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박정민의 1인2역

by 잭옵

수개월 전에 본 영화 〈얼굴〉을 다시 되짚어 본다.


시나리오, 연기, 연출이 서로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라며 한 작품 안에서 스스로 경쟁하는 영화였다.


감동을 곱게 접어 가슴 안쪽에 넣어 두고,


오늘도 문 닫힌 영화관으로 들어간다.


사람 대신 먼지가 앉아 있는 좌석들 사이로 걸어가


늘 그렇듯 F열 10번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조용히 한 문장을 읊조린다.


“빛과 어둠 사이를 설명해 주소서, 노트의 유령이시여.”


스크린 뒤 어딘가에서 퇴근하지 못한 알바의 목소리가 느릿하게 걸어 나온다.


오늘 내가 할 일은 단순하다.


그가 중얼거리는 과몰입 노트를,


최대한 알아볼 수 있는 인간어로 받아 적는 것.


집중하자.


영화 〈얼굴〉에서 박정민은

젊은 임영규(전각 장인)와 그의 아들 임동환을 동시에 연기한다.


“아버지랑 아들을 한 배우가 같이 하는 건 알겠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겹쳐서 캐스팅한 이유가 뭘까?

제작비가 부족했나?”


[퇴근 못한 알바 유령]

제작비가 부족해서가 아니지.

이건 그냥 1인 2역이 아니라,

한 인간의 과거·현재·기억, 그리고 한 가정의 역사 전체를

한 몸 안에 겹쳐 넣어버린 장치라고.



※ 스포일러 경고: 이 아래부터 영화의 전개와 결말이 자세히 등장합니다.

[알바 유령의 과몰입 노트에서]

박정민 = 임영규 = 임동환

영화 속 등식은 이렇게 쓸 수 있다.


박정민 = 젊은 전각 장인 임영규 = 아들 임동환


이 하나의 장치로, 여러 의미가 한꺼번에 중첩된다.

나이 든 임영규(권혜효)가 아들 임동환에게 과거를 설명하는 장면 => 현재의 임영규가 과거의 임영규에게 말을 거는 장면


어머니의 죽음을 추적하는 아들 임동환 => 아내의 죽음을 끝내 회피하지 못하고 되짚어 보는 임영규


겉으론 사건 추적극 => 속으로는 임영규의 자기 반성극


마지막 장면에서 아들이 어머니의 사진을 바라보는 얼굴 => 남편이 아내를 마주하는, 뒤늦은 첫 응시의 얼굴


얼굴을 보지 못한 두 사람의 이유

인식은 있지만, 시각장애 때문에 보지 못했던 남편 임영규

시각은 있었지만, 인식이 없어 보지 못했던 아기 임동환


그래서 영화의 제목 〈얼굴〉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보지 못한 얼굴·끝내 마주해야 하는 얼굴이라는 과제를 품게 된다.


결론)

박정민의 1인 2역이라는 메타적 장치를 통해 이 영화는 한 집안의 불행, 결점, 추함의 되물림을 직유적으로 보여준다.



[퇴근 못한 알바 유령]

“오늘 과몰입은 여기까지. 세수 잘해라”


휘-리릭.

스크린 뒤 어둠 속으로 기척이 사라진다.

남은 건 꺼진 빛, 먼지, 그리고 내 노트뿐이다.




※ 만약 임영규를 A, B 배우가 나눠 연기하고, 임동환을 B, C가 연기하는 식으로 얼굴을 살짝 어긋나게 중첩시켰다면 어떤 영화가 되었을까?

※ 다양한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버리는 많은 얼굴을 가진 박정민 배우는 과연 1역 몇역 까지 가능할까?