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쁜 고백

by 블루밍드림

이건 틀림없이 내가 고딩일 때 벌인 일일 것이다.


시침, 분침, 그리고 초침까지, 마치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것처럼 한데 포개져, '12' 숫자 아래 똑바로 섰다. 1월 1일 0시 정각. 그런 순간이면 뻐꾸기가 울어야 했지만, 우리 집 새는 우는 법을 몰랐다.


짧은 욕을 날리고 마당으로 내려와, 보온재를 칭칭 두른 채 물을 쫄쫄 흘리던 수도의 꼭지를 비틀었다.

얼음꽃 둥둥 뜬 물을 머리에 들이부었다.

나를 리셋(Reset)하려 비누를 박박 문질렀다.

앙다문 입은 사시나뭇잎 떨듯 하였다.


해가 바뀌거나 말거나 밤은 다를 게 없었고, 머리가 두쪽으로 갈라지는 고통에 바락 대들며, 내 처지가 천지개벽하듯 나아지기를 바라는 천박한 속내로 새해의 치성(致誠)을 드렸다.


- 문제지 하나 사러 일부러 헌책방을 찾으며, '내가 좀 애처로워 보일까?' 혼자 공연히 좌절하고, '언젠가 꼭 네팔에 가서 히말라야 높은 산을 오르고 말 거야.' 그런 꿈을 꾸던 시절이었다.


내 기억에 새해맞이 그 기이한 의식은 그 후로도 여러 해 더 이어졌다.


언젠가 습작처럼 적었던 시 열댓 편을 복사해서 스테이플러로 옆구리를 집은 뒤, 친구들에게 오백 원씩 받고 팔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한 친구가 유독 그 일에 대해 적은 시를 붙들고는 "이거 진짜 네가 적은 거 맞아?"라고 되물었었다.


'그때의 내 좌절은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 수수께끼는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삶의 좌절은 아주 뜻밖의 순간에 찾아온다.


오막조막한 좌절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유럽 배낭여행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스위스 알프스라고 해서, 우리는 산악열차에 몸을 실어 융프라우요흐 높은 곳에 올라섰다. 구름 위는 은빛으로 빛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세상은 높은 곳에서 더욱 아름답다는 것도 배웠다.


하지만, 알프스 눈밭을 몇 걸음 걸었을 뿐인데, 람보르기니 머플러를 코앞에 댄 채 매연을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는 듯한 꺼림칙함이 덮쳐왔다. 해발 3,400미터는 내겐 너무 숨 가쁜 높이였다.


한걸음 옮기기조차 힘들어, 알프스 눈밭 위에 점점 아래로 주저앉았다.




천사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건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서라는데,

내 발등에 묶인 이름 없는 무게들은 내 마음에서 온 것인지,

왜 이리도 나를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것인지.


만년설이 빛나는 융프라우,

그 서늘한 고도에서 내 폐부는 차오르지 못했고,

짧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다 나는 끝내 멈추었다.


칠십 킬로도 못 되는 내 몸이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일지도 몰랐다.


겨우 이 높이에서도 이렇게 숨이 찬데,

내가 꿈꾸던 '더 높은 곳'은 얼마큼 더 가쁜 숨을 요구할까.


눈꽃 핀 봉우리들이 등 뒤에서 반짝였지만,

나의 시간은 제자리에 박힌 돌처럼 한없이 무거웠다.


아직 더 올라가고 싶은 거친 소리에 계속 저항하는 게 맞을까, 그만 체념하는 게 좋을까 - 방황하는 아내의 눈빛을 올려다보았다. 그만 돌아가고픈 눈빛이 담겨있었다.


머리가 둘로 쪼깨 지는 듯한 좌절이 밀려왔다. 얼음꽃 둥둥 뜬 물을 머리에 퍼붓던 1월 1일 0시로 돌아가, 사시나뭇잎처럼 몸을 떨었다.




높이가 두려운 것은 그만큼 너무 높이 꿈꿨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높이 오르지 못하는 좌절을 겪었어도, 에베레스트가 바라보이는 셰르파 마을 '팡보체'까지라도 아이들과 함께 올라보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융프라우 보다 더 높은 곳에 오르면 나 자신과 세상을 다른 각도로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융프라우에서 너무도 잘 노는 작은아이


'이제는 괜찮지 않을까.'


그 기대를 품고 아이들과 함께 융프라우에 올랐다. 좌절이 대물림되지는 않는다는 걸 확인했지만, 결국 이렇게 말하였다.


"얘들아, 히말라야는 너희들끼리 가야겠다."


성공이란 높이 오르는 것이라는데, 나는 내 심장이 너무 힘들어하는 그 높이에서 또다시 주저앉았다.


융프라우의 숨 가쁨은, 어쩌면, 높은 곳을 향한 갈망과 그만큼 따라주지 않는 현실 사이의 진공(真空) 때문인지도 몰랐다. 더 높이 비상하지 못하는 영혼이 느끼는 애처로운 갈증일지도 몰랐다.




좌절은 잃음에 관한 이야기이자 동시에 얻음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좌절 후에 오는 것들 - 상실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 또한 내 삶의 궤적이었다.


가볍게 날지 못해도 넘어지지 않았고,

정상에 서지 못해도 길을 버리지 않았다.

가쁜 숨으로 끝내 서성였던 그곳이 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정상이었고,

남겨진 발자국에 고였던 거친 숨소리는,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할 만큼,

살고 싶다는 간절한 증거였다.


"에베레스트 오르는 사람들 다 약 먹지 않아?"

"높이를 견디지 못한다는 건 그 산을 오르지 못한다는 거야. 그냥 돌아서야 해."


일반적인 한계는 내겐 흥미롭지 않아. 내 한계야. 나는 인생에서 여러 번 실패했고, 그걸 받아들였어. 그리고 뒤로 한 발 물러서게 되었지.

나는 내 무게로 여기까지 왔고, 그것만으로도 내 삶은 계속되고 있었다.




더 높이 오르려면, 더 가벼워야 한다.


"새해 복 많이 받아." 글을 쓰다 말고 아내에게 인사를 건넸다.


"올해는 좀 겸손해져. 그게 잘 되는 길이야."


그녀의 덕담에 타자를 멈추고 한참을 멍하니 앉았다. 겸손이란 단지 고개를 숙이는 예절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내 영혼이 가닿고 싶은 '이상적 고도'와 내 폐부가 견뎌낼 수 있는 '현실적 고도' 사이의 차이를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 숨 가쁘지 않은 내 높이는 어디까지일까 - 몇 해 전, 칠레 로스안데스의 '라구나 델 잉카' 석호(2,853m)까지 올라가 보았다. 숨이 찼다. 호숫가의 하얀 들꽃이 조화처럼 슬퍼 보였다.


라구나 델 잉카 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