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형의 설날
부러운 것들이 참 많기도 했다. 그만큼 한참 어렸을 적이었다.
성당 안쪽 샛별유치원.
종종걸음으로 집에서 십 분 거리였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담장 밖에 서서 친구를 기다리곤 하였다. 아이들 소리는 담장을 넘지 않았다. 그래도 내 귀에는 또렷하게 들렸다.
친구가 교리교육을 끝마치고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지루한 주일(主日)의 시간이면, 유치원은 더욱더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럴 때면, 벽에다 낙서라도 휘갈기고 싶었다.
설이 오기 전 시장에 색동 한복이 걸렸다.
바라만 보았다. 사달라고 졸랐는지는 기억이 없다. 설빔 입은 아이들. 폴리에스테르 때때옷은 유독 뻐덩뻐덩 빤질빤질거렸다.
그게 뭐라고. 시샘하다 다 커 버리고 말았다.
설날이었다.
타국(他國)에서도 버리지 못한 차례. 내겐 그냥 엄마 제사였다. 아침부터 분주하였다.
차례가 끝나고 그제야 한복이 든 종이상자를 찾아 꺼냈다. 먼지를 털어냈다. 혼수로 맞춘 그 옷을 한 번이나 입었을까. 연분홍 바지저고리를 주섬주섬 입었다. 두루마기까지 갖추고선 옷고름을 여러 번 고쳐 맸다.
"근사한데."
옷매무새를 몇 번이나 비춰보고서야 집 밖을 나섰다.
작은아이 유치원에서 "Korean New Year"에 대해 일일 교사를 해달라고 하였다. 거절하지 못했다. 친구들의 노란 머리색을 탐내는 아이를 맡겨둔 탓이었을까.
쪽빛 두루마기 자락이 휘날렸다.
“Beautiful.”
누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여기서 부끄러워지면 안 돼.'
내향형 인간은 매무새를 고쳤다. 옷고름 매듭이 단단했다.
복도는 조용했다. 교실문을 밀었다.
"와아~"
아이들이 반쯤 둥글게 앉아 있었다. 내 옷소매를 보았다가, 얼굴을 보았다가, 다시 옷자락을 보았다.
벽에 붙은 그림들도 일제히 웃어 젖혔다.
노트북을 열었다.
설날이라고 알려줬다.
고향에 간다며 꽉 막힌 고속도로를 보여줬다.
오늘 아침에도 차례를 지냈다고 자랑했다.
"Bow?"
한 아이가 세배에 대해 물었다.
"해볼래?"
아들에게 물었다.
때때옷 입고 우쭐댈 때는 언제고, 그놈이 선생님 품으로 도망쳤다.
아이들 몇이 웃어댔다. 아들 두 눈에 눈물이 그득 괴었다.
아이들이 하나 둘 딴짓을 이어갔다.
떡국 사진을 띄웠다. 모락모락 김이 올랐다.
말을 줄였다.
윷놀이, 설빔, 몇 단어를 남겨두었다.
두루마기 자락이 아이들의 소란을 따라 흔들렸다.
집에 돌아와 옷고름을 풀었다.
연분홍 바지저고리를 접어 넣었다. 두루마기를 그 위에 덮었다.
상자를 닫았다.
옷장 구석진 자리로 되돌아가도, 상자 안은 조용했다.
또다시 설날이 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찌 버티실까 싶더니 장인의 병세도 고만고만해졌다.
내 사는 형편도 별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도, 감정이 요동을 쳤다.
때때옷이 부럽더니, 입을 일 또 있겠냐며 몇 해 전 내다 버린 바지저고리와 두루마기를 추모하였다.
다 늙어서나마 유치원 수업을 다 해보고. 그게 기쁘고도 서러워 저 혼자 그날을 그리워하였다.
집 밖을 나섰다.
그날의 쪽빛은 흐르는 시간 속에 스며들어 이 겨울 한줄기 바람으로 내게 불었다. 그 바람 속에서 두루마기 자락이 휘날리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