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중독 1
스타트업 운영자들을 만나러 WeWork나 FASTFIVE 에 가면 여기가 한국인지 미국에 캘리포니아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데모데이나 스타트업 네트워킹 행사를 가면 더 가관이다. 물론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적하고 싶은 것은 준비와 실력을 갖추지 않고, 외형적 ‘힙함’만 추구하는 이들이다. 청바지에 후드티를 입은 것만으로 스티브 잡스가 된 것처럼, 아니면 세상을 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인 것 마냥 말하고 행동하는 이들에게 고한다.
자신들의 제품을 왜 사야 하는지, 눈치 게임 외에는 왜 그 가격으로 팔아야 하는지, 자신들이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진짜 가치는 어떤 것인지와 같은 기본적 질문에도 버벅이는 이들이 너무 많다. 제품의 우수성에 매몰되어, 또는 한두 가지 차별성이 마치 전부인 것 처럼 생각하고 나머지 비즈니스를 둘러싼 요소들을 간과하는 스타트업이 넘쳐난다. 화려한 언변으로 Q&A 순간을 모면하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뇌리에서도 빨리 잊혀진다.
2020년 초, 그러니까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바로 직전 한 데모데이에 심사를 하기 위해 참가한 적이 있다. Accelerating Program에 참가할 small team을 선발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프로토타입조차 없는 이들이 많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어떻게 실현시킬지 그리고 돈은 어떻게 벌지에 대한 평가를 정확하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주 기본적인 대답들도 얼버무리는 이들이 너무도 많았다.
스타트업 직원들이나 경영자들을 코칭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오죽 답답했으면 수소문하여 찾아왔겠느냐마는, 진짜 고민해야 할 것들을 고민하지 않았던 모습을 너무도 많이 봐 왔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누가 봐도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이구나 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의 outfit과 손발 제스쳐, 그리고 말투까지 갖고 있다.
당연히 스타트업을 운영하거나 회사에 일원으로 있는 이들의 대부분은 20~30대 젊은 인재들이다. 소위 어른들(기존 기업 시스템에 익숙한 이들을 나는 어른들이라 한다)은 이들의 경험 부족을 걱정하지만, 이들에게는 잠재력, 참신함, 추진력 등 너무나 많은 장점이 있다. 어른들의 걱정은 분명 그들의 강점을 극대화하여 불식시킬 수 있다. 단, 팀 내에서의 치열한 논쟁, 고민, 맨땅에 헤딩하며 배우게 되는 lesson learn을 극대화 시킬 때만 그들의 장점은 극대화된다는 것을 꼭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팀내에서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분명 불편한 대화주제들일 것이고, 그 불편한 주제들을 격렬하게 그리고 끝까지 고민하고 토론해 나가야 한다. 옷을 어떻게 입느냐, 어떤 업무 환경을 만드느냐보다 먼저 되어야 하는 것이 이러한 것들이라는 것을 우리의 Entrepreneur 들에게 전하고 싶다.
작가 소개와 ‘스타트업 중독’을 쓰게 된 배경
대학에서는 이공계 학과를 졸업 후 글로벌 컨설팅 펌에서 근무하였다. MBA 진학 후, 미국의 대형 Tech 회사에서 horizon2 라는 스타트업 발굴 및 M&A 업무를 하였다. 그리고 글로벌 Accelerator에서 미국, 싱가포르, 한국 스타트업 들에게 자문을 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한국에서 스타트업 자문 업무를 하고 있다. 스타트업과 관련된 참 많은 일을 그간 해 왔다. 잘못된 스타트업 문화를 꼬집고 내가 생각하는 건전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고민해 보고자 나는 이 글을 작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