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 림피아
유명 만화가가 시래기된장국과 숭늉을 한 술씩 뜨는가 싶더니, "아으~~~, 영혼이 맑아지는 소리"라는 자막이 맛집 탐방 TV 프로그램 화면 아래로 큼지막하게 튀어나왔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고 있네." 나도 모르게 날 선 말을 툭 내뱉었다.
"우리 저녁에 시래기된장국이나 끓여 먹을까?"
"그러시던지."
건조하게 바스러지는 그녀의 대답에 새초롬해져서는, "이보세요, 작가님. 영혼이 맑아지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요?" 참 별 것 아닌 일에 빈정거리며 애꿎은 채널만 하염없이 돌려댔다.
"요즘은 설거지도 안 하네. 꼭 시켜야 해?"
익숙한 잔소리를 업신여겼더니, 내 앞에서 밤이 돋아나 자랐다. 소파에 깊이 드러누운 나와 무서운 속도로 자라는 밤 사이는 차가울 만큼 적막하였다. 그런 밤이 있다. 오염된 잡념들이 영혼을 물들이는 밤. 헛소리만 같던 "영혼이 맑아지는.." 그 자막이 새삼 꺼림칙하였다.
유튜브에서 쇤베르크의 '정화(淨化)된 밤'을 찾아 정적 속을 흐르게 하였다. 비올라가 흐느끼고 첼로가 일렁이자, 반음계의 무게로 밤이 침잠하였다. 쇤베르크는 달빛으로 밤의 죄를 씻어내고, 천장 조명으로부터 빛이 떨어져 나에게로 물들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음악은 내 영혼을 자꾸만 드러내려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영혼을 거름종이에 들이부어 맑게 걸러보려는 시도는 나름 연속성이 있었다. 물건들을 내다 버리며 집착을 내려놓아 보았고, 디지털 디톡스라며 핸드폰도 꺼보았다. 어싱(Earthing)은 어떨까 맨발로 흙을 밟고, 멍 때리고 앉아 바람의 마디를 세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래보았자, 내 영혼은 감정의 쓰레기통일 때가 되려 더 많았다. '표백을 해야 하나..' 자괴감이 밀려들어 몸이 살짝 떨려왔다.
"왜 이리 추워? 보일러 좀 세게 틀면 안 되나?"
괜스레 짜증을 내었다.
오염된 잡념이 밤의 그림자를 돌고 돌더니, 저번 멕시코 여행 때 끝내 못해보고 돌아섰던 림피아(Limpia)의 광경까지 불러왔다.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에서 바라보는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은 기괴하리만큼 육중했다. 하지만, 서서히 가라앉으며 기울어가고 있었다. 성모 기적의 성소 옛 과달루페 대성당도 그렇고 영혼을 위탁하는 고귀한 곳들이 하나같이 삐딱하게 침강하고 있었다.
서글픈 마음으로 성당을 빠져나오자 길 위로는 거대한 강처럼 사람이 흐르고, 강물 위로는 소음의 부유물이 떠다니고 있었다. 흥미롭지만 매력 없는 거대한 광경 속을 이리저리 떠다닐 적에, 혼돈 속에서 림피아 의식을 보았다.
여자는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린 채 온몸을 맡기고 있었다. 방울과 깃털 장식과 아즈텍 문신으로 치장한 검은 피부의 치유사 '쿠란데라'는 코팔 송진(松津)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그릇을 받쳐 들고 로즈메리 약초로 여자의 온몸을 툭툭 두드렸다. 여자는 상처와 고통을 씻어내고 혼탁함의 경계를 막 넘어서는 듯 보였다.
아요요테(Ayoyotes) 방울이 남자의 발목에서 짤랑거릴 때마다 로즈메리도 따라서 반음계의 퍼득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향기 나는 연기는 가까이 섰던 내게로 스며들어, 몸, 마음, 영혼, 내 인간성의 요소 중 어느 축이 기울어가는지 은밀히 가늠하려 들었다.
곁을 맴돌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이방인을 탓하지 않으니, 나도 덩달아 고단한 영혼을 잠시 정화하려 그들의 의식을 도둑질하고 있었다.
'그때 나도 림피아를 받아보았어야 했을까.'
쇤베르크의 30분짜리 음악은 밤의 문턱을 넘어가고, 천장의 LED 빛은 여전히 나에게 얼룩지고, 미처 다 정화되지 못한 내 영혼은 잠을 쫓아 헤롱거렸다.
"방에 들어가서 자."
그녀의 잔소리에 쫓겨, 가라앉은 소파 자국을 뒤로하고 몸을 일으켰더니, '내가 생각보다 형편없는 사람일까?' 고민했던 순간은 그저 림피아와의 우연한 마주침일 뿐이었다. 정화란 어쩌면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는 순간인지도 몰랐다.
*림피아(Limpia): 스페인어로 '청소', '정화'를 뜻하며, 육체적 영적 정화 의식이자 역사적으로 반식민주의 저항이었다. 2002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림피아 의식을 행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