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병이라고 들어봤는가? 여행자가 이 병에 걸리면 크게 고생한다. 여행 가면 이것도 필요할 것 같고 저것도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그 결과 짐가방은 수화물 한계치를 오가며 공항에서부터 가방을 이고 지고 다니느라 몸은 몸 대로 고생한다. 어디 그 뿐인가! 여행지에서 한 번도 꺼내 보지 못한 채 괜히 가져간 물건만 수두룩하다.
고백하 건대 과거의 나는 ‘혹시나’병 환자이자 맥시멀리스트였다. 일주일 여행 갈 때도 커다란 캐리어를 준비하고 그 위에 보스턴백을 올렸다. 그것도 모자라 쇼퍼백도 한 손에 들고 공항에 갔다. 현지에서 내가 이용할 물품이 정확히 계산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참사였다. 그런 내가 옷을 더 이상 사지 않기로 했다. 없던 물욕도 폭발한다는 파리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난 후 세운 결심이다.
숙소는 파리의 허파라고 불리는 볼로뉴 숲과 가까웠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마른 낙엽을 밟으며 주소를 찾아 걸었다. 사각사각 낙엽 소리가 더해져 깊어 가던 가을의 정취가 느껴졌다. 주소에 당도해 올려다 본 건물은 저택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크고 고풍스러웠다. 함께 여행 중인 j도 매우 만족하는 눈치였다. 이번만큼은 숙소를 제대로 잡았구나 싶었다. 묵직한 현관문을 열고 로비에 들어서자 눈에 들어온 건 반짝거리는 샹들리에였다.
‘한 달 숙박비 800달러에 이런 숙소라고?’
그 자태부터 웅장한 행운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런 나를 향해 집주인이 살짝 미소 지었다. 나도 환한 미소로 화답했는데… 뭐가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걸까? 그는 우리의 기대를 무참히 부수며 엘리베이터 옆에 난 작은 쪽문으로 안내했다. 영화 <설국열차>의 꼬리 칸 문을 열면 이런 기분일 거다.
변화의 속도가 더딘 파리는 곳곳에 계급사회의 흔적이 남아 있다. 웅장한 샹들리에와 고풍스러운 건물 외관이 귀족들의 것이었다면 쪽문 너머는 귀족을 위해 일하던 하녀들의 공간이었다. 계급사회는 사라졌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며 자본주의는 그 자리를 여행자에게 내어 줬다.
하녀의 방은 작았다. 비행기를 타고 반나절을 날아왔는데 ‘여긴 한국의 고시원입니다’ 라고 해도 믿을 만한 크기였다. 방을 안내받고 나니 조금 전 반짝거리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이 방에서는 내가 기대한 파리의 우아함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방 안에는 있을 건 다 있었다. 이층 침대, 싱크대, 옷장 그리고 샤워실까지. 화장실은 조금 전 지나온 복도 한편에 야무지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튼 사람이 먹고 사는데 필요한 모든 걸 갖춘 숙소였다.
당시 20인치 캐리어로 2년 동안 세계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수화물 비용을 아껴보겠다고 기내용 캐리어를 들고 다닌 것이다. 이국에서 밤이 깊어질수록 자본주의의 욕망 앞에 무릎을 꿇고 싶었고, 그때마다 은장도로 허벅지를 찌르는 심정으로 물욕과 지독한 싸움을 벌였다. 짧은 여행이라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안 했을 거다. 지금 당장 내 오감을 자극하는 물건을 사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나에게 2년 동안 허락된 공간은 고작 20인치 캐리어 하나가 다였다.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으며 하나를 사더라도 작고 실용적인 것이어야 했다.
파리에서 한 달 동안 나는 그 방에서 좀 불편할지 언정 이상하리만큼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집이 작으니 되려 과하게 사 들고 오는 물건이 없어 여행이 간편 해졌다. 이전에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면 ‘우선 사 보자. 그 다음 어떻게든 되겠지 ’란 마음이었다. 그런데 파리에서 한 달을 지내며 매번 물건 앞에서 ‘좁은 방에 이 것까지?’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파리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담은 도시다. 길을 걷다 만나는 작은 빵집도 에끌레어의 아름다운 자태를 담아 진열해 놓고 있었다. 파리에서는 늘 내 지갑을 열어젖힐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좁은 숙소에 살다 보니 빵을 접시에 담아 나이프와 포크로 먹는 것보다 볼로뉴 숲에 앉아 손으로 뜯어먹는 게 더 행복했다. 잉여와 여백의 공간이 인간에게 주는 마음의 평화를 알게 된 순간이다. 수도승처럼 그렇게 물욕에서 이겨 나가는 법을 배웠다. 쇼핑이 주는 찰나의 기쁨은 경험의 가치가 대신해 주었다.
한국에선 집 공간이 아까워 물건을 샀고, 해외에선 뭐 라도 캐리어에 안 담으면 미련한 여행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출한 가방을 들고 여행하는 지금은 내게 어떤 게 필요한지 또렷이 보인다. 파리에서 내 마음은 샤를 드 골 공항에 처음 내린 그 순간처럼 다시 반짝였다. ‘숙소에 세탁기가 있다니 티셔츠는 세 벌이면 돼’, ‘걷는 여행을 좋아하니 예쁜 구두보다는 발이 편한 운동화 하나면 돼’ 이런 식으로 말이다. 조금 불편하겠지만 손이 가벼우니 더 많은 경험을 담아 올 수 있다. 그리고 정말 필요한 게 생긴다면 여행지에서 사면된다. 그렇게 구입한 물건은 현지 느낌이 묻어 있어서 좀 독특한 여행 기념품이 되기도 한다. 여행을 많이 해 오면서 짐 싸는 노하우가 생긴 것도 맞다. 그보다 ‘없으면 없는 대로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혹시나’병에서 완쾌된 게 크다. 결국 미니멀이 우리에게 던지는 본질은 ‘조금 가지고 산다’는 의미를 너머 ‘조금 불편해도 된다’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불편하지 않으려면 다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물질만능주의가 주는 스트레스보다 나의 가벼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편안함 말이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조금은 불편한 삶이라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를 배운다. 이 한 문장만큼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내가 가진 작은 것 하나 하나에도 무한한 감사함을 느낀다. 지금 나의 삶은 꼭 필요한 소중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았지만 하루하루를 벅찬 기쁨으로 살아가게 되었고 가진 것이 거의 없지만 행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내 영혼을 가득 채웠던 불안함도 잠재웠으니 ‘혹시나’병만 조심하면 된다.
파리를 떠날 즈음 나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했다. 20인치 캐리어와 3평 숙소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떤 부족함도 없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왔다.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사는 홀가분함을 경험했으니 꽤 값어치 있는 세계여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가끔 자문한다. ‘여행이 아니었어도 미니멀라이프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