '자유' 위로, '여신상' 위로 겹쳐 흘렀다. 지켜야 할 존재가 늘어난 이의 숭고한 책임이 '자유'라는 이름 위에 덧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